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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좌석 못 구한 채 승차… '일단 타고 나서 해결하자'

 

8월 6일 저녁 6시 33분 K394편 기차를 탔다. 나는 난닝(南宁)으로, 동행은 꾸이린(桂林)으로. 둘 다 침대 좌석인 워푸(卧铺)를 구하지 못해 난감한 상태였다.

 

일단 기차를 탄 후 해결해보기로 했다. 중국 기차를 탈 때 좌석이 없을 경우 소위 짠퍄오(站票)를 끊은 후 열차 내에서 좌석을 구할 수 있다. 또한, 짠퍄오를 처리하는 곳으로 가면 침대 좌석도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표 없이 기차를 타면 제일 먼저 이름을 적어두고 신청부터 해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난닝까지 12시간, 꾸이린까지 18시간이니 침대 칸을 구해보려고 했다. 마침 동행이 승무원에게 외국인이라고 좀 아양을 떨었더니 제일 먼저 표를 구해준다고 약속했다. 여행 중에 중국어를 전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할 경우가 많은데 마침 잘 통하는 마음씨 좋은 승무원을 만난 것이다. 문제는 동행이 꾸이린까지 일정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야말로 '불야성'인 무룽후

 

꾸이린을 갔다가 다시 난닝으로 돌아온다는 것에 약간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그냥 승낙하고 말았다. 짐을 챙겨 침대 칸으로 옮겨 편하게 꾸이린까지 가긴 했지만 본의 아니게 꾸이린으로 가게 됐다. 18시간 기차 여행, 정말 긴 시간이다.

 

오후에 도착해 숙소를 구하고 밤이 되자 광씨(广西) 좡족(壮族) 자치구 꾸이린(桂林) 시내 무룽후(木龙湖)를 찾았다. 꾸이린 시는 량쟝쓰후(两江四湖) 공정(工程)이라 하여 관광지 조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계림산수(桂林山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리장(漓江)을 비롯 타오화장(桃花江)을 중심으로 무룽후(木龙湖)와 꾸이후(桂湖), 룽후(榕湖), 산후(杉湖)는 꾸이린을 대표하는 강과 호수다.

 

불야성(不夜城)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무룽후는 주위에 아담한 뎨차이산(叠彩山)이 둘러싸고 있고 관광지를 조성하려고 호수들을 인공적으로 연결해 뱃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름하여 ‘무룽후불야성’이다. 호수 옆에 있는 누각의 민속공연과 전통악기 연주를 보고 들으며 밤배놀이가 가능한 것이다. 호수를 지나는 환루(环路)를 따라 송나라 시대 건축된 성벽이 있는데 밤에는 그 형체만 보일 뿐 그 역사적 흔적은 쉽게 찾기 어렵다.

 

송나라 시대에는 병영이었고 그 이후는 주민 밀집지역이었으나 관광지를 조성하기 위해 주민들을 다 이주시켰다고 한다.

 

최근 중국에서 관광지 조성을 위해 민가 철거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 아쉬움이 많다. 민가와 골목길을 전통 거리로 복원해야지 무조건 부수고 이주시키면 '역사'와 '문화'는 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수면에 비친 조명이 찬란(灿烂)하다. 높이가 45미터에 이르는 무룽타(木龙塔)에 조명이 들어오니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아담한 누각과 정자, 돌다리마다 갖가지 휘황(辉煌)한 빛깔이 빛나니 밤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세상으로 여행하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무룽후 공원을 밤에 들어서면 이렇듯 밤배가 호수를 거닐고 있고 배가 지날 때마다 누각마다 다양한 공연으로 그 기분을 한껏 부풀린다.

 

 

온통 칠흑 같은 밤이건만 조명에 비친 불야성을 돌아다니는데 호수 속에 자리를 잡은 정자에 조명이 켜지고 배우들이 나오더니 노랫가락이 들리기 시작한다. 빨간 옷을 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여배우가 노래를 부르니 뒤쪽에 연두색 옷차림의 배우들 대여섯이 춤을 춘다. 그러니, 백댄서일 것이다. 밤배가 정자 앞을 지나는 시간에 맞춰 공연이 벌어진 것이다.

 

반대편에 누각에서도 피파(琵琶)와 구정(古筝) 등 민속악기 연주를 한다. 역시 밤배가 다가오더니 지나간다. 한 곡 연주가 시작될 때 배가 나타나더니 배가 사라지니 딱 연주가 끝난다. 아주 숙달된 타이밍이다.

 

하루 수천 명이 유람하는 리장

 

8월 8일 아침, 꾸이린 관광의 꽃이라는 리장(漓江) 유람을 떠났다. 리장을 따라 300리 뱃길로 약 4시간 동안 양숴(阳朔)까지 가는 코스이다. 리장은 장장 437킬로미터의 긴 강이지만 특히 꾸이린에서 양숴까지의 약 80킬로미터 구간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있다.

 

꾸이린 시에서 유람여행을 예약하면 숙소 앞까지 온 버스를 타고 선착장까지 데려다 준다. 게다가 양숴에 도착하면 타고 온 버스로 몇 군데 관광지도 데려다 준다. 덕분에 버스에 무거운 짐을 놓고 떠날 수 있었다.

 

선착장에 도착해 배 표를 한 장씩 받아 들고 자기가 탈 배를 찾아서 타야 한다.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겨우 배표와 일치하는 배를 찾았다.

 

배 표를 내밀고 올라타니 1층 객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배 표에 적힌 자리에 앉아서 보니 한 100명은 넘게 승선할 수 있는 좌석이 있다.

 

시끄러운 중국사람들이 차례로 자기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고서도 한참을 지나서야 뱃고동이 울린다. 창문 밖으로 얼핏 보니 이런 유람선이 40~50대는 되는 듯하다.

 

이런 선착장이 꾸이린 리장 주변에 꽤 많다고 하니 하루에 리장 유람을 하는 사람들이 수 천명을 될 듯하다. 우리나라 중국여행패키지 중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 리장이다. 영화나 광고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리장과 둥그렇게 생긴 봉우리, 그리고 강물에 대칭으로 비친 모습은 중국 인민폐 20위엔 뒷면을 장식하고 있기도 하다. 카르스트(喀斯特) 지형으로 이뤄진 산과 계곡을 여한 없이 보게 되니 중국 수묵화(水墨画)의 전형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계림산수갑천하’는 천하에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의미일 것인데 꾸이린 리장에서는 ‘푸른 산, 빼어난 물, 기이한 동굴, 멋진 돌(山青, 水秀, 洞奇, 石美)’을 4절(四绝)이라 말한다.

 

불쑥 솟아난 산봉우리들의 기괴하고 멋진 모습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배를 타고 가면서 융기된 산봉우리를 보는 즐거움 뿐 아니라 수영하는 사람들, 물건 파는 사람들, 대나무 배를 타고 즐기는 사람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나무 10가닥 정도를 엮고 모터를 달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배가 휙 지나고 모터보트 위에 파라솔을 달고 10여명을 태운 배는 더 빨리 지나간다.

 

 

한여름이라 갑판에 올라가면 아주 덥다. 경치가 좋은 곳이 나오면 미리 안내 방송을 해준다. 갑판은 양산을 쓰고 따가운 햇살을 막고 유람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다. 유람선 비용에는 점심도 포함된다.

 

밥과 기본반찬만 나오는데 중국사람들은 몇 가지씩 별도로 요리를 주문했나 보다. 앞자리에 앉은 중국사람들이 외국인인 줄 알아보고 같이 먹자고 한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그다지 먹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꾸 권하니 미안한 마음 딱 감추고 집어 먹었다.

 

도저히 도착할 것 같지 않던 유람선이 포구에 배를 댔다. 관광객들과 호객하는 사람들로 혼잡한 길을 따라 바깥으로 나왔다. 관광버스를 타는 곳에서 사람들이 다 모이길 기다렸다. 그리고, 유람선과 함께 묶여 있는 여행코스를 다녀오기로 했다.

 

꾸이린 부근서 가장 오랜된 사원

 

먼저 찾아간 곳은 꾸이린 부근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으로 서기 713년 당나라 시대의 졘산쓰(鉴山寺). 처음에 얼핏 현판을 보고 ‘부(釜)’자 인 것으로 착각했다.

 

여기에 왠 ‘부산’이 있지 하고 의아해 하기까지 했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쉽사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인가 보다. 사원 옆에 술 호리병(葫芦瓶)을 들고 있는 돌상 모습이 아주 친근하다. 

 

사원 맞은 편에는 수령이 1,500년이나 되고 높이가 17미터, 너비가 7미터에 이르는 웅장한 용나무가 서 있는 따룽슈(大榕树) 공원이다. 이 나무는 ‘바위를 뚫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라 하여 ‘천암고용(穿岩古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 뒤편에 있는 진바오호반(金宝河畔) 반대편에는 작은 바위 산이 하나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뻥 뚫린 공간이 있다.

 

그래서 이 나무가 바위를 뚫어서 만들었다 해 천암(穿岩)이라 부른다고 한다. ‘천(穿)’이 ‘관통하다’, ‘뚫다’는 뜻이니 이 오래된 나무가 물을 건너 산 능선의 바위까지 뚫었다는 발상이 아주 재미있다.

 

더불어, 이곳은 이 지역의 사랑의 서사시의 주인공 류싼제(刘三姐)가 사랑을 나누던 곳이기도 하다. 호수 건너편에는 류싼제가 노래를 불렀다는 뚜이거타이(对歌台)가 있다. 양숴에는 류싼제를 주인공으로 한 멋진 공연이 있다고 하니 기다려진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달이 지고 뜨는 모습이 드러나는 독특한 산

 

버스를 타고 위에량산(月亮山) 관광지를 찾았다. 갑자기 운전기사가 마이크를 잡더니 위에량산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왼손으로는 마이크를 잡고 능숙한 솜씨다. 운전도 그렇지만 청산유수로 풀어대는 이야기가 구수하다.

 

‘명월기봉(明月奇峰)’이라 부르는 이 산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달이 지고 뜨는 모습이 드러나는 독특한 산이다. 해발이 불과 380미터인 이 산 정상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위에꿍(月宫)이 있는데 여기서 신비한 장면이 연출된다.

 

 

아래에서 보는 곳에 따라 보름달(圆月), 반달(半月), 초승달(眉月)이 차례로 드러난다고 한다. 정말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운전기사가 달의 이름을 소리칠 때마다 대낮에 달이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다. 한 바퀴 촌락을 따라 돌아 다시 정류장에 차를 세웠다.

 

날씨는 무지 덥고 땀이 샘 솟는다. 버스 안에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다고 하는데도 숨이 탁 막힌다. 그러니, 다시 버스가 섰으니 움직일 여력이 없다. 운전사가 다음은 동굴 속이니 덥지 않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일어났다.

 

중국의 동굴 속은 조명발 ?

 

‘천암고용(穿岩古榕)’과 ‘명월기봉(明月奇峰)’ 사이에 있는 쥐룽탄(聚龙潭)은 종유석 동굴이다. 동굴 입구를 마치 용궁처럼 꾸미려 했는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기기묘묘한 암석이 마치 신의 솜씨로 깎아놓은 듯하다. 조명과 어울린 종유석들이 멋지다. 정말 중국의 동굴 속은 조명의 승리라 할 만큼 각양각색의 불빛이 살아있다.

 

동굴 속 지명들이 재미있다. '노인이 보물을 지키는 형상'(老人守宝)’, '신선 복숭아의 잔치(蟠桃盛会)’, '귀비가 목욕탕(贵妃新浴)’, '기이한 돌 숲(石林奇观)’, '용궁의 옥 기둥(龙宫玉柱)’, ‘바다의 명월(海上明月)’ 등과 같은 이름이 붙은 곳마다 장관이다.

 

 

‘용녀영접(龙女迎宾)’이 있고 출구에는 ‘군용송객(群龙送客)’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런 절경이 40여 곳이나 된다고 하니 정말 용들이 사는 곳이라는 이름을 그냥 얻은 것은 아닌 듯. 숨을 죽여가며 좁은 동굴 길을 걷다 보니 더위가 한풀 꺾인 듯 시원하다. 이제 밖으로 나가기 싫어진다.

 

기암괴석 동굴을 따라 30여 분 걸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보여 드디어 다시 더위 속으로 가는구나 했는데 바깥이 아니었다. 용들이 모여 사는 연못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나 했더니만 쥐룽탄 동굴 속에는 배를 타고 지나갈 정도로 비교적 넓은 하천이 흐른다.

 

쥐룽탄은 흑암(黑岩)과 수암(水岩)의 두 곳 종유동굴이 서로 연결돼 조성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두 번 갈아타야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천정이나 벽면에서도 종유석 동굴의 화려한 자취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드디어 오늘 일정이 다 끝났다. 버스는 다시 사람들을 싣고 꾸이린으로 돌아간다. 양숴에 남기로 한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시내 문화거리이면서 여행객들의 천국인 씨제(西街)로 갔다.

덧붙이는 글 | 중국문화기획자 - 180일 동안의 중국발품취재 
blog.daum.net/youyue 게재 예정


태그:#꾸이린, #불야성, #양숴, #리장, #유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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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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