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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올 한해동안 연중기획으로 <저자와 한밤을 보내다>를 진행합니다. 좋은 책을 펴낸 지은이와 독자들이 하룻밤을 보내며 그 책과 함께 어울립니다. 그 첫 순서는 섬진강의 초등학교 2학년 시인들과 함께 합니다. 그들은 최근 <여치가 거미줄에서 탈출했다>를 출간 했습니다. 덕치초등학교(전북 임실군) 2학년 학생 12명이 공동저자입니다. 20일부터 3일간 열리는 이 프로그램에는 저자들의 선생님인 김용택 시인도 함께 합니다. 둘째날인 21일에는 김용택 시인과의 간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편집자주>

 

"제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받았던 김용택 시인의 시집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시가 꼭 일기 같다. 솔직함이 담긴 표현, 그리고 토속적 정서를 자극하는 시어는 보는 이의 감성을 울린다'며 우리에게 시집을 나눠 주셨습니다"

 

간담회의 시작과 함께 사회를 맡은 대학원생 지주연(25)씨는 김용택 시인(57)의 <섬진강> 시집을 꺼내들었다. 이는 그의 첫 시집. 직접 겪은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사실감과 진실성이 묻어나는 '일기'같은 작품들이 많다. 그리고 유독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풍경과, 그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본업은 시인이 아니라 섬진강 자락의 작은 학교, 덕치초등학교의 2학년 담임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 덕치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 때 우리 반 학생들이 18명이었는데 저만 중학교를 갔어요. 굉장히 가난한 마을이었죠. 그리고 1968년 무렵에는 선생 숫자가 너무 모자랐어요. 국가에서 수급을 못하니까 고졸자한테 교사 시험을 보도록 했습니다. 4개월 동안 강습을 시켜서 선생을 내보냈고 그때 우연히 선생을 하게 된 거죠."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김 시인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선생이 되어 있었다"는 김용택 시인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농부가 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거 안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면서 “그거 했으면 망했지"라는 푸념 섞인 농담을 던지자 참가자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괜히 서울에 갔었죠. 거기서 거지꼴로 살다가 고향에 가니 선생이나 한번 해보라고 친구들이 추천하더라고요. 그때 난 선생이란 직업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지원서에 넣을) 사진만 찍으러 갔는데, 나만 붙어버리고 친구들은 다 떨어져버렸어요. 공부를 하나도 안했는데 된 거죠. 그때부터 내 운명이 완전히 바뀐 셈이죠. 불행인지 행운인지는 모르겠어요."

 

분명 행운이었다. "아이들은 '인간'이지요, '희망'이지요, '눈물'이지요, '사랑'입니다"라고 표현한 그에게 아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김용택 특유의 서정적인 시어가 나올 수 있었을까. 김 시인이 쓴 글의 주인공은 언제나 그가 가르친 아이들이다.

 

전북 임실, 수려한 섬진강변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김 시인은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바라보고, 똑같은 높이에서 시선을 교감한다. 그들과 함께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감각적인 글로 표현한다. 사실 김 시인의 수많은 명작들은 선생님과 아이들과의 공동작품인 셈이다.

 

2학년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

 

21일 저녁 7시 강화도 오마이스쿨 세미나실, 간담회는 '시인 김용택'이 아닌 '교사 김용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점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시골, 작은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교사 김용택은 어떤 모습일까.

 

"전 거의 2학년만 가르쳤어요. 작년에는 2학년이 4명이었죠. 요 근래 계속해서 한 반에 3명, 4명이었어요. 가르칠 때는 정말 편하죠. 월급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웃음). 올해는 이상하게 아이들이 늘어나서 14명이 되었어요. 이제야 제 월급 받는 것 같죠.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4명 정도 되요. 이젠 너무 벅차요."

 

김 시인은 1970년부터 자신이 졸업한 덕치초등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 올해 38년이 되었다고 한다. "아. 질릴 때도 되었지"라며 농담을 늘어놓던 김 시인에게 질문이 날아왔다. "왜 20년 넘게 2학년 학생만을 가르치며 9살 꼬맹이들만 ‘편애’했냐"는 것이다.

 

"2학년은 일단 말을 안 듣습니다. 말 안 듣는 놈들 죄다 2학년이에요. 인간들이 세상을 살며 만들어 놓은 언어와 논리가 이들에게는 전혀 소용이 없는 거죠. 사실 2학년 애들 알아듣게 1시간 넘게 강의할 사람은 없다고 봐야 되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말로 해야 이해하는 나이입니다."

 

김 시인의 말을 듣다 보니 이상했다. 가르치는 아이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에다가 가르치기도 쉽지 않은 답답한 존재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김 시인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2학년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이렇게 순수한 거예요. 우리 인간들은 세상을 살면서 가지고 싶어 하는 소유욕망 이라는 것이 있죠. 우리 어른들이 2학년 아이들이 가진 것을 모두 다 빼앗아도, 하루 종일 빈손으로 다녀도 너무 너무 재밌어 하는 것이 2학년입니다. 어쩜 그럴까요. 아무 것도 없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삶과 소유에 대해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 2학년이라면서 고사리 손의 제자들을 추켜세웠다. 덧붙여 그는 누구보다도 '진지'한 것이 2학년 이라고 말했다. 천방지축 장난꾸러기들이 진지하다니,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진지하다는 것은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에요. 애들은 달리기를 정말 좋아해요. 애들하고 5명이 같이 뛰었는데 내가 꼴찌인 거야! 정말 인생 다 살았는지.(웃음) 뛸 때 보면 정말 진지해요. 이 세상 어떤 일도 이렇게 진지한 것 못 봤어요. 벌로 여기부터 저기까지 뛰어갔다 오라고 하면 요령 피우는 거 없이 헐떡거리며 끝까지 갔다 오는 게 2학년이에요."

 

그러면서 그는 "잘 지켜보면 2학년 아이들이 가장 세상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다"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흡수하다 보니 애들이 어쩔 줄을 몰라서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이라며 부산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을 그리게 함으로서 논리를 세운다고 말했다.

 

"2학년 애들 그리는 것을 보면 집이 하나있고 다 빈터예요. 2학년 아이들은 개념을 전체적으로 통합을 못해요. 강이 있고, 산이 있고, 밭이 있는 것을 전체적으로 못 봅니다. 크레파스 가져다가 넓은 공간을 그냥 색칠만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재미없어하고 질려하는 것이죠.

 

그래서 난 애들에게 스케치북 안 쥐요. A4 용지를 반 정도 잘라서 그림을 그리도록 하죠. 그리고 '하나만 그려라. 나무 한 그루를, 사람을, 선생님을, 친구 한 명을 그려봐라', 아이들에게 객체 하나하나를 그리게 하는 것이죠."

 

"노는 방법 모르는 도시 아이들 보면 괴로워"

 

한 가지를 자세히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시인은 강조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잃어버린 것이 바로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 기회조차 없는 현대인의 모습을 한탄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제대로 보지 않으니 주위에 있는 사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거죠. 가만 보면 아이들은 살구꽃과 벚꽃을 전혀 구분 못해요. 아이들에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르치고, 주위와 내가 항상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임을 깨우쳐 줘야 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에요. 요즘 보면 부부사이도 자세히 보지 않잖아요. 늘 사람에게서는 새로움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찾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금방 질려버리는 거죠.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가 보이게 마련이고, 삶이 보입니다."

 

교육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노는 것'을 빼앗아 버렸다고 한탄하며 "전혀 놀 줄 모르는 도시 아이들을 보면 너무 괴롭다"고 했다. 자연과 함께 서로 어울려 사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일등 하는 공부, 남을 누르는 경쟁만을 강요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창조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혁명정신 비슷한 거죠. 지금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육인 거죠. 그러나 교육의 이념 없이 무조건 서울대를 가냐 마냐가 우리 국가의 교육 이념이 되어버렸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릴 때부터 창조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을 길러지겠냐 이겁니다. 바꿔야 돼요.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내가 무슨 위대한 혁명가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 12명을 대리고 나라를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웃음) 그냥 보여주는 겁니다. '이렇게 배우는 아이들도 있구나' 보여주는 거죠."

 

"시는 나의 '놀이'... 왜 '일'과 '놀이'를 분리하려 하죠?"

 

'선생님'으로서 바라 본 아이들, 그리고 교육에 대해 아낌없는 말을 이어 가던 김용택 시인은 그의 또 다른 직업. '시인'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일거리나 직업이 아니라 '노는 것'이었다. 그런데 점점 '놀이'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 같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

 

"시가 우리들에게서 굉장히 멀어졌어요. 사실 가장 국민들에게 가까웠던 것이 '시'입니다. 농사지을 때도, 일할 때도, 제사지낼 때도 다 노래였지 않습니까. 저는 일과 놀이를 좋아해요. 농촌에서의 하루 삶이라는 것이 같이 먹고, 일하고, 노는 거였어요. 일과 놀이가 구분된 것이 아니라. 일이 곧 놀이였고, 노는 게 곳 일이었죠.

 

현대 사회에서는 항상 일과 놀이를 분리하려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일과 놀이는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죠. 옛날에는 농사지을 때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며 했어요. 굉장한 시너지효과였죠. 그러나 이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일과 놀이를 분리해내며 시와 문학이 약해진 겁니다. 그래도 일제 시대 때 그렇게 탄압을 받으면서도 문학은 살아있었습니다. 80년대에도 상당한 정치적,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했죠. 그러나 90년대 2000년대 오면서부터 거의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거 같아요."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시와 문학이 약해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 김 시인은 매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시 한편을 이해하는 것은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라면서 "시가 가진 많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역할이 다하진 않을 것"이라며 '시'가 더욱 필요한 시대임을 강조했다.

 

교단 떠날 준비하는 '선생 김용택', "이젠 학교 쳐 다도 안 볼 겁니다"

 

어느 덧 간담회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38년을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지긋지긋한 순간은 없었을까? 그는 "38년 동안 똑같은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면서 "38년 동안 '문 열어라', '숙제 해 와라'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가 참 질린다"며 자신도 평범한 선생님임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지긋지긋하다거나 밉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교사는 항상 살아있어야 합니다. 내가 공부를 안 하고 게으를 때, 자신이 구태의연해지고 고루해지면 선생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이제는 나이가 찼는지 아이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40여 년 동안 한 번도 직업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은 한 적은 없어요. 스물다섯 살부터 환갑까지 아이들 가르치며 살겠다고 다짐했는데 마침내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잘 산 사람이 대한민국에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특히 우리 아이들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어요."

 

"애들이 지긋지긋 하지 않냐"는 질문의 답은 결국 '아이들이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한다'는 대답으로 끝났다. 그러나 어느 덧 김 시인은 더 이상 아이들 앞에 설 수 없는, 올해 은퇴를 앞 둔 선생님이 되어 버렸다. 지난 시간 동안 어린 꼬맹이들 덕분에 "행복했고, 슬펐으며, 아름다웠다"는 김 시인의 교정을 떠나는 발걸음은 어떨까. 대답은 의외였다.

 

"정말 이제 학교는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새로운 삶을 살 겁니다. 환갑에서 그만둔다면 지난날을 보기 보단 일흔 살 먹었을 때 뭐하고 있을까 생각해야죠. 학교는 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든, 뭘 하든 지금은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암튼 절대로 학교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아이들만을 바라보고, 평생 그들과 함께 글을 써왔던 선생님의 은퇴 발언 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그러나 웃으며 말하는 김용택 시인의 얼굴은 역설적이게도 우수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이 차가운 한마디가 아이들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할아버지 선생님'의 눈물 섞인 목소리로 느껴진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송주민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김용택, #섬진강,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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