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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헤럴드>의 기자이자, <Press tv>의 서울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Frank Smith 씨에게 인터뷰를 당했다.

 

“음.. 현재 우리 나라는 경제 개발 논리.. 성장 중심의 가치에 매몰되어서..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생태적인 가치를 잊고 있는데…”

 

카메라 앞이라 버벅거린 것이 아니다. 방금 전 인터뷰했던 시민의 의견을 기억해내려 애쓰고 있었다. 대운하의 찬반 논리에 대한 근거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이것에 대한 나의 입장조차 생각해보지 않은 백지 상태였던 것이다. 

 

“주위를 보라”며 “이렇게 높고 아름다운 빌딩들, 한국은 더 이상 개발 도상국이 아니다. 성장논리에 얽매이기보다는 환경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타국에 대한 인상과 자신의 의견을 성의 있게 말해 준 Frank 씨를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아무리 관심이 없던 사안이라도 취재를 하기 위해서라면 밤을 세워서라도 공부를 하게 마련이다. 오른쪽과 왼쪽의 귀로 동, 서, 남, 북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동그란 두 눈으로 세모와 네모를 보기 위해서는 취재 사안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배경 지식과 관심은 필수이다.

 

하지만, 오늘은 출발 30분 전, 취재를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게 주어진 것은 ‘운하 백지화 국민행동 발족식’의 취지와 순서가 담긴 보도자료 4장이 전부였다.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 걱정할 여유조차 없이 풍물패 ‘터울림’의 공연으로 발족식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많은 힘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공연을 함으로써 같이 연대하고 싶다”는 터울림 측의 말처럼, 주위에 모여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흥겨운 공연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 사진 속에 그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외국 관광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열정적이었던 무대 매너와는 다르게, 터울림 연주자들은 인터뷰를 서로 미루고 미뤘다. 결국 마지막 바통을 받은 연주자는 대운하에 대하여 “어떠한 각도에서 보아도 반대”라며 “민중의 입장과, 환경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계속 참여할 것”이라며 다른 분들도 함께 참여해 주기를 부탁했다.

 

유인물을 배포하거나 플래카드를 들고, 발족식을 홍보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앳된 얼굴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그 때, 한 뭉치의 책자를 들고 서 계신 어머님이 눈에 띄었다. “지금 발족식 행사 홍보하고 계신 거냐”는 말에 “독서 모임 회원 분들에게 나누어주려고 많이 받았다”며 현재 녹색 연합의 회원이신 60대 주부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박정희 정권 때의 개발 논리에 의해서만 움직이고 있어요. 그로 인해 문화재 등 많은 것이 소실되었는데… 가장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바로 인간성이 파괴되었다는 거에요. 우리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상실하고 있어요. 빈부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자꾸 자연을 해치고 이래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역시 독서 모임의 회원이시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어머님의 말씀에 푹 빠져들었던 것 같다. 덧붙여, “사회적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하며, 소수라도 모여 이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공론의 장을 차츰 늘려가야 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셨다.

 

어느덧 운하 백지화를 위한 각계 인사들의 발언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발족식을 구경하고 있는 무리가 조금씩 불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을 비롯, 무관심하게 지나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사회자 쪽의 “운하는!”과 짝을 이뤄, 폭탄이 그려진 유인물로 얼굴을 가린 무대 앞 참가자들의 “홍수폭탄!”, 이어지는 “운하는”, “세금폭탄!”이라는 구호의 외침.

 

커다란 카메라로 무대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다른 기자들 사이에 끼어들 ‘깡’이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무대 앞쪽으로 달려가 까치발을 들고 초라한 내 디지털 카메라의 셔터를 마구 눌렀다.

 

남은주씨는 여성단체 연합의 회원으로 발족식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까지 왔다. “우와, 대구에서 오셨어요?”라며 놀라는 내게 “제주도에서 온 사람도 있어요!”라며 말을 붙이시는 분도 있었다.

 

그녀는 내가 ‘기사 제목으로 쓸까’라고 생각할만한 멋진 말을 해 주셨다. “자연은 최대한 개발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라며, “운하는 결국 환경적, 정신적으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기에 진심을 다하여 반대한다”는 것이다.

 

몇몇 사람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미 새로운 정보와 의견에 흡수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며, 환경 관련 단체의 회원인 시민들만의 의견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하여 상기시켰다.

 

끄덕이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번에는, 아무런 피켓이나 전단도 손에 들지 않은 채 무리에서 떨어져 무대 쪽을 응시하고 있는 한 남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소속되어 있는 단체 없이 개인적으로 왔다”는 그의 말을 반기며 대운하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감은 ‘역시나’. 자신을 차라의 숲(23)이라 불러달라던 그 역시 “구체적인 사전조사 같은 것을 했나 의구심이 든다. 운하 사업은 경제성도 없고 결국 강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라며 대운하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출했다.

 

“이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냐”는 질문에 “어려서 이모네 집이 있던 양평에 자주 갔었다. 한강이 바로 지났는데, 겨울마다 한강물이 꽁꽁 어는 것을 보았다”며 심지어는 “그 위로 1톤짜리 트럭이 지나갈 정도였는데 저기에 운하라니?”라는 의문과 함께 관심이 시작되었다고 대답했다.

 

어느덧 운하백지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 안병옥씨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발족식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매서운 바람에 얼어 붙었던 손과 발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몸을 녹이고 싶어 혼자서 행사장의 좌우를 뛰어다니며, 취재에 집중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나를 다시 긴장시킨 것이 밴드 ‘캐비닛 싱얼롱즈’의 공연. ‘음악인’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하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노래 세 곡이 끝난 직후 무대 뒤로 쪼르르 달려갔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온 기타보컬 김목인씨 역시 운하 사업을 염려하는 또 한 명의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경제성 여부에 대한 토론을 떠나 장기적, 생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엄연히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 알 것”이라며  “사람들이 알기 쉬운 사안을 중심으로 설득, 참여를 이루어내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잦아들지 않는 차가운 바람에 지쳐 행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롯데월드의 인형 옷보다도 두꺼운 ‘폭탄 옷’을 입고 있는 박성연(21) 씨가 보여 “따뜻하시겠다”며 말을 걸었다. <오마이 뉴스> 인턴이라고 하자 반가워하며 자신도 환경운동연합 인턴이라고 했다.

 

“인턴 전까지는 저도 이 문제에 관심이 없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린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해요.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나오면 이해도 안되고 집중도 잘 안 하잖아요. 예를 들어 저희가 3월 22일 한강에서 물의 날 행사를 가지거든요. 사진전, 게임 연날리기 등 재미있는 활동들을 통해서 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에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인턴 끝나고도 꾸준히 후원하고 관심을 많이 가질 생각”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최종 순서인 발족 선언문 낭독 전, 손병휘 씨의 공연이 있었다. 1년 전, 가족 찾아주기 프로그램에서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은 사연을 보며 만든 <늦기 전에>. “늦기 전에, 정말 더 늦기 전에 이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1년 전에 발표된 노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제목과 가사가 상황과 딱 맞았던 노래. 함께 취재를 나갔던 선배 기자님도, 동료 인턴 기자 재덕 오빠도, 그리고 나도 신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고 누누이 들어왔던 터.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취재였지만, 그리고 추위에 벌벌 떨었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오가는 길 베테랑 선배 기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 번 ‘현장’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발족식이 끝난 후, 혀를 댈 정도로 뜨거웠던 굴국밥을 먹고도 녹지 않는 얼린 몸을 추스르며, 취재 수첩을 보았다. 새하얬던 종이에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끄적끄적 담겨 있었다. 이들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마음까지 담았을 때, 틈틈이 비어있던 흰 공간이 채워지겠지.

 

그 때 다시 인터뷰 요청을 받는다면, 내 생각을 또박또박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내게 친절하게 대답해 준 시민들처럼.  

 

 

 

덧붙이는 글 | 김명은 기자는 <오마이 뉴스> 7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운하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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