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직장관계로 강릉에 잠시 있었습니다. 그 때가 겨울이었지만 당시 7살이던 딸아이와 가까이에 있는 경포대를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한 할아버지께서 달고나를 팔고 계셨습니다. 어릴 때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어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아이와 달고나를 사먹으면서 하나 더 먹으려고 열심히 별모양을 만들려했건만 번번이 실패를 했습니다. 깍두기처럼 네모난 설탕덩어리를 쇠국자에 두 세 개 넣어 연탄불에 올려 나무 젓가락으로 살살 돌려 녹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원체 단 것을 좋아해서 특히 많이 해 먹었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 가려면 버스로 3~4정거장 정도 가야하다 보니, 엄마가 차비를 꼭 주셨습니다. 먹을 것은 많고 배는 또 왜 그리 고픈지… 또 용돈은 얼마나 궁한 지. 제법 되는 거리였지만 동네친구와 함께 걸어 다녔습니다. 물론, 엄마야 버스타고 다니는 줄 아셨겠지만. 차비를 아껴서 늘 군것질을 했습니다. 달고나도 맛있고, 교문 앞 떡복이도 맛있고 노랑, 빨강, 파랑 색소 뿌린 빙설도 맛있고, 쫀드기도 맛있고, 기타 문방구에서 파는 지금 기준으로 불량식품도 어찌나 맛있던지 지금 먹으면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때는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탈도 날 만한데 그런 기억도 없습니다. 너무 급하게 많이 먹어 체한 적은 있어도 식품 때문에 탈이 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늘 궁했던 그 시절, 일 나가는 엄마와 마주칠 때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용돈을 달라고 조르곤 했죠. "엄마, 100원만." "안 된다." "그럼, 50원만." "없다." "눈깔사탕이라도 사먹게 20원만." "없다캬이!" 모른척하고 가시는 엄마의 뒷모습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네요. 철없는 굴었던 그 때가 부끄러워집니다. 그렇게 쓸쓸히 집에 돌아 와서 먹을 게 없나 찾아보는데, 갑자기 소다가 내 눈에 딱 꽂혔습니다. 옆에 설탕도 있고, 위에 보니 반짝반짝 국자도 있고. 달고나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아니, 없는 돈에 왜 그렇게 돈을 주고 해 먹었나 싶데요. 이젠 집에서 해 먹어야지, 요걸 왜 진작 몰랐을까 했습니다. 연탄불에 달고나를 해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야…. 실컷 해 먹고 국자를 깨끗이 씻어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웬걸 국자 성능이 문제인지, 나의 설거지 솜씨가 문제인지 시커멓게 흔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국자가 왜 이렇게 됐느냐며 목소리를 높이셨고 나는 "다시는 달고나를 해 먹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 국자가 생기고 그 놈의 국자만 보면 달고나가 어찌나 눈에 어른거리는지… 다짐은 어디로 가고 다시 달고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후 "이놈의 가시나가, 국자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래 났노"하는 엄마의 분노에, 국자에 맞지 않으려고 열심히 달려야 했습니다. 아이는 대구로 돌아와서 "'강릉'하면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달고나'"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 달고나 먹고 싶다. 대구는 어디 하는데 없어?" "없다." 그렇게 무시하다가 하도 간절하게 노래를 부르는지라, 슈퍼 갔을 때 소다가 보여 사왔습니다. '연탄불만은 못해도 어디 가스불에 한 번 해볼까? 예전 실력이 나올라나'하며 아이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맛이 어때?" 그러자 아이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강릉이랑 맛이 똑 같다며 만족한 미소를 짓습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그 때 내 나이고 내가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세월이 참 빠르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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