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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成都)에서 라싸(拉萨) 갔다가 다시 청두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바로 꾸이저우(贵州)의 꾸이양(贵阳)으로 옮겨 갔다. 원래는 스촨 성의 어메이산(峨眉山)을 거쳐 가려 했는데, 연일 비가 내려 코스를 꾸이양으로 바꿨다. 고속버스를 탔더니 무려 18시간 동안 간다니 정말 판단 한번,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7월 25일 출발해 26일 새벽 꾸이양 시내에 도착했다. 그리고 종일 푹 자야 했다.

 

7월 27일, 일일투어에 참가해 ‘먀오족 촌락’과 ‘황과수 폭포’ 여행을 떠났다. 두 곳이 함께 일정에 묶여 있어 천만다행이다.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먀오족(苗族) 원시촌락은 꼭 가고 싶었던 곳.

 

보슬비가 살짝 내리는 날이다. 촌락 입구로 들어서니, 인공적으로 가꾼 듯한 분위기. 하지만 먀오족들이 진심을 담아 열정적으로, 약간 호들갑이지만 반갑게 맞아주니 서서히 들뜬다.

 

결혼 풍습을 시연하는데 남자 여행객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은다. 빠짐 없이 다 모으더니 먀오족 아가씨들이 후다각 나타나더니 한 사람씩 곁에 앉는다. 대나무 술잔에 나눈 씨져우(喜酒), 즉 교배주(交杯酒)를 나눠 마시게 했다.

 

이렇게 먀오족 아가씨와 결혼했다. 모두들 웃으며 기분 좋게 신혼 방이라는 작은 움막으로 들어갔다. 아~ 그런데, 사례금을 달라고 한다. 물론 안 줘도 되긴 하겠지만 서로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다. 중국 사람 한 명이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지폐를 꺼내니 나 몰라라 하기 참 어색하다. 모두들 덩달아 20위엔씩 건넸다.

 

먀오족은 현재 인구가 740만 여명에 이르는 소수민족으로 그 역사가 갑골문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 됐다. 꾸이저우(贵州)를 중심으로 스촨(四川), 윈난(云南), 하이난(海南) 등지에 널리 분포된 먀오족은 한족과 거의 비슷하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셈이다.

 

삼국시대 촉나라 제갈량이 남만(南蠻) 정벌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먀오족이다. 남쪽 오랑캐라고 비하한 이름이 약간 거슬리겠지만, 자신만의 창조적인 문화와 종교, 언어를 지닌 토착 민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30여 종에 이른다는 다양한 스타일의 은(银) 장식 복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은으로 치장한 먀오족 여성들의 모습은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예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풀에 쌓인 좁은 길을 따라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아담한 공연장은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느라 어수선했다. 공연 시작 전에 먀오족 아가씨들과 사진 한 장 찍겠노라고 정신도 없다.

 

생머리 길게 늘어뜨린 한 아가씨가 귀여워 친한 척하고 이름도 묻고 했다. 캠코더 액정을 보여줬더니 자기 얼굴이 나온다며 신기해 한다. 때묻지 않은 모습이 정겹다.

 

먀오족 원시 촌락을 먀오짜이(苗寨)라 하는데, 이곳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다. 먀오족 전통 무용 중에 여자들은 목 돌리기 동작을 선보인다. 빠른 민속음악에 맞춰 머리를 돌리니 생 머리카락이 펄럭이는 것이 영락없는 헤드뱅잉이다. 목이 아플 듯한데 10여분 동안 끊임없이 돌리는 모양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참 생각했다.

 

비가 약간 내린다. 비 속에서 힘찬 북소리와 함께 먀오족 특유의 구령에 맞춰 춤을 춘다. 청년들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춤을 출 때는 아가씨가, 아가씨들이 춤을 출 때는 청년이 구령을 한다. 그 구령이 굉장히 리드미컬하다. 어쩌면 단순 반복의 랩을 읊는 듯 나로서는 약간 지루하기도 하다.

 

남자들은 거의 차력에 가깝거나 서커스에 버금가는 묘기를 보여준다. 뜨거운 불과 아주 친한가 보다. 불을 몸에 대기도 하고, 입으로 넣어 먹는 시늉도 하고 심지어 걷기도 한다.

 

으악~ 경악할 일은 뜨거운 불덩이를 혓바닥으로 핥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불덩이를 입에 쏙 넣을 때는 아찔하게 소름이 싸~하게 돋는다. 소름 끼치는 공연인데, 이 친구들은 나름대로 관객들과 재미있게 호흡한다.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봤다. 정말 15세 이상 관람가 수준이다.

 

공연이 끝나자 먀오족 복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는 아이 둘이 귀여운 표정으로 웃으며 사람들 속에 나타났다. 당연히 인기 독차지이다. 먀오족 동요노래를 부르며 재롱을 피는데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아이들 옆에서 사진을 찍느라 경쟁이다. 정말 먀오족은 아이들부터 예쁘고 귀여운가 보다.

 

먀오족 촌락을 본 후 다시 버스는 꾸이양(贵阳) 서쪽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황궈수(黄果树) 풍경구로 이동했다. 이 풍경구에는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많은 폭포 군과 호수를 형성하고 있다.

 

먼저 찾아간 곳은 톈씽챠오(天星桥)인데, 돌과 나무, 물과 동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멋지고 독특한 느낌을 준다.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좁은 시냇물을 건너는 별천지에 온 듯 분위기인데 1년 365일을 새긴 돌다리야말로 이곳의 별미라 할만하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금빛 조각을 새긴 돌다리를 하나씩 건너 365개의 걸음을 해야 한다니 한참 걸리겠다 싶었다. 처음에 다리를 건널 때 언제 다 건너나 싶다.

 

무심히 지나가다가도 뭔가 기념이 될만한 날자의 다리에 다다르면 한번쯤 무심코 다리를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데 마치 일년을 살아가는 모습, 인생과도 닮아 있는 듯도 하다. 무려 7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돌다리 하나에 하루씩 세가며 걸어가니 금세다. 생각보다 365개의 돌다리를 건너는 일이 흥미를 동반한다. 인생의 깊이를 느끼는 사람만이 즐길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황궈수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대폭포(大瀑布)이다. 대폭포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관을 연출하는데 폭포로 향해 가려면 걸어가도 되지만, 엄청나게 길고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아래에 내려가니 우선 멀리 거대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물이 비가 되어 휘날리고 있다. 굉음도 그렇지만 빗물은 정말 정신 차리기 힘들 정도로 그 양이 많고도 세차다. 비옷을 입고,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하는 사이에 소수민족 먀오족의 작은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흥겨운 동작을 보면서 잠시 쉬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뚫고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말이다. 황과수 풍경구의 톈씽챠오가 영롱한데 비해 대폭포는 기세가 등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름도 '대폭포'인 이 폭포는 아주 가깝게 다가가서 심지어 폭포 뒤로 돌아가서 그 장관을 소름 돋게 느낄 수 있는 폭포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위, 아래, 좌, 우, 전, 후를 가리지 않고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 내에서도 그 장관이 아름답기로 손꼽는 폭포라 한다. 그 낙차가 74미터에 이르고 떨어지는 너비는 81미터에 달하는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 십 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하는 폭포다.

 

폭포로 올라가는데 정말 한없이 쏟아지는 물살이 온몸을 다 적신다. 겨우 비옷과 우산으로 막고, 피할래야 피하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애써 피하면서 잠시 찍고 또 피하고 또 막고 그러다가 또 겨우 찍고 그러면서. 그러다가 확연하게 나타난 아름다운 무~지~개와 만났다.

 

폭포 아래에서 하늘을 향해 등장하는 무지개는 간혹 보지만 바로 옆에 바짝 다가오는 듯한 무지개를 보노라니 정말 감흥이 남다르다. 무지개를 휘감아 돌며 절벽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 역시 ‘대폭포’ 다운 장면이다. 황과수 대폭포의 가치는 엄청난 물줄기이긴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 기세 등등한 물줄기를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아래에서 바라보는 폭포는 많지만 좌우에서 그리고 뒷면에서 떨어지는 폭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폭포의 자랑이다. 폭포 뒤 동굴에 서니 70미터의 낙차를 뿜으며 쏟아내는 물소리가 너무 커서 오히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착각이 든다. 이 폭포가 떨어져 이뤄진 곳을 씨녀우탄(犀牛潭)이라 하는데, ‘씨녀우’는 '코뿔소'이니 그 웅장한 음파를 비유한 것이라 하겠다.

 

전설에 의하면 청나라 초기 한족 장군이었다가 반청의 기치를 들었던 오삼계(吴三桂) 삼번군 패잔병들의 도주로였으며 이 씨녀우탄에 보물을 던졌는데 그 물살이 너무 살벌해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설이다. 그야말로 '폭포는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보려면 폭포 뒤로 돌아가야 하고 대폭포야말로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황궈수 풍경구에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폭포가 있다. 뜻으로 보면 ‘가파르고 비탈진 둑’이라는 뜻의 떠우포탕(陡坡塘) 폭포이다. 대폭포보다 그 떨어지는 낙차 높이는 낮지만 그 너비는 아주 넓어서 105미터에 이르는 폭포다. 그 넓은 아량 덕에 아래에는 물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둥실 떠다니며 노닌다. 정겹고 평화롭기 그지 없다.

 

 

이 폭포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사자가 울부짖는 듯한 허우셩(吼声) 소리를 낸다 하여 허우푸(吼瀑)라고도 한다. 이렇게 포효하는 폭포 아래 물살을 헤치며 노니는 몰오리들이 평화롭다. 폭포수를 아울러 잔잔한 물결로 바꿔놓는 듯하다.

 

소수민족 옷을 입고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한 아가씨에게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는데, ‘한국 예술가(韩国艺术家)’ 같다며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버스를 타고 꾸이양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한 시장에서 다시 사진을 찍은 아가씨와 만났다. 쟝쑤(江苏) 창저우(常州)의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내가 6개월 취재 여행을 다닌다고 하니 꼭 창저우에 오면 연락하라고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 준다.

 

 

숙소에 돌아와 뒷골목을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는데, 계속 내리는 비가 멈추지 않는다. 일찍 잠을 잤다.

 

7월 28일, 아침에 일어나 기차표부터 예매했다. 그런데, 쿤밍 행 열차가 밤 12시가 넘어야 있다고 한다. 짐을 맡기고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녔다. 레스토랑도 둘러보고 PC방에서 인터넷도 했다. 그러다가 시내에서 가 볼만 한 곳을 하나 발견했다.

 

꾸이양(贵阳) 시내 자쓔러우(甲秀楼) 앞 작은 광장에 도착해 짝~짜악 거리는 소리를 따라 가니 엄청나게 큰 팽이가 돌아가고 있다. 중국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팽이(퉈뤄 陀螺)를 돌리며 놀곤 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체력훈련에 가까울 정도다. 팽이를 치는 사람들이 군살 하나 없이 건강한 모습이다.

 

 

힘껏 온 힘을 다해 채찍질을 하니 팽이는 점점 더 빨리 돌고 제대로 중심을 잡으니 넘어지지 않는다. 사람들도 신기한 듯 너도나도 소리와 장면을 담아내고 있다. 팽팽 돌아가는 팽이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니 돌아가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게 돈다.

 

자쓔러우라는 누각은 1597년 명나라 때 처음 세워진 아름다운 누각이다. 시내를 흐르는 작은 하천인 난밍허(南明河) 한가운데에 봉긋하게 서 있다.

 

이 누각은 밤이 되면 그 분위기가 사뭇 시적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하나도 없다. 조명과 어우러진 나무와 고요하면서도 은근한 뉘앙스의 찻집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누각은 3층이며 처마가 셋이고 모서리가 넷인데, 이런 형태는 중국 내에서도 드문 형태라고 한다. 그 모양보다 더 빛나는 것은 야경 속에서 은은하게 살아 있는 반짝거리는 분위기가 멋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누각 안은 낭만적인 분위기의 찻집이다. 밤이면 사람들이 전통악기 연주를 들으며 차를 마신다.

 

만돌린, 즉 피파(琵琶)를 켜고 있어 다가가니 '모리화'(茉莉花)라는 곡을 연주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아주 편안한 분위기에 맞춰 아름다운 곡조를 들으니 마음이 아주 평화로워졌다.

 

혼자 마시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차 값이 비싸서, 마시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지만, 풍요로운 정서를 듬뿍 담은 피파, 만돌린 음색만으로도 시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멋진 야경 속에 푹 빠져 놀고 있는데 엄마 아빠를 따라 온 한 꼬마아이가 나타났다. 재롱 피고, 춤 추는데 아주 귀엽고 똘똘하다. 처음에 '라오예하오(老爷好)'라고 해서 당황, '슈슈(叔叔)라고 해'하니 헤헤 웃는다. 라오예는 할아버지니 수염 보고 그랬나 보다. 엄마가 옆에서 '슈슈, 아저씨라고 해야지' 한다.

 

중국 전통악기인 구정(古筝) 소리도 아름답고 편안한 야경을 반주하고 있다. 구정 악기는 진나라 시대부터 연주되어 오던 현악기로 지금은 21줄의 현으로 보편화됐다. 구정을 켜는 아가씨는 내가 악기 이름도 알고 한국사람으로 여행을 다닌다고 하니 아주 놀라는 눈치다. 이상할 것 없이 베이징에서 공부할 때 많이 본 악기라고 했더니 현을 켜 보이며 소리를 들려준다. 그러더니 한 곡을 연주하는데 너무 길어서 한참 기다렸다.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초저녁에 커다란 팽이를 때리며 사람들을 끌어 모으던 광장에는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팽이들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더욱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야경 분위기가 멋진 곳이어서 그런지 시끄럽긴 하지만 낭만적이다.

 

붉고 파랗고 노랗고, 천연의 빛을 뿜으면서 돈다. 야광으로 빛나고 빠르게 돌수록 더욱 그 빛이 진하다. 게다가 팽이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니 더욱 색다르다. 팽이 여러 개가 함께 돌면 혼돈스럽지만 그 형형색색 황홀하기도 하다.

 

새벽 1시 3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쿤밍(昆明)까지는 거의 12시간이 걸린다. 베이징에서 출발한 열차편이다. 베이징에서 떠난 사람에게 물었더니 무려 48시간, 이틀 동안 내내 달리는 기차인 것이다. 베이징에서 쿤밍까지 기차 길로 3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참 멀리 왔다.

덧붙이는 글 | 중국문화기획자 - 180일 동안의 중국발품취재 
blog.daum.net/youyue 게재 예정


태그:#먀오족, #꾸이양, #황궈수, #대폭포,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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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품취재를 통해 중국전문기자및 작가로 활동하며 중국 역사문화, 한류 및 중국대중문화 등 취재. 블로그 <13억과의 대화> 운영, 중국문화 입문서 『13억 인과의 대화』 (2014.7), 중국민중의 항쟁기록 『민,란』 (2015.11)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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