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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오후, 아내의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아내는 파리에서 딸에게 입힐 옷들을 사주고 싶어 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예쁜 옷들이 많을지 궁금해 했다. 아내는 진정 신영이에게 옷을 사주고 싶어 했다.


아내의 마음 속에는 이런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해줄 현대적인 패션의 여성복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고. 아마도 아내는 눈에 딱 들어오는 옷이 가격만 맞으면 카드를 꺼내들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육중한 오페라하우스 건물 앞을 지나 오스만 거리(le Boulevard Haussemann)로 향했다. 차창 밖, 오페라 하우스 뒤편으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형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유럽에서 최초로 대형 상업 센터가 형성된 역사적인 거리인 이곳은 현재도 프랑스 최고의 백화점들이 몰려 있다. 매년 외국 관광객들과 파리 시민 1억 명 이상이 찾는다는 이 거리의 인도에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오스만 거리에서 쌍벽을 이루는 경쟁자는 갈르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와 쁘렝땅(Printemps) 백화점이다. 오스만 거리에 사람들을 몰리게 만드는 이 대형 백화점들은 파리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근대에 만들어진 이 백화점들은 건축적 가치만 해도 프랑스 건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기념물들이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외관 속에 백화점의 현대적인 상품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이다.


1895년에 문을 연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 문을 열고 이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내부로 들어섰다. 내부의 웅장한 중앙 홀과 그 위의 높은 철제 유리 돔, 황금빛 조명으로 장식된 우아한 발코니가 눈을 자극할 정도로 눈부시고 화려하다.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명성을 걸고 리모델링한 백화점 내부는 작은 궁궐과 오페라 하우스 객석이 혼합된 듯한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라파예트 백화점의 내부 건축은 19세기 근대건축을 상징하는 아르누보(Art Nouveau) 스타일이다. 특히 백화점의 천정 돔은 유리, 철골, 콘크리트가 어울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아르누보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주는데, 철골의 강하고 새로운 디자인이 아름다움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천정의 돔을 통해 건물 외부의 햇빛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스만 거리의 라파예트 백화점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이름이 낯설지 않은 쁘렝땅(Printemps) 백화점이 있다. 이웃한 이 두 백화점은 완전 경쟁체제지만, 워낙 큰 두 백화점이 한 거리에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두 백화점의 고객층은 조금 다른데, 라파예트 백화점의 주고객은 부유층이고, 쁘렝땅 백화점은 젊은 중산층이 주고객이다.

 

우리는 라파예트 백화점을 잠깐 보고 쁘렝땅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간 건물 전체는 쁘렝땅 백화점의 여성관이었다. 백화점의 층별 안내도에는 세계적인 파리의 패션, 장식, 레저, 인테리어가 전개되고 있었다. 패션의 도시 파리답게 감각이 탁월한 여성복들이 마네킹에 걸쳐져 있었다. 여성복 코너에서 아내는 자유롭게 옷 구경을 하러 떠났고, 나와 신영이는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쉬었다. 신영이는 쉬면서 아빠의 얼굴을 흑백 사진으로 남겼고, 백화점 안내도도 사진에 담았다.

 

백화점의 유명 브랜드 매장에는 동양 여성들, 정확히 말하면 한국과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꽤 눈에 띄었다. 한 한국 아가씨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나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고 갔다. 화장실 찾기가 어려운 파리에서 백화점 화장실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가씨에게 이 건물의 식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외국에 나와서 한국말을 많이 하면 여행의 맛이 반감되지만, 파리의 백화점에서 화장실과 식당을 물어볼 동족이 있다는 사실이 편리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속을 산책하다가 돌아온 아내는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고 하였다. 생각보다 이 파리 대형 백화점의 옷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적 기준에서 보아도 우리나라의 대형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역사가 오랜 파리 백화점들의 상품이 그리 뛰어날 것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 여성들이 많이 찾는 명품들의 가격이 우리나라 면세점보다 더 비쌌다.

 

 

우리는 여성관을 나와 쁘렝땅 백화점 뷰티관으로 들어섰다. 아내가 좋아하는 인테리어 소품, 가구, 주방용품, 패션 잡화들이 다양했다. 상품들은 괜찮았지만 우리나라 백화점 상품과 비교해서 전혀 차별성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매장의 디스플레이와 원색이 살아 있는 인테리어를 감상했다. 맛있어 보이는 바게트 빵을 파는 빵집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는 빵으로 식사를 대신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가족의 성찬을 위해서 꾹 참았다.

 

아내는 저녁 시간의 스위스 행을 생각해서 발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아내는 신영이가 알프스에서 착용할 목도리와 털모자, 바지를 샀다. 백화점은 3개의 건물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구름다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명성대로 유럽에서 가장 큰 백화점 중의 하나였다. 구름다리를 건너, 새롭게 개장했다는 남성관을 둘러보고 메이슨(maison)관으로 들어와 식당을 찾았다.

 

백화점 9층 옥상에 라 테라스(La Terrasse)라는 식당이 있었다. 이름과 같이 옥상에 넓은 테라스가 자리 잡고 있었고, 미처 예상하지 못한 멋진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9층 높이에서 고층빌딩이 별로 없는 파리의 도심을 마음껏 굽어볼 수 있었다. 중세에서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파리의 건축물들이 눈 아래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옥상 한쪽에는 실내 좌석도 있었다. 실내 좌석은 온톤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사방의 파리 전경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신영이를 실내 좌석에 혼자 앉히고 아내와 나는 음식을 고르러 갔다. 뷔페 앞에는 조그만 줄이 이어지고 있었고 그 줄은 아주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키가 작아 잘 보이지 않는 딸이 좌석에 잘 앉아 있나 한 번씩 확인하면서 음식을 골랐다. 신영이는 차분히 잘 앉아 있었다.

 

이 식당은 뷔페식당같이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른 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게 되어 있다. 살색의 연어 고기, 삶은 계란, 토마토, 양배추가 섞인 샐러드를 고른 후 고기를 구워주는 곳 앞에서 기다렸다. 스테이크와 소시지를 굽고 계란 후라이를 익히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기도 하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음식을 기다렸다가 받아가고 있었다. 닭고기 튀김, 감자튀김, 빵과 음료수, 수박, 붉은 빛 나는 요구르트, 에비앙 생수를 고른 후 계산대 앞에서 계산했다.

 

우리는 파리 시내가 마음껏 내려다보이는 야외 좌석에 앉았다. 야외 테이블 세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모던했다. 눈에 보이는 전망은 중세 시대지만 이 옥상은 감각적인 파리의 분위기가 감싸고 있었다.

 

 

포크를 들고 식사를 즐기는 아내의 왼편으로 에펠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높이가 일정한 중세 시대 건물군들만 이어졌으면 시각적으로 단순해 보였을 것 같은데, 철골 구조물인 에펠탑이 주변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고 있었다.


음식 맛은 깔끔했다. 예정에 없던 식당에서 분위기 있게 식사하는 행복감을 아내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다리가 편안했다. 아내는 눈앞에 드러난 몽마르트 언덕을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프랑스, #파리, #오스만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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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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