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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같이 볼래요?"

"네? 아 네, 좋아요."

 

지루한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꺼내들고 영화를 보려다 옆에 앉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지난해 추석에 서울로 올라가는 데 무려 7시간이 걸린 기억때문에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탔다. 그러나 아무래도 영화만 줄창 보고 그 긴 시간을 보내기엔 무리인 것 같아 옆에 앉은 사람과 버스 안에서 말동무를 하기로 했다.

 

"진주가 고향이신가봐요?"

"네, 직장은 경기도 파주인데 파주는 진주 가는 버스가 없어서요."

"학생이신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

"그쪽은 학생이세요?"

"서울에서 학교 다녀요."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꽉 막힌 도로 때문에 무려 6시간동안 이어졌다. 올해 서른이 되었다는 이름도 모르고 헤어진 이 남자는 혼자 파주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하였다.

 

타향에서 만나는 동향사람의 반가움

 

"혼자 생활하기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남자 혼자 사니 밥 챙겨먹기도 힘들고."

"저도 밥 먹는 게 가장 힘든것 같아요. 혼자있으니 안 챙겨먹게 되구요."

"맞아요. 어머니 손맛이 제일 그리워요. 사먹는 밥은 아무래도 질리더라구요."

"저도 집에 가면 엄마가 해주시는 밥이 제일 먹고 싶네요."

"집 떠나 사는 타향살이 이래저래 힘들죠. "

 

처음보는 사람인데도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타향살이가 힘들다는 넋두리까지 슬슬 나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면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마음을 여는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변해가는 고향, "여기는 안 변할 줄 알았는데..."

 

"서울생활 좋아요?"

"그럭저럭이요. 그래도 내 고향이 더 나은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전 요즘 진주 가도 편하지가 않아요. 내가 알던 곳이 아닌것 같아서…."

"저도 그래요. 이 곳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볼때마다 변하는 것 같아요. 내가 변해서 그런가…."

 

내 고향 진주는 조용한 도시이다. 요란한 변화가 없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 지방 중소도시는 나에게 너무 심심한 곳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가는 버스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머지않아 저 차를 타고 이 곳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내 고향 진주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백화점이 들어서고 대형 마트도 생겼다. 혁신도시니, 행복도시니 하는 이야기에 진주 변두리 땅값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아파트 분양 광고나 모델하우스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처음 보는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 있고 한 번씩 올 때마다 점점 내 기억속의 진주가 아닌 것 같아 낯설게 느껴진다. 그리고 예전부터 알고 있던 고향의 모습들에서 새삼스럽게 과거의 일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제는 이곳에서도 이방인이 된 것 같아요"

 

"멀리서 직장다니다 보면 '내 홈그라운드가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왜요?"

"내가 아무리 그쪽 사람과 같아지려 노력해도 난 '타향사람'이거든요."

"그렇다고 이젠 고향에 와도 완벽하게 토박이 고향사람은 아니잖아요?"

"하하, 맞아요. 이쪽 한다리, 저쪽 한다리 어중간하게 걸치고 사는거죠뭐."

 

맞다. 고향을 떠난 이상,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같은 입장이 아니다. 나에게는 고향의 일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타향'의 일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고향에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다. 고향을 떠나 이룬 '성공'을 안고 돌아와야 편안해 질 수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내 고향아, 다음에는 성공해서 돌아올게

 

달랑 여행가방 하나 들고 시작한 나의 서울 생활은 이젠 이사를 가려면 용달차를 하나 불러야 할 만큼 살림이 늘어났다. 그렇게  진주를 떠나 생활한 지 3년, 나는 서울 사람도 아닌, 진주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이방인이 되었다.

 

"4학년이세요?"

"네, 취업이 코앞인 4학년이에요."

"요즘 취업하기 힘들죠? 저희때보다 더 힘든 것 같아 보여요."

"뭐든 쉬운 게 없죠. 게다가 서울로 유학까지 갔는데, 잘되서 진주에 와야죠."

"저도 언젠가는 금의환향 해야지 하는 생각합니다. 멀리까지 갔는데, 고향에 돌아올 때는 성공해서 와야죠 ."

 

꽉 막히던 도로가 대전을 벗어나자 좀 시원하게 뚫렸다. 중간에 들린 휴게소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내려서 시원한 공기라도 마실까 하다가 너무 많은 차량에 내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저 많은 사람들이 다들 고향을 찾아 가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출발한 버스는 6시가 다 되어서야 진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도 사람들로 붐볐다. 나만 느낀 것일까. 그들의 얼굴에서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보다는 변해버린 어색한 고향과 '맞대면'한 피곤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6시간동안 타향살이의 피곤함을 나누던 사람과 명절 잘 보내라는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길, 아직 성공하지 못한 내 양손에는 '금의환향 해야한다'는 무거운 짐이 가득 들려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정미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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