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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의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한 마음이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맑은 햇살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찾아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란 생각이 드니, 참을 수가 없었다.

 

“매화 보러 가자.”

“예?”

“환하게 웃고 있는 봄을 만나러 가자고.”

“도둑도 빠르겠어요. 지금 2월인데-.”

 

 

집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지만 앞장 서는 것을 보고는 따라 나선다. 한번 한다고 하면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집사람이었다. 따라 나서는 집사람의 표정을 보니, 그렇게 싫다는 표정은 아니다. 집사람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집을 나서는데, 바람 속의 한기를 감지할 수 있다. 아직은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지만 조급해진 마음을 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달려가면 금방이라도 환하게 웃음을 보이면서 반겨줄 것 같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남원으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섰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광은 겨울임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남원을 지나 순창으로 향하는 도로로 들어섰다. 산동의 산수유에서도 봄의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상상으로는 노란 꽃의 손짓이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 봄의 기척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조급한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들어섰다. 섬진강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남도 삼백리를 달려온 물이라서 그런지 바라보기만 하여도 정겹다. 단풍나무의 가지들은 붉은 기운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봄의 기운을 처음으로 보게 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정녕 봄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좋다.

 

매화 마을에 들어섰어도 매화는 찾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 보자 하는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환하게 웃고 있는 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매화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봄을 만나지 못하고 가는 것일까?

 

“어머나 ! 매화 꽃봉오리가 피어나려고 해요.”

 

집사람의 감탄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수많은 매화 꽃봉오리들이 힘을 내고 있었다. 포도송이처럼 열려있는 꽃봉오리들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절실한 마음을 봄은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지극한 정성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매화 꽃봉오리 사이로 하얀 미소가 배어나고 있었다. 봄의 기운을 받아서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워 고개를 내밀지 못하는 처녀의 모습을 닮고 있었다. 봄의 오묘한 모습이었다. 경이로운 봄의 자태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봄의 흥겨움에 푹 빠져들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뭐 좀 먹읍시다.”

 

지리산의 나물 맛을 보고 싶었다. 조금 멀었지만 화엄사 입구에 있는 한정식 집을 찾았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취나물이며 돌나물, 그리고 도라지며 더덕 등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봄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봄의 얼굴에 취하고 봄의 맛에 젖어드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입춘대길이라고 하였던가. 올해에는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봄을 찾아 나서서 봄을 만났으니, 즐거웠다. 거기에다 봄의 미각까지 즐겼으니,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오직 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원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봄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채워간다면 아름다운 나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매화 꽃봉오리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남 광양시 매화 마을에서(08.2.3)


태그:#기다림, #매화,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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