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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2. 2㎞ 남았다."
"예? 그래요. 아 헉 헉… 그렇구나."

그것은 분명한 착각이었다. 드라마와 영화, 잡지 등을 보면 가끔 성인이 된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가거나 등산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서른살을 눈앞에 둔 나는 종종 그런 것을 볼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아직까지 아버지는 내게 갈 길을 보여주시는 분인 것 같다
▲ 아버지 아직까지 아버지는 내게 갈 길을 보여주시는 분인 것 같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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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나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버지께서 몇 번이고 같이 산에 가자 해도 끝까지 안 간다고 버티었던 기억들이 종종 떠오르곤 했다. 그래서 한 번쯤은 꼭 아버지와 같이 산행을 하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오늘에서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지나가는 말로 "같이 산에 갈래?"라고 묻자 과감하게 '예'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늘 '안 간다'는 대답만 듣다가 아들이 '예'라고 대답하자 기분이 좋으셨나 보다. 1년 중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냈는데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이라도 '잘 해드리자'고 결심했기에 아버지께서 기분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같이 산을 오르면서 '쥐포 사주면 산에 갈게'라고 조르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좀 진지한 얘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가끔 다른 이들이 말하던 작아진 아버지의 어깨를 볼 수도 있을까 하는 이상한 기대감(?) 같은 것도 생겼다. 산에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와 이런 저런 얘기도 많이 하면서 어린 시절 멀게만 느껴지던 아버지를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대하던 등산의 순간이 왔다. 등산화를 꽁꽁 맨 후 열심히 첫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처음 10~20분간 조금씩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 날 했던 대화의 전부였다. 산을 오르면서 아버지와 인생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할 것이라는 그런 아름다운 상상은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산에 잘 다니지 않는 나를 위해서 최대한 쉬운 길로, 게다가 그것도 느린 걸음으로 걸으셨지만, 육중한 몸을 가진 데다가 운동도 잘 안 하는 나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잊은 지 오래였다. 아버지께서 오늘 가자고 했던 목표 지점까지 빨리 도달했으면 하는 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아 있었다.
▲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아 있었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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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쯤 올랐을까.

"그러니까, 중모야. 우리가 지금 여기야. 우리가 가려는 데까지 가려면 이만큼을 더 가야지."

아이고, 아버지! 한참을 걸어온 것 같은데 아버지께서 가리키고 있는 이정표를 보니 아직도 목표 지점까지 가려면 한참이 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출발, 여전히 난 아버지와 인생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올라가면 갈수록 너무 힘들어서 손자까지 보셔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아버지 옷을 붙잡고 매달려 가고 싶었다. 그랬으니 아버지 등이 작아 보였을 리가 있겠는가. 작아진 아버지 등을 보겠다는 내 이상한 기대감은 그렇게 무참히 깨졌다. 그렇게 열심히 올라갔더니 이제는 얼마나 남았다는 자세한 이정표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2.2㎞ 남았다."
"예… 아버지… 헉."

2.2㎞ 남았다는 소리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 아버지께서 물었던 이야기에도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안 힘들지?"

끄덕이고 나니 '아, 잘못 끄덕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다시 말할 기운도 없었다. 힘들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 앞장서서 올라가는 아버지 등만 보고 그렇게 열심히 걸었다. 나는 그렇게 목표 지점을 향해 걸으면서 오로지 아버지 등만을 보고 걸었다. 다른 것을 볼 여유도 힘도 없었다.

'0.4㎞'

400m 밖에 안 남았단다. 아 신난다! 그런데 그 지점부터 길이 더욱더 가파르게 나 있었다.

"여기가 제일 힘들어. 여기를 넘을 것이냐. 말 거냐. 결정해야지. 인생도 마찬가지야. 쓰러지고 싶은 순간에 견디고 넘을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쓰러지고 포기할 거냐지."

책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종종 들었던 말이긴 하지만 아버지께 들으니 어쩐지 새로웠다. 그래, 일단 거의 다 왔으니 끝까지 오르자. 조금 더 오르자라고 마음을 다 잡았다. 목표 지점이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저기까지만 가면 되는 거야. 그러면 되는 거야. 조금만 더 참자.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드디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굉장히 기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듯한 느낌이었다.

목표 지점에 도달해서 본 산의 모습
▲ 산 목표 지점에 도달해서 본 산의 모습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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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지점에 서서 아버지와 사진을 한 장 찍고 아래를 한 번 내려다 본 후 다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께서 아이젠(강철로 된 스파이크 모양으로, 얼음 따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등산화 밑에 덧신는다)을 건네주셨다. 아직 산에는 눈이 안 녹아 있었기에 내려가는 길에는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께 건네 받고 신발에 아이젠을 달려고 노력은 했으나 어떻게 차는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아이젠을 등산화에 착용하지 못하고 쩔쩔매자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서 내가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아버지께서 신발에 아이젠 다는 것을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 보기에 약간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자식들 나이가 몇 이든 간에 '차 조심하라'며 아기처럼 생각하는 부모님들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쉬웠다. 덕분에 올라오는 내내 헉헉거리던 나도 좀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께 '자국을 남기는데 도전하겠다'는 뜻을 과감히 밝혔다. 산에 올라오는 길에 아버지께서 내게 자국을 남기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자국이요? 무슨 자국이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애매했다. 사진을 찍자는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 얘기는 눈이 수북히 쌓인 곳에 가서 두 팔과 발을 활짝 벌리고 누운 자국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산에 왔다 갔다는 자국을 남기라는 뜻이었다. 의외로 '아버지도 애 같은 면이 있으시네'라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이 추운 겨울에 눈밭 위에 누울 마음은 선뜻 나지 않았다.

그러다 내려오는 길에 긴장도 많이 풀렸고 해서 아버지 말대로 눈밭에 누워 자국을 남기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생각만큼 차갑지는 않았다. 아버지께서 이런 의외의 낭만적 면모가 있다는 것을 추억하기도 할 겸 제대로 된 자국을 남기기 위해 두 번이나 남는 수고를 마다하지도 않았다.

아버지께서 제안하신 산에 자국을 남기는 방법
▲ 자국 아버지께서 제안하신 산에 자국을 남기는 방법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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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지 않은가. '아버지랑 산에 가서 뭐했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자국을 남겼어'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 올라가는 길에 그랬던 것처럼 내려가는 길에도 난 여전히 아버지 등만을 보고 걸었다.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목표처럼 졸졸 따라 다녔다. 아마도 아직까지는 아버지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커다란 존재인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산에서 다 내려올 때쯤에는 마음 한 쪽에 묘하게 알 수 없는 울림이 왔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아버지랑 같이 산행을 한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내게 아버지가 던지신 한 마디에 난 저절로 '아이고 아버지 어디까지 가오리까?' 하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

"아들아, 곧 설인데 식당에서 밥 먹고 농협 가서 장 봐서 들어오자."

피곤한 마음에 집에 가서 잘 생각만 하고 있는 아들에게 곧바로 장 보러 가자니, 역시 우리 아버지와 등산하면서 인생을 논하기에는 내 체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이겠다. 아버지와 했던 즐거운 산행의 추억도 잠시, 벌써부터 걱정이다. 다음에 아버지께서 산에 같이 가자고 하면 그 때는 따라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유행가 가사를 따라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아 어쩌란 말인가.'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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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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