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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참여연대에서 있었던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 선보상 등 특별법'에 대한 의견발표 기자회견.
 31일 참여연대에서 있었던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 선보상 등 특별법'에 대한 의견발표 기자회견.
ⓒ 김명은·이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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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서울 사람만 국민이여! 우리들은 부잣집 강아지만도 취급 안 혀."

31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 피해주민 선보상 등 특별법에 대한 의견발표 기자회견' 자리. 마이크를 잡은 태안 유류피해투쟁위원회 정온영(64) 투쟁위원장이 울분을 토했다.

정씨 등 태안 주민들은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현대오일뱅크 화주 유조선 충돌 기름 유출사고 법률대책회의(이하 법률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중공업 기름유출사고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입장을 전하는 한편 현재 각 당에서 내놓은 태안 관련 특별법률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생계지원비 반갑질 안혀... 그 돈 드러!"

태안 주민 김을회씨는 노무현 대통령과 17대 국회의원들을 향해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해야 할 일을 깔끔하게 정리해 달라"며 "태안 군민들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던 김씨도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말을 전할 때에는 높아지는 목소리를 억누르지 못했다.

"뒤에 숨어 눈치만 보는 모습 지켜보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태안을 방문해 주민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각별한 신경을 써 달라."

정온영 투쟁위원장은 사투리를 섞은 거침없는 단어 선택으로 모두의 주의를 집중시켰다.

"모든 인간사회 거짓은 언젠가 다 드러나는 법이여. 진실 밝혀서 잘잘못 가려내는 데 왜 법이 필요하냐는 거여. 약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매질 뿐이여. 우리는 정부보상이나 생계지원비 이런 게 반갑질 안 해, 그 돈 드러(더러워)! 어서 이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당사자를 속죄시키란 말여."

2% 부족해, 발의된 특별법

남현우 민변 대전충청지부 부지부장은 현재 발의된 3당 특별법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반적인 유류운용에 관한 특별법 형식으로 제정하되, 태안의 특별한 상황을 소급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특별법 명칭에서 '태안'이라는 지명을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명명 때문에 실제로는 전혀 오염되지 않은 태안 지역의 농, 수산물 유통이 커다란 타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지원에 있어, 정부가 지원금을 '의무적으로' 선지급하는 조항 역시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이 지급 금액은 국제기금협약 보상한도액을 초과하는 경우라도 국가가 무조건 지급해야 한다. 선지급 외에, 업종을 전환해야 하는 어업 종사자에 대한 지원 등 특별 지원과, 선지급의 구체적인 분배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남 변호사는 환경복원과 관련 특별해양환경복원지역의 지정, 피해자대책회의의 구성과 국가가 오염 제공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규정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중과실 입증, 죽은 원혼 달래주자"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태안주민 30여 명이 시위를 하고 있다.
 3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태안주민 30여 명이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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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인수위 앞 태안주민 시위.
 30일 인수위 앞 태안주민 시위.
ⓒ 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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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 해결 없이 대한민국 어민 없다"
"중과실 입증하여 죽은 원혼 달래주자"
"무성의한 사과발표 태안군민 우롱마라"
"검찰수사 못 믿겠다 유류특검 쟁취하자"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삼청동 인수위원회 앞으로 몰려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시간 어민 대표단은 인수위 2층 소회의실에서 이경숙 인수위원장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수위 앞 경찰들이 집회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태안어민들의 앞을 막자 이들의 즉석 시위가 벌어졌다. 먼저 태안 어민 전지선(49)씨가 나섰다.

"여러분, 고기를 잡았는데… 기름냄새가 나서… 엊그저께 우리 고기 잡은 거 다 버렸습니다. 국회의원들… 고기 잡은 거 당신들이 와서 다 가져가! 가져가라고!"


어민들이 저마다 "옳소!"를 외쳤다.

태안 어민들은 현 정권과 새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탓하는 구호를 외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라는 노래를 개사한 '삼성에서 태안까지'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삼성에서 태안까지 택시요금 이만 원…… 안 온 국민 없는데 국민 땜에 먹고사는 이건희는 왜 못 와. 우리 민족 우리네 땅 삼성만 왜 못 와. 경적을 울리며 삼성에서 태안까지 꿈속에라도 배상받아 달려볼란다."

시위에 지친 성승현(50)씨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시위에 지친 성승현(50)씨가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 김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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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외칠 힘도 없었는지 시위대 옆에서 주저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던 성승현(50)씨는 이렇게 말했다.

"보상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직접적으로 연관 없는 사람도 300만원이나 탔는데 우리 어민들은 바다만 믿고 살아왔는데도 보상은 한 푼도 못 받고….

어느 세월에 (보상금을)줄라는지 죽은 다음에 줄라는지. 보상금이 뭔 기준 없이 나눠지고 있어. 고기 한 덩이 던져놓고 이거 먹으래. 이게 무능한 이 나라의 정부 나리들이여…."

이들은 인수위 앞에서 1시간 남짓 시위를 벌이다가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돌아갔다.

바다를 무대로, 바다에서만 일했던 수십 년. 낯선 서울에 올라와, '시위'와 '기자회견'이라는 낯선 행위를 한 태안 주민들. 때론 격앙된 목소리로 구호도 지르고 소리도 질렀지만 오늘 하루 이들의 표정은 바다처럼 어두웠다.

덧붙이는 글 | 김명은, 이재덕 기자는 <오마이뉴스> 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태안기름유출사고, #시위, #특별법, #삼성, #인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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