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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의 새 교육정책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 100개와 기숙형 공립학교 150개 등을 설립하는 방안, 수능에서 영어를 빼고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하는 방안, 영어와 그 외 과목 전부를 영어로 수업하는 방안 등이다.

 

한 편에서는 벌써 학원가가 인수위의 교육정책으로 웃고 있다는 말이 나돈다. 과연 인수위의 교육정책이 현실적으로 엘리트 교육을 확대하면서 일반 교육을 확고히 하고, 사교육 의존을 줄일 수 있을까?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유명학원들을 찾아가 이번 인수위의 정책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큰 그릇을 만들어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법”

 

“인수위의 정책 방향으로 볼 때 교육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수원시 장안구 정자3동에 위치한 ‘교육그룹정진’의 중등부 교무부장 김영배 씨가 인수위의 교육정책에 대해 내린 평이다. 여론에서 인수위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 김 씨도 부정적 평을 내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긍정적인 내용이다. 그 이유를 묻자 “외고, 특목고가 명문대 입시 학원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것이 좀 덜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정책 방향대로라면 내신 비중이 높아져 학교교육만으로도 외고나 특목고 입시준비가 가능 하겠지요”라고 답했다. 김 씨는 “정책 방향과 내용에 인성교육의 비중을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에게도 중학생 자녀가 있어 느끼지만, 학원은 단순히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때의 ‘보습’ 수준에 그쳐야 한다고 봅니다. 인수위는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목표보다, ‘공교육을 살리자’라는 목표를 세워야 해요. 사교육 의존을 줄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미 사교육계에는 프로라고 칭할 만한 이들이 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공교육을 탄탄히 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수위는 교육을 자본주의의 흐름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돈이 없기에 개천에 용이 아닌 ‘지렁이’만 남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여기 학원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막고자 학원 내에서 성적이 우수할 경우 원내 학원비를 지원하는 장학금 제도를 운영합니다. 학원에서 실력을 쌓을 수 있도록 장려하죠. 인수위의 교육정책도 이러한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합니다.”

 

그는 다음으로 인수위의 정책방향에 대해 짚었다. 정리해보니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예리한 평이다. 김 씨의 말대로 “친기업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라는 이명박 당선인의 발언에 이어 자본주의적인 교육정책이 등장하고 있다. 부유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아래 자사고), 기숙형 공립학교 증설 방안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자사고로 인해 입시의 내신 반영 비중이 최고 30~40%까지 높아지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내신 대비를 위해 평소에도 공부하게 될 것이니 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겠죠. 학부모들이 이 정책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정책을 따라 맞춤교육을 하기 때문에 교육정책이 자주 바뀌면 지치기 때문이죠. 학부모는 아이가 가장 기초적인 부분인 국어, 수학 등을 탄탄히 하도록 지도하고 중학교 2~3학년에 이르러 아이의 적성 등을 정확히 진단하고 아이와 논의하여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지요. 큰 그릇을 마련해야 그 안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법이니까요.”

 

자사고와 기숙형 공립학교 증설방안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밝힌 김 씨는 이 정책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인수위의 이 정책을 듣고 우리나라가 돈과 능력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로 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자사고는 기숙사비나 기타 비용을 부담할 수 있어야 갈 수 있는 학교죠. 이 학교들을 농어촌을 우선으로 하여 세워봤자, 농어촌에는 학생들이 현저히 적기 때문에 도시에 있는 부유한 학생들이 농어촌의 자사고로 몰려들겠죠.”

 

김 씨는 그 외에 자사고가 늘어나면 일반계 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떨어지는 부분을 예로 들었다. 지금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은 아니듯 일반계 고등학교도 그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될 수 있다. ‘자사고 입학에 실패하면 낙오자’와 같은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학교 간 서열화를 더욱 극대화할 것이다. 김 씨는 이에 대한 대안도 내놓았다.

 

“선발과정을 내신 위주로 하면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겠죠. 수학, 국어 등 기본 과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갖추도록 내신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이 어떤 특기를 갖고 있는지 파악해 그 학생이 어떤 학교에 진학하면 좋을지 방향을 논의한다면 좀 더 나은 방안이 되겠죠.”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단순한 '교육전략'을 제시하는 꼴"

 

김 씨는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 방안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영어몰입교육 방안이 발표되었을 때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육부장관이나 인수위가 중소도시의 고등학교 3학년 진학 교사를 한 달이라도 해봤다면 이런 방안을 내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들의 보좌관이 교육현장에 있다 한들 그들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지도 의문이 들더군요.”

 

인수위의 영어 몰입 교육 방안은 방향과 목표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 책상머리에서 의논한 방향과 목표와 현장에서 직접 수업하는 선생님들의 경험에는 큰 차이가 있는 법이다. 김 씨의 말대로 인수위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상태. 30일에 영어몰입교육 등 인수위의 교육정책에 관한 공청회가 열린다고 하나 이를 통해 인수위가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김 씨는 덧붙여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정책을 내놓고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그 때 한 발 물러나는 방식으로는 단순한 ‘교육전략’만 나올 겁니다. 전국 중· 고교 교사들을 모아 제대로 된 공청회를 열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죠.”

 

그는 인수위가 한발 물러서 영어 수업만을 영어로 수업하겠다는 방안으로 입장을 바꾼 상황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했다. 학교에서는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학원들이 원어민교사와의 영어수업을 공공연히 시행하고 있으니, 인수위가 원하는 영어수업은 학원에서나 가능할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원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어 인수위의 영어 몰입교육으로 인한 교권하락도 우려했다. 교권하락은 학생과 교사 간의 믿음이 부족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곧 공교육의 부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는 영어로 수업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교사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능력이 있다고 느끼면 선생님이 어느 정도의 체벌과 비속어를 사용하더라도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지금보다 더 학교 교사를 불신할 수 있습니다.”

 

인수위가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름을 인재과학부로 바꾸는 안에 대해서도 물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미 ‘인재 선발’ 교육이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그들이 시행하고 실천하는 내용이 더 중요하죠. 그러나 방향이 좋다 한들 정책을 너무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발생할 겁니다. 교육정책의 부작용은 ‘인재(人災)’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변화무쌍한 교육정책을 분석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입시 학원들조차 인수위의 교육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인수위의 교육정책의 방향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너무 서둘러 방안을 마련하니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인수위가 제시한 방안들은 균형이 부족하고 현실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30일 열리는 공청회에서는 보다 현실을 반영한 실용적 대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수위, #영어몰입교육, #교육정책, #자사고, #수원정진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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