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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어느 말이 참인지,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애처롭거나 거칠다. 어쩌면 넘쳐나는 말들로 우리의 눈은 이미 흐려 있거나 귀는 절반쯤 막혀 있다. 그도 아니면 불구경을 하듯 넘치는 말들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TV 뉴스를 장식하는 사람들, 언제부터인가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이니 무조건 오리발이다. 능력 있으면 밝혀 보라는 식으로 자빠지니 지켜보는 사람들로서도 그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진실에 목 말라 하지만 그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작은 일을 큰 일이 난 것처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그들의 재주는 탁월하다.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집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먹이만 탐하지 먹이에 대한 예의를 표하지는 않는다.

지난주 금요일(25일) 가수 나훈아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들을 밝히고자 기자회견을 했다. 어제(28일)는 퇴임 한 달여를 남겨둔 노무현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긴급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이 나라의 대통령은 아직 노무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한 사람은 40년을 노래한 대중 스타, 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 두 사람의 기자회견엔 공통점이 있었다.

가수 나훈아를 위한 '꿈'의 변명

지난 1년여간 잠적해 온갖 괴소문에 휩싸였던 가수 나훈아가 25일 오전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공식기자회견 갖고 그간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
 지난 1년여간 잠적해 온갖 괴소문에 휩싸였던 가수 나훈아가 25일 오전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공식기자회견 갖고 그간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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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나는 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그렇기에 그를 둘러싼 의혹들에 관해서는 관여할 생각이 없다. 그 일은 도덕적인 문제이거나 그가 말한 대로 법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들을 믿는다.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그는 아닐 것이다, 하는 절대적 믿음으로 시작된 믿음은 아니다.

기자회견을 하던 날 그는 자신이 그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지냈는지 구구할 정도로 설명했다. 설명하지 않고서는 의혹을 풀 길이 없기에 했다. 구구하게 설명하는 것만큼 절박한 일은 없다. 그럼에도 말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그는 허리띠를 풀었고 급기야 바지 지퍼까지 내렸다.

스스로 당당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비웃고 조롱했다. 믿음의 한계상황.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할 세상을 만든 것은 가수 나훈아가 아니라 황색 언론과 중계방송하듯 전달만 하는 방송이다. 더불어 그들이 만들어낸 소문을 즐기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대낮에 러브호텔로 들어간 남녀가 나훈아의 괴담을 안주 삼아 사랑을 나누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 대중의 심리이다. 사람을 죽일 때는 최선을 다해 합심하지만 정작 그 사람을 살려야 할 때는 강산 쳐다보며 자연을 노래하는 식이다.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잠적했던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오지를 찾아 걷기도 하고 외국으로 떠돌기도 했단다. 그가 길을 떠난 이유는 잃어가는 '꿈'을 찾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꿈을 이해하는데 인색했다. 그는 대중 가수를 넘어선 예술가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예술가가 꿈을 찾아 떠나는 것은 필연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늘 부담이다.

예술가는 그 부담을 덜어내고자 떠난다.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떠난다. 떠남에서 만나는 것이 '새로움=창작의 기운'이다. 내가 고행과도 같은 길을 떠났다는 나훈아의 말을 믿는 까닭이다. 예술가는 생각이 정체되어 있을 때 예술가로서의 생명은 끝난다. 나훈아는 그것을 아는 예술가이다. 그래서 그는 떠났고, 방황했다.

그를 둘러싼 숱한 소문과 의혹은 그의 말대로 소문을 만들어낸 언론이 풀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자회견 이후 그를 둘러싼 의혹들을 추적한 기사를 본 바는 없다. 먹잇감의 반발에 자라목을 한 황색 언론. 그들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났다.

대통령 노무현을 위한 '고립무원'의 변명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과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라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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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려했지만 쓸쓸한 대통령이다. 그를 좋아했기에 애증도 크다. 한미FTA와 이라크파병, 평택 대추리 투쟁 등으로 인해 그의 병사들과 맞짱을 뜨기도 하고 그에게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가 지닌 건강한 철학과 삶의 진정성을 좋아한다. 

어제(28일) 오후 그가 기자회견을 했다.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예전보다 많이 떨렸다. 후임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게 할 말은 해야겠다고 작심한 시간. 그는 대통령이기보다 투사의 면모를 보였다. 그렇다. 그는 대통령보다 투사가 더 어울린다. 20년 전 그는 투사였다. 부당한 세상에 대해,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투사. 그것이 인간 노무현의 모습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을 하면서 많이 혼났다. 그가 혼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는 이도 있었고, 토론을 즐기는 대통령을 경박하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고졸 대통령인 노무현. 그를 무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이 땅엔 지나치게 많았다. 그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맛있는 먹잇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내심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만큼은 폐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지 못한 까닭도 있다. 진보를 표방하던 많은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지리멸렬해졌다. 관료화된 단체들은 각자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바빴을 뿐이다.

갈 길을 잃은 시민단체들은 노 대통령을 이용했고, 퇴임을 앞두고는 노무현을 버렸다. 대통령 노무현을 앞장세워 악법을 폐기해야 할 사람들이 먼저 살길을 찾아 나서거나 좌표를 잃고 방황했다. 진보단체의 총체적 문제점은 그렇게 생겨났다.

대통령 노무현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독주에 대해 일갈했다. 모두가 숨죽이며 눈치만 살피는 때, 그는 자신의 철학과 사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한때 그를 향해 해바라기 했던 이들의 고개 돌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지난 10년간 정부 정책에 대해 항복하라는 서명을 거부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가 할 일은 새정부 출범 후에 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좌파정부 10년'의 방점을 찍어야 할 사람이 노무현이라면 적어도 그런 말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비겁하게 등을 돌릴지라도 대통령인 그는 그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정권을 잃은 책임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정권을 연장하지 못한 책임이 노 대통령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노무현 정부와 좌파 정권의 몰락을 불러왔다. 국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국민들은 그 불안을 이겨낼 사람을 필요로 한 것뿐이다.

일본이 겪었던 경제불황과 미국이 안은 시장 경제의 불안이 대한민국 국민들까지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일로 국민들은 '경제살리기'를 외친 이명박을 선택했다. BBK 등의 온갖 의혹을 물리치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이명박은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이고, 신 경제 질서를 따라잡지 못한 노무현 정부는 지지리도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인권이나, 통일, 사회 양극화, 복지 등에 관심 쏟기보다 잘 살게만 해달라고 이명박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 것은 지난 10년 동안 할 만큼 했다는 평가를 국민들 스스로 내린 셈이다. 그 일이 노무현 정부와 '좌파정부'를 패배하게 했다. 그러하니 노무현 정부와 함께 시작한 많은 국회의원, 정치인들은 인간 노무현에게 화살을 돌려서는 안 된다. 그 일은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고 패륜을 저지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기자회견 자청한 대통령 노무현과 가수 나훈아의 공통점 '진정성' '잘난 척'

지난 1년여간 잠적해 온갖 괴소문에 휩싸였던 가수 나훈아가 지난 25일 오전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장에서 괴소문에 대한 진상을 위해 바지를 벗으려 하고 있다.
 지난 1년여간 잠적해 온갖 괴소문에 휩싸였던 가수 나훈아가 지난 25일 오전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공식기자회견장에서 괴소문에 대한 진상을 위해 바지를 벗으려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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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다. 노래를 통한 자신의 예술 행위에 대해선 누구 못지않게 최선을 다한다. 그 일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안다. 예술가로서 진정성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40여 년의 가수 생활을 한 나훈아. 우리나라 대중 스타 중에서 나훈아만큼 카리스마를 갖춘 이도 드물다.

대통령 노무현, 그의 무기는 진정성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의 진정성이 통하지 않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수준이 바뀌었거나 진정성의 가치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 앞에 선다. 이번 기자회견에선 대통령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국민들 앞에 섰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박하다. '명예롭게 전역하려면 입 조심하라'라고 짐짓 훈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세상은 이미 그의 편이 아니다. 발 빠른 사람들, 그들의 머리인들 빨리 돌아가지 않을까. 대통령이라고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겠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말은 했다.

가수 나훈아의 기자회견 대한 언론의 평가는 후하지도 박하지도 않다. 대신 나훈아 스캔들을 더 확산하고 낮은 수준의 루머만 만들어내기 바쁘다. 언론은 여전히 '지퍼 게이트'를 만들어내고,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가 지퍼를 내리는 장면을 패러디 한다는 우습지도 않은 기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언론들은 나훈아는 나훈아일 뿐이라며 그가 기자회견에서 부탁했던 것들을 간단하게 무시했다.

대중 스타에게 덧 씌운 불륜의 장막을 걷어라

나훈아는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언론이 나를 죽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괴담으로 심적 고통을 받은 두 여배우만큼은 살려내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어느 언론도 나훈아의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았고, 두 여배우를 거론하며 희희낙락했던 황색언론은 여배우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후속 취재도 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인수위를 향해 점령군처럼 굴지 말고 '법적으로 보장된 일만 해라'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말을 '어린 아이 떼쓰는 꼴'이라 평가 절하했다. 인수위는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고 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5년 내내 노 대통령에게 한 말이 있다면 '오만과 독선'이란 말뿐이었다.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는 절대로 오만하지 않고 독선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부조직법을 개정 또는 폐기하면서 '정당한 절차를 거쳤던가'라고 한 노 대통령의 질문이 오만과 독선이라고 했다. 전국민의 3분의 1 정도의 지지를 받은 권력치고는 힘이 지나치게 강한 모습이다. 국민들이 그런 것까지 '백지 위임' 하지 않았다고 대통령이 말했으나 그들은 그 시간에도 권력을 다듬기 바빴다.

기자회견? 무시하면 그만이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조직개편 관련 발언을 한 것은 국회의 자율권과 입법권을 침해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부조직개편 관련 발언을 한 것은 국회의 자율권과 입법권을 침해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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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이나 나훈아의 기자회견,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경남 사투리를 썼다. 적잖이 화난 어조도 비슷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진정성은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국민 일부는 받아들였는데 정치권을 비롯해 언론이나 방송 등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정답이겠다.

예비 야당인 통합신당은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일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오'하며 슬며시 등을 돌렸다. 대통령과 나눈 정치 철학적 의리보다는 총선에서 금배찌를 지키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이다.

대통령 노무현과 가수 나훈아, 두 사람은 철학과 사상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잘난 척 한다는 말도 공통으로 듣는다. 잘 나지도 못한 이들이 쥐뿔 달고 잘난 척하는 것보다는 몇 백 배 낫다. 이 시대는 두 사람을 필요로 했고, 두 사람은 그 기대를 나름대로 충족시켰다. 잘난 척하려면 자신의 철학이 분명해야 하는 것쯤 안다면, 그만큼의 철학을 갖춘 후에 두 사람을 비난하거나 조롱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과 가수 나훈아의 기자회견. 당당하지만 착잡하게 끝난 두 사람의 기자회견은 지금도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시대의 요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두 사람이 한 말을 오래 기억하겠지만 세상은 그들을 일부로 외면하거나 희화화 한다. 그것이 재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2008년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태그:#나훈아,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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