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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 토요일(19일)의 일입니다. 앞서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 '새신랑 활짝 웃는 날, 중년의 친구들은 울었다'의 후편쯤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날은 친구의 결혼식이 있던 날입니다. 마흔 일곱의 친구가 스물 셋의 베트남 여성을 배필로 맞은 날이기도 합니다.

 

노총각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서른 명 가까운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결혼식장에 좀체로 가지 않는 나까지 갔으니 성공적인 결혼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날 온 친구들 중에선 인천에서 온 친구도 있고, 서울에서 온 친구들도 여럿이었습니다.

 

결혼을 한 친구도 있고, 재혼을 한 친구도 있습니다. 그날 결혼한 친구처럼 노총각도 서넛은 되는 자리였습니다. 대장암에 걸려 빵모자를 눌러 쓰고 온 친구도 있고, 에쿠스를 타고 온 친구도 있습니다. 20년만에 만난 친구도 있고, 딸을 서울대학교에 입학시킨 친구도 있었습니다.

 

친구의 느닷없는 전화, 지구대에 끌려와 있으니 와라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퍽 늦게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술자리를 옮기는 차수를 거듭하면서 친구들은 하나 둘씩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도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술 자리가 끝날 즈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켜주던 친구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끊은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만득이 지구대에 있다는데?"

"거긴 왜?"

"몰라, 그냥 좀 와보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네."

 

만득(가명)이, 술자리가 2차로 옮겨질 때 사라진 친구였습니다. 결혼식 끝나고 나타나서는 피로연 자리에서 잠시 얼굴 비추고 사라졌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가 지구대에 간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습니다. 기억하기로 이런저런 일로 별(전과)이 몇 개는 되는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가자."

"뭐 좋은 일이라고 둘씩이나 가냐. 나 혼자 다녀올 테니 넌 그냥 집에 가라."

"뭔 일인지 모르겠지만 쉽게 나오지 못할 일일 수도 있잖어. 그럼 무슨 방법이라도 찾아봐야지."

 

만득이와는 살아오면서 한 때라도 친하게 지낸 사이가 아니었지만 함께 지구대로 가기로 했습니다. 술안주로 먹던 족발을 챙겨들고 택시를 탔습니다. 아, 족발은 왜냐고요. 집에서 키우는 개에게 먹일 별식입니다. 언젠가는 서울의 어느 음식점에서 먹던 것을 정선의 집까지 싸가지고 온 적도 있으니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택시에서 내려 지구대로 들어가니 만득이와 한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주위엔 근무 중인 경찰 서넛이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안면이 있는 경찰도 있고 모르는 이도 있습니다. 여자가 있는 상황으로 미루어 쉽게 끝날 자리는 아닌 듯싶었습니다.  

 

"뭔 일이야?"

"내참, 쪽팔려서 원."

"무슨 일이냐니까!"

 

재차 묻자 옆에 있던 경찰이 대신 대답을 합니다. 사건인 즉슨, 만득이가 한 양주집에서 양주 한 병을 마시고 술 값을 내지 않겠다는 겁니다. 얼마냐고 물으니 만득이와 함께 앉아 있는 여성이 계산서를 내밉니다. 계산서에 적혀 있는 금액은 32만원. 많기도 합니다. 무슨 술값이 이렇게 비싸냐고 물으니 아가씨 팁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친구, 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사나?

 

만득이가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마다하고 고작 간다는 곳이 여자가 있는 비싼 양주집이었습니다. 물론 그 일이야 개인 취향이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아예 그런 술집엘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이런, 친구하고는. 술값 때문에 이런 데 드나들긴 우리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얼른 해결하고 나가자." 

 

이십 대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오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이입니다. 누가 뭐래도 나잇값을 해야 할 때고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인 것입니다.

 

"바가지를 씌워도 유분수지. 난 못해!"

 

만득이는 곧 죽어도 술값 계산은 못하겠다고 버팁니다. 바가지를 씌웠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런 술집에서 양주 마셔본 일이 하도 오래라 윈저라는 술값이 어느 정도인지 나 또한 짐작은 되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럼 끝까지 가봅시다."

 

양주집 주인이 팔을 낀 채 만득이를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이쯤되면 돈 32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 싸움으로 흐를 공산이 더 큽니다. 술집의 입장에서는 '그래? 그까짓 돈 안 받아도 된다, 그러니 혼 좀 나봐'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득이 입장에선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가슴에 단 '별'이라도 없으면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그날의 상황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갑 꺼내봐."

 

만득이가 "돈도 없어"라며 지갑을 꺼내줍니다. 만원권만 꺼내니 10만원 정도. 그 돈을 술집 주인에게 건네주며 "이 정도면 안 되겠어요?"하니 본 체도 안합니다. 그러자 만득이가 돈을 챙겨넣으며 "배 째라고 해"라고 합니다. 그때 아는 경찰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는 학교 선배이기도 합니다. 

 

"형, 저 친구 저렇게 버티면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되긴, 즉결에 넘어가는 거지."

"별이 좀 있는 친구거든요."

"그럼 얼른 계산하고 나가야지."

 

답이 간단합니다. 그는 지구대나 경찰서엔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힘든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민득이도 그런 경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술집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지구대까지 끌고 온 것은 일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겁니다. 

 

함께 간 친구는 술집 주인을 잡고 사정을 해보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만득이가 자세를 낮추며 사과를 하면 될 것도 같지만 돌아가는 판세를 보아하니 그걸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술값 때문에 지구대에 앉아 실랑이 하는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민득이가 처한 일을 모른 체 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습니다.

 

친구 꺼내주고 돌아오다 음악 들으며 눈물 '줄줄'

 

지구대 옆에 농협 건물이 보였습니다. 지난 번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상금도 있고 하니 그 정도 돈은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농협으로 갔습니다. 20만원을 찾아 들고 지구대로 돌아왔습니다. 잔액이 얼마나 있는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어서 만득이를 지구대에서 꺼내주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술집 주인에게 돈을 건네주고 만득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학교 선배가 "니가 최고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지만 마음은 퍽 쓸쓸했습니다. 내 형편이 술값이나 계산해줄 정도로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구대를 나오자 민득이가 내게 "왜 술값을 니가 내냐"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거참,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경찰이 "이런 고약한 사람을 봤나. 물에 빠진 사람 꺼내주니 보따리 달라고 하는 것과 같구먼" 합니다.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며 점잖게 한마디 하고 택시에 올랐습니다.

 

"앞으론 이런 식으로 술 마시지 마라."  

 

만득이와 헤어지며 돌아오는데 우울해집니다. 나도 힘들게 살아가지만 만득이가 왜 저렇게 살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글루미선데이'라는 곡이 흘러 나왔습니다.

 

글루미선데이, 1933년에 발표된 곡으로 수많은 이들을 자살로 내몬 노래입니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그 노래를 듣거나 연주를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그러잖아도 친구로 인해 착잡한데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마음을 흔들고 지나갑니다.

 

친구의 삶이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만득이. 그러한 일로 여직 노총각으로 살아가는 만득이. 아직도 술값 때문에 지구대나 들락거리는 그 친구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만득이의 마음에 희망이라는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친구가 살아온 서러운 삶을 생각하니 눈물이 주륵 흘러 내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눈물은 쉽게 그치지 않았습니다. 울음소리를 큭큭 삼키며 친구의 고단한 삶을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친구가 걸어온 불행한 걸음을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오랜만에 실컷 울었습니다. 삶에 있어 울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친구 때문에 그동안 참고 지냈던 세월까지 다 울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둔 밤시간, 외출했던 주인이 돌아왔다고 개가 겅중겅중 뜁니다. 주인만을 기다리는 개를 보며 또 울었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진짜 미안하다.

 

엉뚱한 일로 돈 다 날리고 진짜 필요한 곳은 고작 1만원만

 

오늘 아침 관여하고 있는 문학단체에서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반도 대운하 반대 기행과 이랜드비정규 노동자돕기 모금'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운하 반대 기행은 오마이뉴스에 '작가들, 경부운하를 비웃다' 기사에 보도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직접 몸으로 참가하지는 못할 일이라 모금에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1만원을 송금했습니다. 그리곤 또 서러워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지난해부터 어떤 무식한 놈 하나가

낙동강과 한강, 금강, 영산강 등을 억지로 교미 붙여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대운하를 만든다고 지껄이기에

콧등으로 흘리고 말았으나

어찌 어찌 자꾸만 그것이 현실화 되는 듯도 하여

찬물에 말아 먹는 밥알이 고드름처럼 곧두서는

술 마신 다음 날 아침,

메일을 여니 운하 막는 일에 나서는 이들의 여비를 탁발한다고 하여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니

5만 3천 2백 50원이 들어 있는데,

그 돈을 다 보내자니 득달 같이 날아 올 독촉 고지서가 두렵고

하여

겨우 1만원을 송금하는데 그 적은 돈을 보내는 비용이 또 5백원

남은 4만원이 내 목숨을 지켜 주지도 않는데, 에이 그걸 남겨서 무얼하자고 하는 생각이 머리를 흔들고

그래도 전재산의 5/1을 냈으니 최선을 다 한 것이라고 혼자 딸딸이도 치며

눈 가득한 겨울 아침을 보낸다

 

- 강기희 글 '어떤 무식한 놈 하나가' 전문

 

대운하 반대 기행에 관련한 내용의 메일이 며칠만 빨리 왔어도 양주 마시며 여자 엉덩이 더듬었을 돈 값은 지불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차피 좋은 일에 쓰여질 돈이라면 좀 더 명분있고 세상을 위한 일에 쓰여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모르지요. 그날 이후 친구도 '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하며 정신차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는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비록 술값이지만 돈 20만원 정도 투자할 만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 그 친구가 멋진 사람으로 변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태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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