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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왼쪽)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왼쪽)와 부시 미 대통령(자료사진
ⓒ 권우성/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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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마이뉴스>와 기타 한국 미디어들의 대선 관련 보도를 보니 미국의 대선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으면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미국 대선과 비슷한 특성들은 절망스러운 반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사실은 희망을 품게 합니다.

한국과 미국 선거의 닮은 점① "돈이 말한다"


우선 한국의 이번 대선과 최근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미국이나 한국이나 돈이 선거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에서는 돈을 언론 자유의 한 형태로 여기며, 선거에서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은 법적으로 보호되는 권리입니다. 

선거란 사실상 특정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한편 다른 목소리들을 막아버리며, 특정 이익집단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과정입니다. 논제는 누구의 목소리와 이익이 커지고 누구의 목소리와 이권이 줄어드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는, 돈이 개인적인 이익의 증진을 도모하는 정당한 수단입니다. 흔한 영어표현을 빌리자면 "돈이 말을 합니다 (Money talks)". 즉, 돈이 있는 사람은 표현의 수단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말을 듣게 할 수 있는 권력과 자원이 있습니다.

2000년의 미국 대선에서 조지 부시와 앨 고어의 선거운동 비용은 합계가 무려 3억 6백만 불($306 million)에 달했습니다(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 자료). 2004년 선거에서는 그보다 더욱 심하게 조지 부시는 3억불($300 million)을, 존 케리는 2억 4천1백만 불($241 million)을 썼습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선거에 출마하고 광고를 내고 3억불을 쓸 '권리'가 있으므로 이런 돈이 판치는 선거제도도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물론 그 '권리'가 3억불을 내줄 친구들이 있는 경우에 좀 더 의미 있는 권리가 된다는 게 자명한 일이지요. 결국 3억불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으로 고위직에 당선된 사람들은 도와준 사람들의 이익을 더욱 도모하게 됩니다.

한국의 선거제도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돈이 선거 출마자들의 주요 캠페인 수단입니다. 지난번 대선 때의 차떼기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차떼기가 우연한 사고였을까요? 한국의 선거제도를 입안한 사람들이 이런 금권선거를 예견하지 못했다고 보십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처음부터 재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기획' 된 선거제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의 주요 대선후보들도 상당한 재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국의 선거제도가 애초에 의도된 바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돈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도록 선거제도를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금권선거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선거에서 돈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요? 만약 어떤 사회가 평등하고 구성원들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선거에서 돈의 영향력이 어떻든지 간에 특정 집단에 보다 유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은 부의 불평등을 전제하고 보장하는 것이며, 자본주의라는 불평등한 체제 속에서 만들어진 선거체제는 가진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많은 이들이 착각하듯이 '시스템'이 잘못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금권이 판치는 것입니다.

지난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에 항의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원(자료사진).
 지난 2003년 한나라당의 차떼기에 항의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원(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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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선거의 닮은 점②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행위

둘째, 대중이 스스로 불리한 선택을 하는 현상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많은 이들이 초등학교에서 배운 대로 선거제도는 다수 대중이 민중의 이익을 위해 일할 정치적인 지도자를 뽑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 이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한다는, 상식과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한국에서도 대선을 코앞에 둔 현재, 이명박씨를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명박씨의 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명박씨가 경제면에서 유능한 대통령이 될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부시 집권기간 중에 대다수 미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각종 복지 혜택, 의료, 교육 예산은 크게 삭감되었습니다. 동시에 최상층의 사람들은 세금 혜택과 여러 친자본적 정책으로 더욱 부를 늘릴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2년에 발효된 부시의 세금 감면 정책은 그 효과가 완전히 자리를 잡을 2010년까지 전체 세금 감면액의 52%가 최상위 1%의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되어있습니다.(참고로 최상위 1% 사람들의 2010년 평균 소득은 150만 불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미국시민들이 여기에 어떻게 반응했냐고요? 2006년 부시를 또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지지율 1위라는 이명박 후보의 경제정책도 이와 비슷합니다. 친기업, 반환경, 반노조 일색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은 IMF 이후 심화되어온 한국경제의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논리적으로라면 양극화와 고용불안정으로 피해를 볼 절대다수의 국민들, 예비취업자들인 대학생들과 저소득층은 이명박 후보를 외면해야 하지만 적어도 현재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과 미국 선거의 닮은 점③ 거짓말도 통한다

셋째, 미국인들은 부패와 거짓말과 패거리주의에 찌든 대통령을 선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재 선출했습니다. 부시가 친척과 친구들에게 온갖 부당한 특혜를 베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과거사도 간혹 저지르는 일도 아닌 고질적인 행태이며 삶의 방식 그자체입니다.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친구들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임명하는 것도 그의 습관입니다.

예를 들어, 여성보건부의 부장자리에 그의 지지자였던 남자 수의사를 임명한 적도 있었고, 연방재해청장으로 아무런 경험도 자질도 없는 친구를 임명하여 카트리나 대재해 사건 당시 놀라운 무능을 과시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선거 당시 그의 보좌관 칼 로브는 플로리다가 대선을 좌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브는 조지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와 합작해 15%에 달하는 플로리다의 투표용지를 없애버리거나 득표수 계산에서 빼게 했습니다.(투표수에서 포함되지 않은 15%의 절반은 흑인표였습니다.) 부시는 플로리다의 최종득표수에서 간신히 547표를 더 얻고 당선되었으니 플로리다의 투표수 조작이 부시의 선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게다가 부시는 사담 후세인과 9·11공격을 억지 연루시키고 이라크에 존재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인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의도적인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 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 손실을 가져온 카트리나 재해 당시 늑장대처에 대해서도 수많은 거짓말을 했던 것이 추후에 속속 드러났습니다. 이런 거짓말에 미국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느냐고요? 부시를 재당선시켰습니다.

왜 미국인들은 거짓말과 사기행각을 일삼는 사람을 선출했을까요? 미국인들은 똑같이 한국 사람들이 왜 이명박씨를 지지하느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수많은 의혹에 싸여있는 이명박씨를 보면 부시가 생각납니다. 위장전입, 자녀 위장 취업, 탈세, 의료보험 사기, 사회적 약자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비하발언, 부동산 투기의혹, 결정적으로 BBK 사기와 수없는 거짓말 행적을 보면 그의 지지율은 급락해야 합니다. 희한하게도 그는 현재 여타 후보들을 월등히 앞서고 있습니다.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환경연합, 여성민우회 등 전국 7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명박 후보 사퇴 촉구 48시간 공동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17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BBK 사건 진상규명과 이명박 후보 사퇴 촉구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환경연합, 여성민우회 등 전국 70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명박 후보 사퇴 촉구 48시간 공동행동'에 돌입한 가운데 17일 저녁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앞에서 'BBK 사건 진상규명과 이명박 후보 사퇴 촉구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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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선거의 다른 점-저항의 역사, 그리고 희망

그러면 한국의 선거와 미국의 최근 대선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마이뉴스> 독자들을 비롯한 진보적인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깊은 절망과 무력감과 우울감이 만연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인만큼 깊고 긴 저항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 세계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불의에 맞서 들고 일어났고 이승만이나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희대의 독재자들도 결국은 몰아냈습니다. 경제적인 성장을 이루었든 어떻든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중 민중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부패한 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패한 기업인이 갑자기 정직한 정치지도자로 변신한 예는 없습니다. 부패한 사람이 정치권력을 거머쥐게 되면 더욱 부패하게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소신껏 투표하되, 만약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면 시민사회는 그의 부정을 감시하는 데 게을리 하지 하지 않아야 하며 지속적인 반부정부패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썩었다고 해서 한국 사회가 전부 썩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명박씨가 당선되든지 안 되든지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2007년 12월 20일에도 역시 해는 동쪽에서 솟아오를 것입니다.

인도의 시민운동가 아룬다티 로이는 "현대 민주체제는 어느 정도 역사가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자본가들은 이미 그 체제를 전복시키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도구들(즉 독립적인 사법기관, 자유로운 언론, 의회 등)의 심층 속으로 파고들어 그들의 입맛대로 이 도구들을 조종하고 있다. 기업중심의 세계화 프로젝트는 이미 암호해독을 마친 상태다. 자유선거, 언론 자유, 독립적인 사법기관 등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유경쟁 시장원리 속에서는 거의 아무 의미도 없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 한국에서 살면서 저는 학생, 노동자, 교사, 농민 등 각계각층 시민들이 각기 있는 자리에서 갖은 방법으로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것을 목격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시 촛불 집회가 시작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몸은 미국에 있으나 오늘 촛불 하나를 켜두고 마음으로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모인 한국 사람들을 응원할 것입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일어설 것을 믿으며 단기적인 결과에 상관없이 결국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책과 웹사이트에서 본문에서 인용한 자료들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Arndhati Roy, An ordinary person's guide to empire.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2004
http://www.nytimes.com/2007/01/08/washington/08tax.html?_r=2&oref=slogin&oref=slogin
www.electionguide.org/co#7EC63C
www.lcurve.org/.webloc
www.ctj.org/html/gwb0602#7ED7D4
pewresearch.org/.webloc



태그:#이명박, #부시,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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