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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졌던 복지 문제가 어느새 한국 사회의 중심 화두가 됐습니다.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것은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될 전망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복지 제도를 먼저 구축한 유럽과 미국의 경험을 살펴 한국 사회 복지 논쟁의 폭을 넓히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오마이뉴스>는 외국에 거주하는 해외통신원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더욱 뼈 빠지게 일하라. 수백만 명의 복지대상자가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라고 쓰인 자동차 범퍼 스티커.

 

"미국에서 가난은 범죄가 아니다. 하지만 범죄나 마찬가지다." - 윌 로저스

"더 열심히 일하라. 복지대상자 수백만이 당신에게 기대고 있다." - 자동차 범퍼에 간혹 붙어 있는 구호

 

<오마이뉴스>에 간혹 나오는 핀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핀란드,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는 정부가 국민을 보살피고 복지를 보장할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예 논의의 대상이 아니란 것입니다. 논의가 된다면 어떤 사회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며, 국민들이 충분히 받아야 할 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사회복지의 개념이 아주 다릅니다. 미국에서 "복지"는 금기시되는 더러운 말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복지대상자인 가난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애써 노동해서 벌어놓은 수확을 훔쳐가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죽도록 일해서 벌지 않고 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비도덕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부자들이 평범한 서민들의 돈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은 물론 당장에 "계급 갈등을 부추기는 자"라고 낙인찍히게 됩니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빨갱이"가 되겠네요.

 

단순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누구나 음식과 주거, 의료, 존엄성, 인류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믿음은 미국인들에게는 그리 보편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건국 초기부터 미국의 지도층은 "누구나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고(영어 표현으로는 "Pull yourself up by your bootstraps."),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믿었고, 그들이 고안한 교육체제도 역시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홈리스 소녀.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미국의 복지제도에 대한 글들을 새삼스럽게 읽어보니 "불법이민자", "기생충", "구제", "퍼주기" 같은 말이 복지대상자와 연관되어 참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현실은 이런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국의 복지대상자들은 대부분 시민권자이며(95%), 백인이고, 여성이거나 어린이이고 보통 2년 이하의 기간 동안 혜택을 받을 뿐입니다. 더구나 복지혜택을 받고도 빈곤선보다도 훨씬 아래의 소득수준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사회복지로 정당하지 못한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복지대상자가 아니라 사회복지시스템을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의사, 변호사, 양로원, 기타 복지 관련 사업체들입니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부는 빈곤이 마치 빈민들 자신의 잘못인 양 호도하는 언설을 퍼뜨려왔고, 시민에 대한 국가의 보조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그것도 마지못해 하는 인색한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조차도 대상자들이 보조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의 생계보조를 받는 것은 여타의 국민들에게서 부를 훔쳐가는 것으로 여겨졌고 부를 독점하는 부유층은 오히려 피해자로 묘사되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사회복지에 대한 이런 몹쓸 인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미국 사회복지의 목적

 

미국 복지체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기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복지체제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개인 견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잘 알려진 복지체제의 기능은 빈민층에 대한 국가권력의 사회통제장치로서 기능입니다. 여기서 사회통제라 함은 사람들의 행동을 직접 고압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보상과 정책적인 장려를 이용하는 좀 더 교묘한 통제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체제는 현존하는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면서 약자들을 주류사회의 경제체제에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복지체제의 많은 부분이 시장의 시스템에 잘 맞도록, 나아가 많은 회사, 병원, 사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도록 고안되어 있습니다.

 

다른 시각은 복지체제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사회계층에게 직접적인 사회통제를 가함으로써 국가의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 다른 견해는 복지제도는 빈곤층에 일시적인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빈민들이 빠른 시일 내에 노동시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봅니다. 이런 의견들은 복지제도의 목적이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유지하고 안정화하는 데에 있다고 보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지체제조차도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와 가치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중매체를 보면 복지대상자들은 스스로 벌어서 먹고살지 않는 사기꾼이란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공공의료체제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면, 애써 번 돈을 다른 파렴치한 사람들에게 내줘야 하는 것과 같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웃의 아주머니 하나도 오바마의 아주 소규모의 의료개혁에 거세게 반대했는데 그분은 극우 성향의 폭스뉴스를 열심히 봤는지 자기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게을러빠진 사람들의 의료비로 내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회주의 의료체제에서는 사람들이 파리처럼 죽어나간다고 하더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실시되면 그분도 크게 혜택을 받을 것이 틀림없는데도 그분은 전혀 그렇게 믿지 않았습니다.

 

보통 미국인들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복지제도를 상상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미국인들이 현존하는 복지혜택의 규모도 너무 커서 경제와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블로거는 "사회보장연금, 의료보험, 실업보험금 등을 포함하여 정부가 지불하는 액수는 미국 인구 전체의 총 임금 및 소득의 3분의 1을 초과한다"면서 복지에 정부예산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위험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렇지만 "총 임금의 44%가 각종 복지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럽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전체 임금의 3분의 1이라면 막대한 액수이지만 너무 많은 부분이 프로그램의 운영 자체에, 그리고 관련된 기업과 기관의 이윤을 내는 데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로 복지대상자에게 돌아가는 액수는 훨씬 적습니다.

 

 가족복지사가 어린 자녀가 있는 군인 가족을 찾아 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회복지 이용해 잇속 챙기는 이들은 따로 있다

 

연방정부의 프로그램은 사회복지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 여성, 노년층을 수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충분히 지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에 식료품 지원 프로그램 예산이 삭감되었을 때 약 4만 명의 어린이들이 무료 또는 저가 학교급식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어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게다가 한 연구에 따르면 정부의 교육지원 프로그램도 빈곤층 어린이들보다는 중산층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장 가난한 학군(하위 25%)을 가장 부유한 학군(상위 25%)과 비교해보니 주정부와 지방자치제 지원금에서 전자의 학생들이 한 명당 평균 800달러나 덜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의 복지체계는 충분치 못할 뿐만 아니라 계속 위축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5년간 빈곤층을 위한 법률 서비스, 보충학습, 임산부 및 아동을 위한 의료혜택, 노인, 시각장애인, 장애인들을 위한 도우미 예산들이 점차 삭감되었고 이는 미국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들의 삶이 심하게 고달파졌음을 의미합니다.

 

복지예산 자체는 막대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배려는 많이 부족한 미국 시스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의료체제입니다. 미국의 의료서비스는 아주 문제가 많지만 의료사업의 이윤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비영리기관인 공영병원들은 재정부족으로 계속 문을 닫고 있어 서민들은 의료비용을 전액 부담하거나 개인적으로 의료보험을 사야만 합니다. 2009년 통계에 의하면 직장에서 제공하는 가족의료보험의 1년치 평균은 무려 1만3375달러(한국 돈으로 약 1460만 원)였습니다. 이에 더하여 미국 가정이 1년에 지출하는 약값은 3000달러(약 327만 원)에 이릅니다. 보험료도 날로 치솟고 있어서 의료보험 없이 살아가며 정기검진이나 각종 질병의 예방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의 15.4%인 4570만여 명의 미국인이 이(2009년 통계)에 해당합니다.

 

미국의 건강보험은 무려 1500여 가지가 있는데 시장경쟁의 원리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보험 프로그램의 수가 많을수록 가격이 낮아질 것이므로 이는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소득의 15.3%를 의료비로 지출하는데 이는 다른 어떤 산업화된 국가보다도 높은 비율입니다(참고로 영국은 8.3%, 일본은 8%, 독일은 10.7%이며 이들 국가들은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의료비용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시장경쟁으로 가격이 낮아지기는커녕, 의료기업들의 이윤 추구 행위로 오히려 가격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의료기업들이 서로 "손님(환자)" 끌어오기 경쟁을 하기 위해 일 년 동안 지출하는 광고비와 운영비는 3990억 달러($399,000,000,000)라고 합니다. 최근에 하버드 대학에서 나온 연구에 의하면 미국의 기업형 의료체제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회사제도를 없애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비영리의료 체제로 바꾼다면 2860억 달러($286,000,000,000)가 절약되며 이는 현재 보험이 전혀 없는 미국인들에게 모두 보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액수라고 합니다.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퍼주기'

 

복지문제를 논의할 때 거의 항상 초점이 되는 것은 복지대상자, 즉 빈민층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한 부분은 미국 정부의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거대한 보조금과 "퍼주기"입니다. 최상류 부유층과 기업에 퍼주는 국가 보조는 희한하게도 아무도 "사회복지"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더구나 개인이 복지혜택을 받으면 "스스로 설 줄 모르는" 게으른 자로 낙인찍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정부혜택을 받는 기업은 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이윤을 많이 남기는 장사로서 연간 이윤이 1조 달러 이상이라고 합니다. 의료산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거대 보험회사와 건강관리기구(HMO)들입니다. 건강관리기구들은 영리회사로서 말하자면 자동차제조업이나 화장품회사 등과 이윤증대를 목표로 하는 데서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미국의 영리 양로원들은 총 800억 달러($80 billion)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데, 이 중 75%가 정부의료보조금에서 나옵니다.

 

이밖에도 정부는 기업에 대한 세금 감면, 가격유지를 위한 보조, 구제금융, 보험보조금, 광고대행, 수출보조금, 농업용수 보조금, 연구비 등을 통해 연간 8000억 원 이상을 지원합니다. 이상하게도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반대하던 이웃 아주머니는 의료기업의 이윤창출과 막대한 정부지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습니다.

 

 1910년 뉴저지에서 노동하는 소녀.

 

 공장에서 노동하는 어린이들.

 

미국 정부의 기업 편애는 역사적으로도 별로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워드 진에 의하면 19세기에 이미 미국 정부는 운하, 상선 등에 보조금을 지급했고, 남북전쟁 기간과 전후에 철도재벌들에게 수십억 에이커에 이르는 땅을 공짜로 내주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엄청난 액수의, 갚을 의무가 없는 명목상의 "융자금"도 내주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눈먼 "융자금"을 이후에도 철도, 운하, 고속도로 기업 등에 계속 퍼주었습니다. 작년만 해도 총 142억 달러($14.2 billion)의 수익을 올린 GE(제너럴 일렉트릭)는 단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법률 역시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기업 프렌들리"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약 70년 전까지 아동 노동은 흔하디흔했고 합법적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임금이 낮았기 때문에 공장주들은 아동고용을 반겼고, 1800년대 중반에 공장에서 일한 어린이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에서 18시간, 일주일에 6일을 일하며 일당으로 40센트에서 1달러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7세 전에 방직기계를 작동하거나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등의 노동을 시작했고 흔히 어둡고 습기 찬 더러운 환경에서 일했습니다. 심지어 지하탄광에서도 아동의 노동을 착취했습니다. 1810년에는 학교에 다닐 나이의 아동 200만 명 이상이 주당 50시간 내지 70시간씩 노동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노동을 해야만 가족이 간신히 먹고살 수 있었을 정도로 도시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1899년까지도 아동 노동을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한 주는 28개에 불과했습니다. 미국 연방의회가 1918년과 1922년에 두 차례 아동노동 규제법을 통과시켰지만 대법원에서 위헌으로 판결해 실행되지 못하다가, 1938년에야 16세 이상의 청소년만이 (학교를 다녀야 할) 낮 시간에 노동을 할 수 있으며, 14세 이상 청소년만이 방과 후 노동을 할 수 있고, 위험한 노동은 18세 이상만이 할 수 있게 하는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다음은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 중 곧 삭감 예정인 것들(아래 표의 왼쪽 줄)과 비난은커녕 대중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 감면액(오른쪽 줄)을 대조한 앤드루 설리반의 도표 일부입니다.

 

기업에도 인격이 있다는 궤변

 

빈곤층에는 야박하면서도 부유층에는 관대한 미국의 복지 시스템은 미국의 국가철학 자체가 인권이 아닌 이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국가가 애초부터 시민의 기본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평범한 시민의 권리는 자주 들먹여지기만 할 뿐, 잘 보호되지는 않습니다. 한편, 기업은 살아 있는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훨씬 덜 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을 법적으로 사람이라고 보는 "법인"이라고 하는 상당히 괴이한 이 개념은 1880년대에 만들어졌습니다(여성, 원주민, 대부분의 흑인남성이 아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928년 대법원은 다시 한 번 법인은 "자연인과 동일하게 법적으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은 사람과 똑같이 언론의 자유, 개인적 자유, 정치적 자유를 누리되, 높은 임금을 받는 변호사들과 물 쓰듯 쓸 수 있는 많은 돈과 막대한 경제적인 영향력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나 법원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듣겠습니까? 힘없는 서민 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수십 명의 변호사 집단일까요? 고위 정치인들은 누구의 이익을 더 보호하려 하겠습니까? 복지대상자인 가난한 아기 엄마일까요, 아니면 수십 억 달러의 자산을 가진 기업일까요?

 

기업을 법인이라 부르며 개인과 같은 법적 권리와 목소리를 주는 것은, 기업이 보통 시민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큰 목소리로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법원은 실제로 돈을 쓰는 것은 언론 자유를 행사하는 것과 같다고 판결한 바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과 기업이 무슨 이유로든 맞장을 뜨게 되면 보통 기업이 이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철강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의 변호사이자 회사법을 만든 윌리엄 맥쿡의 피츠버그 저택(현재 숙박시설로 개조 중).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위의 도표에서 보여주는 미국 정부와 의회의 행동은 한순간에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사회복지제도는 현재의 경제 체제를 더욱 원활하게 하며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도록 기획된 제도일 뿐입니다.

 

이상적인 "복지 국가"란 국가가 시민들의 경제적·사회적 복지를 보호하고 향상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지국가는 평등한 기회 부여, 부의 공정한 분배, 그리고 시민들의 공적 책임감이란 원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국가의 역할과 책임은 복지국가와 많이 달라서 최소한도의 기준에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주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이고 재정이 탄탄하며 서로 연계가 잘 되어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지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장의 힘과 자본의 논리에 운명을 맡기고 힘겹게 살아가게 됩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미국의 복지제도를 모델로 삼지 않는 정권을 선출하여 진정한 복지국가로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2008년 월스트리트에 대한 구제금융 실시에 항의하는 시민들. 정부의 기업 퍼주기에 대해 미국 시민들의 불만이 거세게 터져 나왔던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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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Zinn,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Harpers Collins Publishers. 1999.

Michael Parenti, Democracy for the Few, 8th Edition. Thomson Wadsworth. 2008.

Walter I. Trattner. From poor law to welfare state: a history of social welfare in America, 6th ed. The Free Press. 1999. 

Paula S. Rothenberg.  Race, class, and gender in the United States: an integrated study. Worth Publisher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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