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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환경이 남부럽잖게(?) 열악하다는 (기자가 거주하는) 양산지역에 국내 명문대도 아닌 외국 명문대에 직행한 우수고교생이 있어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과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현재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인문학부와 퍼듀대 경영학부 두 곳에 합격해 입학허가를 받아둔 김민성(18)군이 바로 그 주인공. 김군은 2개의 다른 대학에도 원서를 냈는데, 이마저도 합격하면 모두 4개의 명문대에 동시합격하게 되는 영광도 맛볼 수 있다.

 

14일 김민성군을 만나 그에게서 국내 명문대를 마다하고 미국 명문대에 직행하게 된 사연을 들어보았다.

 

국내 명문대 마다하고 미국 명문대 직행한 사연

 

공부 꽤나 하는 고등학생 한 명이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일이야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일 테지만 교육환경이 척박하기 짝이 없는 경남 양산지역에서는 사실상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대견한 일.

 

게다가 이 가운데 김군이 입학하기로 결정한 미네소타대학은 아이비리그에 속한 최고의 명문대도 아니지만 세계랭킹 90위권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서울대보다는 규모나 학술적인 성과에 있어서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유학 온 국제학생들에게는 마침맞게 학비까지 저렴해 가정형편이 넉넉잖은 한국유학생들에게 유달리 인기가 높은 대학이다.

 

김민성(18)군은 관내 양주초등학교와 양산중앙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자립형사립고로 유명한 해운대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진학했던 자타가 공인하는 IQ 140의 영재.

 

김군은 해운대고 1학년을 다니던 중 분기당 200만원이 넘는 비싼 수업료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전학을 모색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부산 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고)로 전학하게 된 것이 계기가 돼 미국유학에 도전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모교이자 부친 김흥주(47)씨의 모교이기도한 개성고는 현재 인재육성 차원에서 우수학생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고, 총동창회 차원에서 국내 명문대 및 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학비는 물론, 생활비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역사가 깊기로 유명한 명문 개성고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명문대에 직행하는 사례는 김민성군이 최초여서 동문 선배들의 칭찬과 관심도 남다르다고 한다. 국내 명문대를 졸업한 후 대학원 유학길에 오르는 경우나 일본으로 유학가는 경우는 많았지만 재학생이 미국 대학의 학부에 곧바로 진학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

 

창의력 퇴화시키는 수능, 염두에 둔 적 없어

 

김군이 유학에 대한 비전을 품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 것은 개성고 2학년 시절.

 

다른 친구들이 국내 명문대 진학코스를 밟기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도 김군은 “애초에 수능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한다. 유학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물으니 김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뭐라 그래도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를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 공교육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유학도전의 계기가 됐지요. 특히 수능체제는 한국 고교생들의 창의력을 퇴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한국식 공교육 체제하에서는 더 이상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유학을 생각했다는 얘긴데, 김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최근 천재소년 송유근군이 모 국내대학에 진학했다가 한국식 커리큘럼에 흥미를 잃고 대학생활을 접었다는 보도가 생각났다.

 

한편, 김군에게 어떻게 유학을 계획하고 정보를 얻게 됐느냐고 물으니 엉뚱하게 한국 사교육 무용론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한국에서 공교육이 무너져 내리고 사교육이 판을 치게 된 데는 졸속적인 교육정책 탓도 있지만 학부모들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내신 위주의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녀들을 학원과외에 목숨을 걸게 만들었고, 이는 억대 과외 등 사교육비 부담만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승자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거품 낀 사교육 판치는 원인은 내신 위주의 주입식 공교육

 

김군은 자신도 학원을 다녀보았지만 일반 입시학원이나 영재학원들의 행태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학원들이 학교과정보다 적어도 한 학기에서 많게는 1년의 학습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이른바 ‘선행학습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는 이 선행학습반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을 진행하다보면 당연히 주입식 교육으로 흐르게 돼 있고, 시험 잘 치게 하는 기술만 가르치다 보니 학생들이 점차 공부에 흥미를 잃게 만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학원에서 이미 배운 내용을 학교에서 뒤늦게 가르치니 학생들이 공교육 과정이 지겹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이는 되려 성적향상에 방해가 되는 경우를 경험했습니다.”

 

김군이 지적하는 문제점을 듣고 있자니 기자도 중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론 이처럼 영특하고 똘똘한 김군을 누가 키워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잘 이끌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해야 될 공부, 나아가야할 길을 열어주신 분들이지요. 그러나 어느날 공부는 결국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 공부는 내가 한다'...김군만의 ‘스스로 학습법’

 

김군은 중학생 시절, 모친인 배용출(46)씨가 사준 한권의 책 <내 공부는 내가 한다>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게 됐다고 한다. 국내 자립형사립고 가운데 최고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사관고 학생들의 경험담을 담은 이 책이 김군의 학습법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

 

“유학준비 과정에도 멘토가 되어준 고마운 선생님들이 계시기는 했지만 모두가 상담역을 맡아주신 것뿐이지 결국 공부는 스스로 했습니다. 해운대고 시절에 겪은 기숙사 생활의 경험도 세칭 ‘스스로 학습법’을 단련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 스스로의 발상이었습니다.”

 

김군은 고2 시절, 유학에 대한 비전을 품으면서부터 수능체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평소 관심이 많던 역사공부와 유학에 필요한 토플공부, 너무도 좋아하는 힙합음악에 사회봉사활동까지 수능준비에 쩔쩔매는 친구들과는 별개의 학창생활을 영위해 나갔다고.

 

“한국의 공교육은 맞춤형 적성교육으로의 전환과 사회생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실전교육의 활성화가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실생활에 도움도 안 되는 어정쩡한 교육을 지속하느니 차라리 음악, 미술 등의 예체능교육과 실전회화 위주의 어학교육을 강화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친구가 이쯤 되면 웬만한 교육정책 입안가들보다도 식견이 낫다. 하기야 12년이라는 ‘필드의 경험(?)’을 통해 우러나는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니 당연지사일 터.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기

 

이야기가 샛길로 빠진 듯해서 “한국에서 공부하면 편할 텐데 뭐 하러 미국까지 가서 사서 고생하냐”는 식으로 말하며 재차 미국 유학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한국 학생들 고교 때까진 죽어라 공부하다가 대학 가선 긴장이 풀려 놀아버리잖아요. 저는 그런 딜레마에 빠지기 싫었습니다. 대학이라는 방만하고 자유로운 ‘놀자판 문화’에 젖어 허송세월하는 여유를 주기 싫었습니다. 차라리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 도전하고 견문도 넓히며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겠지만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한다’고 고생한 김에 더 고생해서 큰일을 이룰 거라는 김군의 의지가 어린 친구치고는 참으로 가상타.

 

“저는 시민권이나 바라보고 미국에 눌러앉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와 조국의 발전을 위해 봉사할 생각입니다.”

 

재밌는 것은 기자더러 “왜 자신의 장래소망을 묻지 않느냐”며 “물어보라”고 다그친다. 당차기 짝이 없는 김군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그래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뜸 “위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다.

 

“한국역사에는 일제에 저항한 열사나 독립투사들밖에 없잖습니까? 그분들도 훌륭하지만 저는 다른 차원의 위인이 되고 싶습니다. 경영학 전공자답게 세계적인 경영자가 되어 한국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나를 비중 있게 다루는 위인이 되고 싶습니다.”

 

역사가 비중있게 다루는 위인 될 터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고 아우성인 이 욕심 많은 세상에 이처럼 ‘순결한(?) 영혼’이 쑥쑥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내심 기분이 좋다.

 

김민성군은 이처럼 자신의 영달만을 꾀하는 친구가 아닌지라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사회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다. 작년엔 모아둔 쌈짓돈을 털어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왔고, 빠른 시일 내에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기름유출로 만신창이가 된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띠 제거에도 한 몫 할 생각이다.

 

최근엔 미국유학생활을 준비하며 대학생들과 함께 시사토론식 실전회화연습에 공을 들이고 있고,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기 위해 작정한 수제자 한명에게 유학도전을 위한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다.

 

부친이 양산시청 부근에서 작은 운수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김군의 가정은 유학을 맘 놓고 보낼 만큼 그리 넉넉잖다. 장학금 지원없는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비전과 소망은 부요하기만 하다. 자신의 꿈처럼 김민성군이 ‘역사가 비중있게 인정해주는 훌륭한 위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유학, #김민성,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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