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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군소후보들의 TV토론은 주요후보들의 토론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공약도 매우 이채롭고, 태도도 신기했다. 특히 경제공화당의 허경영 후보는 파격적인 공약으로 눈길을 끈다. 신혼부부에게 1억원을 지급하고, 노인들에게 월 70만원씩 지급하겠단다. 매번 발언시간을 초과하고도 할 말이 많은 듯한 모습은 재미있었다.

허경영은 한 때 열린우리당의 당원이면서 대선예비후보였다. 열린우리당의 경선에 참여할 생각으로 입당을 하였지만 열린우리당이 대통합 민주신당에 흡수합당되면서 그는 탈당을 하였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문을 닫기위한 마지막 전당대회장에서 그는 반대운동을 열심히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열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결국 문을 닫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미 대선에 두번째 도전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공화당을 상징하는 황소의 조형물과 함께 등장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박정희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도 이채롭다. 박근혜 의원과의 혼담설을 유포하여 고발을 당한 상태이기도하다. 그의 방송홍보 영상에는 배경음악으로 새마을 노래의 멜로디가 등장한다. 그를 보면 여러모로 박정희와 공화당을 떠올리게된다.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은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세력이었다. 특히 군사쿠데타의 성공과 강력한 폭압정치는 세계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새마을 운동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두고두고 그들이 치적으로 자랑하는 것이다. 보릿고개를 해결한 점에 있어서 분명 일정한 성과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의 집권기에 성장한 세대로서 느끼는 공포감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정적들을 구속하고 고문하였으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 그들이다. 당명은 민주공화당이었지만 사실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고, 공화국을 지향했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들은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란 교묘한 말로 포장하였다. 유신헌법을 만들어서 공화국이 아닌 박정희 왕국을 꿈꾸었다.

재벌과의 정경유착은 상상을 불허할 수준이었고, 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탄압은 공포 그 자체였다. 농촌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도시의 빈민층 노동자를 양산하였다. 누진성 직접세의 비중을 낮추고 부가가치세 제도를 도입하여 양극화의 강력한 토대를 형성한 시기도 이 때이다. 반공이데올로기를 철저히 확대 재생산하여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하였다. 경찰이 자를 들고 여성들의 스커트 길이를 직접 단속하고, 남성들의 머리카락 길이도 제한하였다. 그 들의 통치는 공포 그자체였다.

당시의 어른들이 당한 그 많은 일들은 어린 나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느낀 고통은 지금도 생생하다. 국민교육헌장을 철저히 외우도록 강요당했다. 새마을 운동에 어린아이들도 참여하도록 강요했다. 새마을 노래를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정권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부르도록 강요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노래다. 일하시는 대통령, 이나라의 지도자, 삼일정신 받들어, 사랑하는 겨레위해, 5.16혁명으로...10월유신...이렇게 구성된 가사였다. 아직 멜로디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이 노래를 다 외우지 못하면 교사에게 체벌을 당해야 했기 때문에 외우지않을 도리가 없었다. 국민교육 헌장, 새마을 노래, 대통령 노래등 외울 것이 너무 많아서 짜증나도 체벌이 두려워 모두 외웠다.

게다가 초등학생들에게 군대식 분열과 사열을 시켰다. 어지간한 재식훈련은 거의 초등학교 때 다 마스터할 정도였다. 반공시범학교라고 이름붙여서 일렬로 정확히 줄을 맞춰서 행진하고 사열대의 교장 등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초등학생들을 상상해보라.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그 정권이 그렇게도 비난하던 김일성의 북한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분열이나 사열중 줄을 맞추지 못하거나 동작이 틀린 아이들은 별도로 체벌을 받아야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수하의 손에 총격을 당한 날까지 그들의 폭압은 지속되었다. 물론 박정희가 각별히 아끼던 일단의 신군부에 의하여 다시 쿠데타가 발생하였고, 권력은 승계되었다. 이른 바 전두환과 노태우등이 이끄는 하나회가 그 들이다. 그 들이 만든 민정당이 김영삼과 김종필을 끌어들여 민자당을 만들었다. 민자당은 다시 김영삼이 명칭을 변경하여 신한국당이 되었고, 이회창이 물려받은 신한국당은 조순등을 끌어들여 한나라당이 되었다.

이번 대선에 그 한나라당의 후보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들과 같은 식구였던 이회창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지지율 2~3위를 왔다갔다 하고 있다. 거기다가 군소후보중에 가장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허경영 후보는 당명을 경제공화당으로 해서 출마하였고, 박정희 계승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국사회는 바야흐로 박정희가 대세를 형성한 셈이다. 그 무시무시한 독재권력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절대빈곤의 최빈국이 지금 경제규모로 세계 11~12위로 성장하였다. 그 시작이 박정희의 통치기간이었고, 민주공화당이 정치를 지배하던 기간이었다. 신군부의 집권기에도 역시 대한민국은 발전을 하였다.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처음으로 그 신화를 무너뜨린 것이 1997년이다.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 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그런 대한민국을 다시 건져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역시 수출에서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잘된 것은 모두 박정희와 그를 계승한 세력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잘못된 것은 민주화세력의 집권기간인 지난 10년으로 치부해 버린다. 잘된 것은 박정희의 공이요, 잘못된 것은 노무현의 탓이다. 사실상 이번 대선은 모든 잘못을 노무현의 탓으로 돌리는 데 너나없이 나서서 소리를 지르는 선거로 보인다. 마치 집단광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보도한 기사는 한국정치의 퇴행을 걱정하고 있다. 그나마 싹트기 시작한 민주주의마저 경제성장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흐름에 짓밟히고 말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박정희 신드롬과 공화당에 대한 추억 그리고 허경영 후보의 대선출마는 정말 우연이 아닌 것같다. 확실히 사람들은 많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절에는 그나마 작은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때보다 훨씬 잘 살지만 더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모든 희망은 박정희와 공화당의 공이고, 지금의 답답한 상황은 모두 노무현과 참여정부의 탓일까? 많이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지금보다 내 삶이 더욱 고달프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민주공화당과 박정희의 폭압적 독재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 시절의 그러한 방법으로 지금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볼 일이다. 그 시절의 방법은 그 시절의 것이며, 지금은 지금의 시대정신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렇게 모든 폭압을 견디면서라도 좀 더 배부르게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한민국은 과거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미래로 전진하는 것이 맞다. 지금의 대세를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민주공화당과 새마을 운동 그리고 독재자들을 상기하면서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들의 정신을 계승한 사람들이라면 나에게 장미빛 미래를 실현시켜 준다고 하더라도 일체 거부할 생각이다. 그 들의 시대와 나는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조차 없는 물과 기름인 것이다. 다시는 박정희 찬양노래를 외우지 못한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체벌을 당하는 것을 꿈조차 꾸고 싶지않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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