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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햇살이 참으로 맑다."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겨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햇살이 따사롭고 부드러웠다. 며칠 동안 내린 겨울비로 몸과 마음이 많이 움츠러들었었다. 스며드는 한기를 주체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맑은 햇살과 조우하게 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래된 친구 녀석을 만나는 기쁨과 어우러져 흥겨워졌다.

오리알 터
▲ 청둥오리 오리알 터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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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는가?”
“감기 빼고는 아무 일 없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녀석이었다. 미리 연락을 해두지 않으면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전화를 한 것이다. 감기로 집에서 쉬고 있으니, 어서 오라고 한다. 본 지가 오래되었으니,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만남의 즐거움은 언제라도 즐거운 설레는 일이다. 여행을 통해서 낯선 풍광을 즐기는 일도 좋지만, 묵은 친구를 만나는 기쁨 또한 크다.

집사람과 함께 집에서 출발하였다. 서두르는 나를 보고 집사람이 한마디 한다.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조급하게 서두른다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면서, 마음을 자제시켜준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서두른다고 하여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주를 감싸고 있는 햇살의 손길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기화
▲ 인생 기화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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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알 터에 오리들이 벌써 날아와 있었다. 전북 김제시 원평면에 있는 저수지다. 천 년 전 도선 국사가 이곳에 오리들이 날아들 것이라는 예언을 하면서 이름을 붙인 곳이라고 한다. 20세기에 들어와 저수지가 조성되었고, 거짓말처럼 오리들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운다.

오리들이 한가롭다. 날아오르는 모습이 그렇게 힘찰 수가 없다. 비상하는 날개에 힘이 듬뿍 들어 있음을 확인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넓은 저수지에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는 오리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판기에서 뺀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오리들을 감상하였다.

고운 소리
▲ 새 고운 소리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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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넣고 목적지인 고창으로 달렸다. 햇살이 어찌나 포근한지 계절을 잊어버렸다. 전주에서 정읍으로 통하는 길이 새롭게 뚫리고 있었다. 완전 개통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태인에서 정읍까지는 준공이 되었다. 공사가 너무 더디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한가한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정읍에서 고창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 사이에 고창에 진입하였다. 인물의 고장인 고창은 넉넉한 마음으로 그 곳에 있었다. 방장산의 정기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다고 한다. 근대의 선각자들이 이곳에서 출생하셨다. 인촌 선생님이 그렇고 근촌 선생님이 대표적인 분이다. 미당 선생님 또한 고창분이시니, 인물의 고장임은 틀림없다.

“야! 솟대다.”

흥덕을 지나는 길목에 세워진 솟대의 모습이 마음에 와 닿는다. 솟대가 서 있는 공간은 신성한 것이다. 하늘과 소통하는 장소이니, 범죄자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새롭게 세워진 솟대를 바라보면서 더욱더 정감이 넘치게 된다. 세월 따라 솟대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같을 것이다.

모양성(사적 145호)을 지나 고수면으로 향하였다. 고창에서 묵은 친구 녀석과 해후를 하고 함께 하는 여행은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어린 시절이 배어 있는 읍내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서운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기원
▲ 솟대 기원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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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면 소재지를 돌아서 문수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새로운 도로가 웅장하게 건설되어 곧 개통을 하게 된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남 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어주는 도로로서 고창의 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다리의 교각이 웅장하기만 하였다.

조산 저수지의 모습도 많이 변화 있었다. 유료 낚시터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옛 조산 초등학교는 폐교가 되어 있었다. 그때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세월의 빠름을 실감할 수 있다. 해수를 헤아려보니, 어느 사이에 30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문수사. 문수보살의 영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산사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 그러나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 그윽하다. 특히 요사 채에 있는 장독대는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을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정감이 넘쳐난다.

“야! 빨간 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감나무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나눔을 노래하고 있는 새소리들이 공명된다. 새들의 한겨울 양식이 될 것을 생각하니, 내 마음까지 넉넉해지는 기분이었다.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가 다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빨간
▲ 감 빨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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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 문수보살!”

돌로 만들어진 문수보살상에게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분들의 목소리가 산사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직 한마음으로 절을 하고 있는 분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절실하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기도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고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관계를 맺으면서 신뢰를 구축해가는 것이 바로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드는 비법이다. 근심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장 슬기롭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배울 수 있게 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수사 단풍나무(제463호)들은 이파리들이 모두 다 떨어졌다. 아름드리나무 기둥에 앙상한 가지들만이 남아 있는 데에도, 그렇게 삭막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 것은 아마도 나무를 바라보는 내 눈이 달라져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모두가 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까닭일 것이다.

묵은 친구를 만나서 즐겁고, 시간에 쫓길 것이 없으니 여유가 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모습을 마음에 담고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서두를 것도 없고 조급할 까닭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기면 되는 일이다. 여유가 있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은 경이로움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
▲ 장독대 어머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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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송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오리 요리의 새로운 맛을 보는 데에는 이곳 만한 곳이 없다. 덕담을 나누면서 먹는 점심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다. 오고 가는 이야기가 음식의 맛을 배가시켜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청보리 축제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장으로 돌았다. 겨울의 들녘은 텅 비어 있었다. 축제를 찾아 북적이던 때와는 비교가 된다. 사람들이 넘치는 것도 아름답지만 여유가 넘치고 있는 빈 들녘의 모습 또한 또 다른 풍광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아산을 지나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인 고인돌군을 둘러보고 선운사로 향하였다. 고창은 공간적으로 그렇게 넓지가 않아서 여행하는 데 있어서 오밀조밀한 맛을 느끼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선운사의 풍광은 명성을 날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보물과 천연기념물로 그득 차 있어 찾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

선운사를 돌아서면 심원면의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도 있고 해리로 가면 동호 해수욕장이 있다. 상하의 구시포 해수욕장과 어우러져 여름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그곳까지 둘러보면 좋겠지만, 시간이 한정적이어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마음에 전해지는
▲ 풍경 마음에 전해지는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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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 부안면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질마재로 들어서면 미당 선생님의 문학관이 있다. 자연을 사랑한 시인의 정취에 푹 빠질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의 소요산과 함께 여행객들이 빼놓아서는 안 될 아름다운 곳이다. 친구와 작별을 하고 돌아서는 마음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여행이란 언제나 미련이 남는 것인가 보다. 그렇지만 가슴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쌓여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고창군 문수사에서 촬영



태그:#눈, #마음, #새로움, #친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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