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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내장사 어떤가?”
“좋지.”

 

얼마 만인가?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목소리는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서로 살기가 바빠서 마음은 있지만 연락하여 만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아쉬움을 달래면서 그리움을 키우는 것으로 만족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은사님을 모시고 내장사 여행을 하기로 약속이 되었다.

 

일요일(2일) 아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맑은 날이라면 더욱더 좋았겠지만 비가 내린다고 하여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학 때부터 정을 키워온 묵은 친구들이니, 비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가 있었다.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은사님을 모시러 갔다. 우정이란 말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즐거움이 있다. 눈빛만 보아도 반가움이 교차한다.

 

비가 내리는 길을 달리는 기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비가 아니라 눈이었다면 더욱더 운치가 있었겠지만, 겨울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얀 백발을 하시고 계신 은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달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선생님의 말씀은 언제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온다.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어 경청하게 된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통해서 내장사에 도착하였다. 겨울비에 젖어 있는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있어서인지, 농촌의 풍경이 안온하게 따뜻하게 전해진다. 자동차의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포근함이 전해진다. 삭막한 마음에 훈풍이어서 감미로움이 온몸을 휘감아버린다.

 

단풍으로 이름이 높은 내장사 도로는 가을의 여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고 있는 나무들도 있지만, 아직도 단풍잎이 남아 있어 가는 세월을 붙잡으려는 욕심을 볼 수가 있다. 붉은빛이 남아 있어 가을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다.

 

가는 가을을 붙잡으려는 것은 욕심이다. 오는 겨울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 순리에 어긋나는 억지다. 그렇지만 결코 싫지가 않다. 가을의 여운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또한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욕심을 버리기가 왜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내장사 탐방 안내소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모형 지형도는 내장사와 백암산의 전체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면서 설명이 되니, 알아듣기가 쉬었다. 각종 전시물 또한 내장사를 찾는 여행객들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쉴 수 있는 좋은 장소였다.

 

비를 맞으면서 걸어가는 내장사로 향하는 길은 추억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일주문 지붕에 쌓여 있는 단풍잎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비를 맞은 낙엽은 추하게 느껴져야 마땅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파리들이 생명을 얻어 활기로 넘쳐나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싱그럽다.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일주문의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고 내장사라고 불리는 벽련암이 있다. 그윽한 절은 경치가 아름답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서래봉 아래로서 등산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절에 들어서니 평소 친분이 있는 큰 스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부처님의 큰 가르침을 실천하시고 계시는 분이 존경스럽다.

 

“야! 아름답다.”


내장사 천왕문 앞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딱 버티고 있었다. 감나무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들이 달렸다. 붉은 색깔이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 겨울의 문턱에서 마주하게 되는 빨간 감의 모습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어서인지 색깔이 더욱더 화려하게 보인다.

 

욕심이 앞서 있었다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감은 저렇게 남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내 것으로 취하기 위하여 모두 따 버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났어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저렇게 남겨두었을까?

 

감을 남겨둔 의도는 분명하다. 산새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의 소중함을 말로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은 사람에게만 시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야생 동물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고통인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해갈 수 있도록 먹이로 남겨둔 마음에 가슴에 와 닿는다.

 

저 감들이 있으니, 내장사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새들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감나무에 달린 감은 새들의 먹이 창고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이란 말인가? 겉모습도 돋보이지만 그것보다는 그 안에 배어 있는 생명 존중 마음이 더욱더 가슴을 채워준다.

 

욕(欲)과 욕(慾).


주렁주렁 열려 있는 감을 바라보면서 은사님께서 말씀을 하신다. 욕과 욕의 차이를 아느냐고. 마음 심(心)이 하나 있고 없고의 차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같은 글자에 마음이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뜻이 완연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설명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마음을 비우자고 한다. 이 말은 욕심을 버리자는 의미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동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감정이란 실체가 없는 허상이기는 하지만 불같이 일어나기도 하고 폭풍우를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그림자에 얽매여서 희로애락에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바람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붙잡혀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두 다 마음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한 말을 되새기게 된다.

 

욕(慾)에서 마음을 떼어내면 욕(欲)이 된다. 욕심을 버리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의욕이 되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은 살아가는 보람을 찾을 수 있게 되고 생활을 활기 넘치게 만들어준다. 이기심을 채우는 일에서 벗어나 모두를 위하는 아름다운 일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날마다 행복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빨간 얼굴로 비 오는 내장사를 장식하고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은사님의 말씀에 푹 취하였다. 은사님을 모시고 묵은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여행은 매우 즐거웠다. 비가 내리고 있는 내장사 여행은 운치가 있었다. 내장사 산채 정식으로 미각을 만끽하는 일은 여행의 덤이었다. 은사님의 귀한 말씀까지 들을 수 있어 더욱더 뜻있는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정읍시 내장사에서
테마 여행 응모 기사


태그:#의욕, #욕심, #은사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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