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할 의사가 있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일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현상.'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청년실업'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위와 같이 명쾌하게 정의된다. 하지만 그에 반해 오늘날의 청년실업자 인구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된다. 대선을 앞둔 시점, 11명의 후보들은 실업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 위해 많은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지만, 불과 몇 달 전인 8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조선일보> 칼럼에는 100만, <프레시안>에서는 200만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한쪽에서는 100만 단위를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인데, 동시기 <국정 브리핑> 통계에서는 15∼29세 사이의 청년 실업자가 35만 명이며, 25∼29세의 청년 실업자는 18만 명이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시간에 따라 청년실업자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오차 범위는 10만 정도는 기본으로 많게는 50만 명 단위로 잡는다. 정확한 수치를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업시장의 현실이 혼돈에 빠져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마치 유령처럼 청년실업 인구는 통계로 적절하게 추산되지 않을만큼 랜덤해져 있다.

청년실업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다. 한국의 내일을 약속하는 대선 후보도, 다가올 입시에서 신입생을 유치해야 하는 대학교에서도, 심지어는 소액대출 상품을 광고하는 은행에서까지 청년실업의 문제를 들먹인다. 이제는 청년 실업이라는 전반적인 문제가 청년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청년실업에 대해 많이들 언급하지만 정작 본 내용은 다른 곳에 가 있더군요.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어달라는 이유에서든 혹은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의도로 실업문제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보통 이야기할 때 그러잖아요. 낯이 익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때 축구나 날씨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내용부터 꺼내는 것 말이에요. 이제는 실업문제가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모 대학 사학과 2학년 정윤호)

실업에 대한 언급이 특정 목적과 결부되어 필요 이상으로 포장될 때, 청년실업의 직접적인 주체들은 자신들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며, 때로는 상처받고 분노한다.

"나만 다른가 하는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밖에서는 그렇게 구직난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와 닿지 않는 건 내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이기 때문에,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웬걸요.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취업난 속에 낀 이놈의 거품 좀 누가 터트려 줬으면 좋겠어요."(모 대학 경제학과 2학년 황승태)

취업과 실업의 경계에서 유령 찾기

젊은이라는 이름으로 2007년 막바지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은 어떤 것일까. 혹자에게 묻는다면 그 수많은 욕망들을 어떤 식으로 몇 안되는 틀 속에 가둘 수 있느냐는 조소 섞인 반문이 돌아올지도. 하지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에는 하나의 큰 흐름이란 것이 존재해 왔으며, 21세기를 살아간다고 해서 그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순 없다.

그 흐름에 따라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젊은이에게 요구하는 모델을 감히 짐작해 볼 때  간단히 '사람구실'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사람구실을 하지 못한 대가인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각종 보도는 우리네 삶을 이렇게 조명한다. 때로는 관련성이 크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취업난은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취업난이 극심한 가운데 진로 문제로 고민하거나 처지를 비관한 젊은이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지난 14일 오전 3시쯤 서울 역삼동의 한 모텔에서 명문대를 졸업한 서모씨(25.여)가 숨져 있는 것을 함께 있던 강모씨(20.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함께 자살을 시도했던 강씨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서울 대치동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진 배모씨(30)를 오피스텔 주인 박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J 신문 2007.11.15)'

'취업난이 좀체 풀리지 않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는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졸업생)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화려한 스펙을 앞세운 사람에게도 취업문은 여전히 좁다....그렇다면 스펙마저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리는 구직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 C신문 2007.10.25)

'
취업준비에 짓눌리는 대학생… 학원비만 월 28만원...
 대학생들은 취업준비를 위해 학원비로만 매달 평균 28만원가량을 쓰고 있으며, 어학실력을 가장 큰 취업변수로 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K 신문 2007.11.19)

그 사람구실이란 것이 말로는 쉽다. 하지만 돈을 벌어오는 성숙한 존재를 의미하는 순간 막막해지기 십상이다. 많게는 100만이 넘는다고 일컬어지는 청년실업의 지표가 현실 속 대부분의 청년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이유에서이다. 르포는 오늘날의 한국사회 속 수많은 대학생들이 미성숙한 개체로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바라보며 그들이 사는 오늘을 조금은 더 위로하기 위한 가슴저린 취재의 결과물이 였다.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르포 기사의 많은 부분은 한국 젊은이들 중에서도 대학생으로 범주화된 개체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취업난이 지속된다고 가정할 때 그들은 단순히 대학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실업인구에 편입되고 말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인식을 밝혀 드러내는 것은 한국에 만연해 있는 취업에 대한 위기의식의 끝자락부터 더듬어 간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 우리들의 21세기.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 임철영

관련사진보기


취업의 한 주체인 대학생들의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인식되는 몇 가지 요소를 분류해 그에 대한 대학사회 전반의 인식이 인터뷰를 통해 적절한 드러났기를 바란다. 더불어 취업시장에 있어 또 다른 주체인 기업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취업 준비생과 기업이라는 두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오해와 편견 그리고 과장된 불안을 조금은 해소 할 수 있으면 한다. 이후 취업난의 다른 모습이라고 일컬어지는 공무원 열풍이 어느새 그 이면의 의미는 묻혀 버리고 단순히 취업난을 의미하게 된 오늘, 취업을 준비하는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으면 한다. '살아남기'가 아니라 '살아가기'의 의미로서 기사가 많은 '우리들'에게 시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취업난의 자화상 바라보기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만나왔던 사람들이 현실의 모든 모습을 대변해 주진 못할 것이다. 글 속에 간혹 드러나는 각자의 주관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우리들은 많은 오해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고, 원했든 원지 않았든 한 부류로 통칭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도 우리들의 바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들의 처지를 스스로 방관했던 대가인지도 모른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그리고 취업의 한복판에 선 대학생 자격으로서 취업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르포는 여과없이 토해내려 했다. 기존의 관점과 우리의 현재 관점 사이 어떤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차지해 두더라도 오늘의 취업문제는 우리의 21세기를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에 중점을 두었다. 학자들이 당금의 위기를 진단하기 위해 10년전 외환위기의 사소한 단면까지 포착하려 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실체를 잡기 힘든 취업난 한복판에서 청년들의 고민을 통해 오늘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르포를 기획하고 30일 간 취재를 감행하면서 점점 강하게 드는 생각은,  우리가 잊지 말하야할 것은 '취업 여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의 21세기에 꿈을 실을 수 있는가' 였다. 취재 결과가 작게는 우리들의 21세기를 위로하고, 그 토대를 마련하고,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서 의미있게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우리들의 21세기 마지막 기사입니다. 우리의 고민이 의미있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태그:#취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