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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이저우성 첸동난묘족동족자치주는 중국의 오지 중 오지다. 자신들을 동이족의 한 갈래로 믿고 있는 묘족은 지금도 치우천황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며 '아시아의 집시'로 불리는 민족이다. 동족은 오지 산골에 거주하면서 지금도 고대의 전통과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민족문화의 활화석으로 불리는 첸동난자치구에서 우리 한민족과 유사한 민속풍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소수민족 묘족과 동족의 생생한 문화와 풍습, 끈끈한 삶과 생활의 현장을 7차례에 걸쳐 현지 르포로 전한다. [편집자말]
'천호묘채' 시장의 전경. 시장은 중국 최대의 묘족 마을로 지금도 1285가구가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천호묘채' 시장의 전경. 시장은 중국 최대의 묘족 마을로 지금도 1285가구가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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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녠 아침 시장의 여성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완먀오주주'라 불리는 화장과 헤어스타일로 멋을 낸다.
 먀오녠 아침 시장의 여성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완먀오주주'라 불리는 화장과 헤어스타일로 멋을 낸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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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묘족어, 한자 표기는 '西江')은 살기 좋은 고장, 푸른 숲과 작지만 넉넉한 전답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가가호호 붙어 있는 집들 아래로는 맑은 개천이 흐르며, 마을 곳곳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져 찾는 이를 흥겹게 하네." (레이산의 한 묘족 가요 중에서)

시장은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첸동난묘족동족(黔東南苗族侗族)자치주 레이산(雷山)현의 동북부, 현지 묘족의 성산인 레이공산(雷公山)의 복부에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레이공산이, 앞으로는 바이수이허(白水河)가 있어 험한 산골이면서도 풍부한 물이 흐르고 따스한 기온으로 농사짓기 알맞은 땅. 시장은 가기 힘든 오지이지만 살기 좋은 자연조건을 보듬고 있다.

2005년 현재 시장은 중국 최대의 묘족 마을로, 1285가구 5526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시장은 천 가구의 묘족이 사는 큰 마을이라 하여 '천호묘채'(千戶苗寨)라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 시장에서는 외지에서 온 극소수의 한족 출신 공무원을 제외하고, 100% 묘족만이 사는 흔치 않은 소수민족 집단거주지다.

금세기 전까지 레이산 현청에서 시장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족히 3시간 동안 거친 산길을 달려야 했다. 2002년 현지 정부가 1300여만 위안(한화 약 15억6000만원)을 투자하여 포장도로를 놓으면서 그 시간은 절반으로 단축됐다. 한결 편리해진 교통편은 '묘족 문화의 생태 박물관'인 시장을 바깥 세상에 속속들이 내보이고 있다.

베를 짜는 데 열중인 묘족 할머니. 오랜 세월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해 왔던 시장 묘족은 자급자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해 왔다.
 베를 짜는 데 열중인 묘족 할머니. 오랜 세월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해 왔던 시장 묘족은 자급자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해 왔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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셩좡(盛裝, 명절이나 축제 때 입는 전통복장)에 열중인 한 묘족 여성. 셩좡 한 복을 맞추는 데 적어도 1500위안(한화 약 18만원), 순은을 사용할 경우 1만 위안(한화 약 120만원)이 든다.
 셩좡(盛裝, 명절이나 축제 때 입는 전통복장)에 열중인 한 묘족 여성. 셩좡 한 복을 맞추는 데 적어도 1500위안(한화 약 18만원), 순은을 사용할 경우 1만 위안(한화 약 120만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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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 문화의 생태 박물관인 '천호묘채' 시장

시장의 역사는 매우 유구하다. 시장 묘족의 전설에 따르면, 수천여년 전 치우천황 셋째 아들이 이끌던 부족은 지금의 장시(江西)성 일대에서 거주했다. 기원전 3000~2000년 전 탁록(涿鹿)대전에서 아버지 치우천황이 화하족(華夏族·한족)에 패하자, 셋째 아들은 부족을 이끌고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이동했다.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묘족 가요는 장시성에서 구이저우에 이르는 긴 여정을 패퇴한 민족의 이동사가 아닌, 묘족으로서 정체성을 찾고 묘족문화의 체계를 다지는 자기발견의 역사로 노래하고 있다.

시장에 이른 묘족은 오랜 세월 동안 중국 왕조의 통치 영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문화와 풍습을 발전시켰다. 많은 왕조가 흥망하고 수없는 전란이 중국 대륙을 휩쓸었지만, 시장의 묘족은 '관외'(管外) 지역으로 자치하면서 독립성을 유지했다. 18세기 청나라 옹정제에 이르러 정식 행정구역에 편입된 시장은 1949년 공산 중국 건국 이후에야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치를 받게 됐다.

20세기 전반기 구이저우를 통치했던 군벌은 행정력 강화를 위해 시장에 대한 동화 정책을 획책했다. 그러나 깊은 오지인데다 왕래마저 불편한 지리적 위치는 시장에 대한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여 '원생태'의 문화적 토양을 유지케 했다. 리푸중(李福忠·63) 전 시장초등학교 당서기는 "간간히 장사를 위해 시장에 오는 외지인이 있긴 했지만 문화대혁명 이전까지 시장은 묘족만의 옥토였다"고 말했다.

1966년 발발한 문화대혁명은 묘족의 안식처 시장을 그대로 두질 않았다. 험난한 산길을 따라 시장까지 들어온 홍위병들은 묘족의 조상숭배사상과 전통문화를 '사구'(四舊,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로 규정하여 철저히 파괴했다. 리푸중은 "문혁 때 시장을 찾은 홍위병들은 옛 문화를 고집스레 지켜왔던 시장 묘족을 핍박하고 구타도 서슴지 않았다"면서 "10년간 시장 묘족은 숨죽인 채 조상을 모시며 묘족의 문화와 풍속을 근근이 이어갔다"고 회고했다.

먀오녠을 맞아 조상에게 드릴 제사를 위해 돼지고기를 잡는 묘족 남성들. 조상에게 드린 제사상을 위한 돼지는 가장 값지고 살이 오른 것만을 골라잡는다.
 먀오녠을 맞아 조상에게 드릴 제사를 위해 돼지고기를 잡는 묘족 남성들. 조상에게 드린 제사상을 위한 돼지는 가장 값지고 살이 오른 것만을 골라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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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산 묘족은 명절 때 집집마다 마련한 음식을 장탁연(長卓宴)이라는 이름으로 차려서 친척·이웃과 함께 나눠먹는다. 시장도 먀오녠을 맞아 1년 내내 평안하라는 뜻으로, 무려 200m 길이의 연회상을 차렸다.
 레이산 묘족은 명절 때 집집마다 마련한 음식을 장탁연(長卓宴)이라는 이름으로 차려서 친척·이웃과 함께 나눠먹는다. 시장도 먀오녠을 맞아 1년 내내 평안하라는 뜻으로, 무려 200m 길이의 연회상을 차렸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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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수확을 기뻐하고 조상 제사를 지내는 먀오녠

먀오녠(苗年)은 시장 최대의 경축성 명절로, 한 해의 수확을 기뻐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 시기다. 시장 먀오녠은 1년에 3차례로 나눠 벌어지는데, 각각 카이터우녠(開頭年)·다녠(大年)·웨이녠(尾年)으로 불린다. 카이터우녠은 음력 10월 첫째 묘일(卯日)로, 떡을 만들고 돼지고기를 잡아 조상에게 감사의 제사를 올린다.

음력 10월 둘째 묘일부터 3일 동안 지내는 다녠에는 닭과 오리를 잡고 찹쌀밥을 지으며 집집마다 술을 만든다. 잡은 고기와 지은 술은 마을 제사당·다리·농토·숲·바위 등에 뿌리며 자연과 조상에 감사를 드리고, 친척과 이웃을 청하여 함께 나누어 먹는다. 웨이녠은 음력 12월에 3~5일 동안 지내는데, 가장 길고 가장 떠들썩하게 보낸다. 웨이녠에는 집집마다 돼지를 잡고 조상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내지만 샤머니즘적인 행사는 지내지 않는다. 웨이녠에 잡은 돼지 머리는 집안 대청의 조상 신위 앞에 놔두어 조상의 은덕을 온 가족이 함께 기리게 된다.

량톄웨이(梁鐵威) 시장천호묘채관장은 "개혁개방 이후 먀오녠 명절행사가 복원되긴 했지만 그 내용과 절차는 간소화됐다"고 말했다. 량 관장은 "오늘날 허례허식을 줄이는 측면도 있어 웨이녠은 대폭 간소화하고 다녠 때에 웨이녠 행사를 앞당겨 지낸다"면서 "카이터우녠은 지방정부 방침에 따라 음력 10월 1일에 맞추어 지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장융파(張永發) 국가민족박물관 관장은 "시장 묘족이 조상을 기리고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이 깊은 데에는 민족 이동역사와 시장의 자연적 조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 관장은 "오랜 세월에 걸쳐 긴 여정을 거쳐 시장에 정착한 묘족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고 지금의 살기 좋은 생활조건을 이루었다"면서 "묘족은 자연을 파괴하기보다는 이를 섬기고 존중해 왔고 지금의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해준 것이 조상의 은덕이라 여기기에 오늘날까지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묘족에게 소싸움 또한 명절 때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전통행사다. 레이산 일대에서 키우는 소는 대부분 물소로, 싸움소는 전문적으로 키워져 2살에 이르면 소싸움에 투입된다.
 묘족에게 소싸움 또한 명절 때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전통행사다. 레이산 일대에서 키우는 소는 대부분 물소로, 싸움소는 전문적으로 키워져 2살에 이르면 소싸움에 투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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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족 명절이 되면, 소싸움은 레이산 현청 뿐만 아니라 묘족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다. 묘족 소싸움의 룰은 우리와 유사하여 기 싸움에서 져서 도망가는 소가 지게 된다.
 묘족 명절이 되면, 소싸움은 레이산 현청 뿐만 아니라 묘족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다. 묘족 소싸움의 룰은 우리와 유사하여 기 싸움에서 져서 도망가는 소가 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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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과 한족 동화에도 굳건히 지켜온 묘족의 정체성

2007년 현재 시장은 더 이상 산골 오지의 묘족 마을만이 아니다. 한결 좋아진 교통편 덕분에 사시사철 시장을 찾는 관광객이 들끓고, 시장 묘족은 생업인 농사일보다 관광업에 더욱 열성이다. 외지 관광객에 함께 딸려 들어온 외래문화 때문인지 평소에는 묘족 전통의복을 입고 다니는 주민도 찾아보기 힘들다.

10년 전만 해도 퇴직 전 교사 월급 1000위안을 넘지 못했던 리푸중도 오늘날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업으로 한 해 3만 위안(한화 약 360만원)을 족히 번다. 베를 짜고 자수를 놓으며 어렵게 생활해 왔던 저우잉(28·여) 집안도 지금은 묘족 전통의상을 팔며 구이저우의 다른 지방 농민들보다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중국 묘족 최고의 은 세공술을 자랑했던 시장 은장(銀匠)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진작 레이산 현청으로, 구이양(貴陽)으로 떠났다.

10월 1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06년 시장 주민들의 1인당 평균소득은 1679위안(한화 약 21만원)으로 5년 전에 비해 2/3나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은 "지난 5년간 시장 묘족마을의 발전은 중국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 보고에서 묘사한 '쾌속발전'의 축소판과 같았다"면서 "시장은 빈곤한 산골마을에서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는 소수민족 마을의 전범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질문명과 외래문화는 시장을 조용한 산골 묘족마을에서 문명화하고 한족 동화의 길을 걷게 하지만 묘족만의 정체성마저 침범하지 못하고 있다. 먀오녠 행사에서 볼 수 있듯, 도도한 서구문명과 한족문화의 물결은 시장 묘족의 혼과 정신, 조상숭배사상과 전통문화풍습마저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시장을 찾은 저명한 문장가 위치우위(余秋雨)는 "시장의 가치는 오랜 풍상에도 굳건히 묘족의 전통사상·문화·풍속·생활방식 등을 지키고 발전시킨 데 있다"면서 "지방정부는 묘족의 정체성을 더욱 존중하고 돈벌이를 위해 무리한 개발 정책을 밀어붙이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올해 먀오녠 행사에서는 멀리 베이징 중앙정부에서 다수의 정치·문화계 인사가 찾아와 시장 묘족에게 전통문화를 지킨 공로에 대한 시상식을 했다.
 올해 먀오녠 행사에서는 멀리 베이징 중앙정부에서 다수의 정치·문화계 인사가 찾아와 시장 묘족에게 전통문화를 지킨 공로에 대한 시상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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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위안(한화 약 12만원)의 상금과 DVD 플레이어를 부상으로 받고 기뻐하는 시장 전통예술문화의 전수자와 장인들. 외래문화의 침투 속에서도 시장 묘족은 묘족의 전통과 문화, 풍속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1000위안(한화 약 12만원)의 상금과 DVD 플레이어를 부상으로 받고 기뻐하는 시장 전통예술문화의 전수자와 장인들. 외래문화의 침투 속에서도 시장 묘족은 묘족의 전통과 문화, 풍속을 굳건히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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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묘족, #마오녠, #치우, #동화, #문화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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