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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씨가 수감되었던 샌디에이고 소재 CCA 구치소
 최미선씨가 수감되었던 샌디에이고 소재 CCA 구치소
ⓒ San Diego Indy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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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프리웨이는 미국의 서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고속도로이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거주하던 한인 박석주씨가 아내 최미선씨와 함께 5번 프리웨이를 타고 남쪽 샌디에이고 지역으로 짧은 여행길에 오른 것은 지난 7월 31일.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토요타 캠리 자동차 안에서 10여 년간의 이민 세월을 회상하며 샌디에이고의 아름다운 절경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둘 사이의 대화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며 오가던 사이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박씨는 프리웨이에 걸려 있는 멕시코라는 신호판을 보았다.

순간 박씨는 "이런! 큰일 나겠구나"라고 말하면서 프리웨이의 안내 표시판을 따라 도로 오른쪽에 있는 출구 레인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박씨가 택한 것은 입국 검사대 앞에서 U-턴하는 레인이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을 넘어 다시 미국 영토로 들어오는 레인이었다.

흔히 프리웨이의 출구는 도로 오른쪽에 있기 마련이기에 박씨는 오른쪽 출구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씨와 아내 최미선씨가 결국 밟은 땅은 멕시코였고 미국이라는 표시판을 따라 조금 더 운전한 그들 부부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미국 입국 검사대였다.

박씨는 1994년에 입국해 1998년에 영주권을 취득하였으나 아내 최미선씨는 방문 비자로 입국하여 학생 비자로 전환했다가 박씨를 만날 즈음부터 서류미비자, 이른바 '불법 체류자'로 살아왔다.

입국 검사대에서 박씨는 영주권 미소지로 벌금을 부여받았으나 아내는 체류 신분을 증명할 그 어떠한 서류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결국 아내 최씨는 합법적인 입국 서류를 지니지 않은 채 입국을 시도한 '밀입국'으로 간주됐고 보석 재판도 없이 샌디에이고에 있는 구치소에 수감됐다.

아내의 추방 앞에 접은 13년 '아메리칸 드림'... 거세지는 반이민 정책

박씨를 만난 것은 지난 8월 22일. 박씨는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뿐만 아니라 이민 변호사도 만나 보았으나 아내를 석방시킬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의 포기 상태에 접어들어 있었다. 박씨가 보여준 것은 아내의 수감번호(88725043)가 적혀 있는 작은 종이 한 장.

박씨에 의하면 아내는 밀입국이라는 이유로 8월 30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추방될 예정이었다. 아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박씨 역시 한국 시간으로 8월 31일 5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 아내보다 먼저 도착해 아내를 맞이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11월 5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넷판에 의하면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민 단속으로 인해 미 전역에 걸쳐 이민 구치소 수감자의 숫자는 거의 폭발 직전의 상황이다.

이민 구치소에 하루 평균 구금되어 있는 서류미비자 숫자는 전국적으로 3만명을 초과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지역에만 한정하더라도 4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2006 회계년도에는 총 17만7천명이 추방되었으나 2007 회계년도의 경우에는 무려 26만1천명이 추방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류미비자 추방 사례의 급증은 무엇보다도 전국적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그리고 위로부터의 반(反)이민 움직임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난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포괄적 이민개혁안, 즉 백악관과 연방 상원 지도부가 5월 17일 합의한 '포인트제 이민법안'의 좌초는 이민을 반대하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사실 5·17 합의안은 1965년 이후 미국 이민법의 주요 흐름이었던 '가족 초청 이민 제도'를 대폭 제한하고, 이민 희망자의 학력과 기술에 포인트를 매김으로써 일차적으로 숙련 기술직 보유자에게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따라서 인도주의적인 가족 재결합 프로그램 대신 숙련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의 요구를 반영하는 개혁안이 아닌 개악안의 측면을 다분히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5·17 합의안은 이민권익단체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Z비자'를 신설함으로써 서류미비자를 대폭 사면하겠다는 합의안 내용은 반(反)이민 세력들의 준동을 불러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바로 이들의 이민개혁안 반대 캠페인 결과, 즉 연방 상원 의원 전화 걸기 캠페인을 비롯해 그들식의 거칠고 집요한 반(反)이민 풀뿌리 운동의 결과, 그다지 개혁안이라고 볼 수도 없는 5·17 합의안은 끝내 좌초하고 말았던 것이다.

미국의 반(反)이민 움직임은 단순히 아래로부터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월 10일 국토안보부의 마이클 처토프 장관은 서류미비자를 고용하는 업주를 처벌함으로써 불법 이민을 근절하겠다는 단속안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위로부터 전개되는 반(反)이민 움직임의 좋은 예이다.

흔히 서류미비자는 합법적인 세금 보고를 할 수 없기에 현금으로 월급을 받거나 타인의 사회보장번호를 이용해 세금 보고를 하고 월급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토안보부는 이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연방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정보의 불일치를 근거로 고용인의 사회보장번호가 의심스럽다고 판단되는 업체에 이른바 'No Match Letter'를 발송하고 이 레터를 받은 후 90일 이내에 불일치를 해결하지 않는 고용주를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단속안을 세운 것이다.

다행히도 국토안보부의 단속안은 이민권익단체의 소송 결과 현재 샌프란시스코 소재 연방법원으로부터 예비 정지 명령을 받은 상태이다. 하지만 'No Match Letter' 단속안은 서류미비 이민자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도 남는 위로부터의 반(反)이민 정서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 이민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최미선씨의 수감번호는 88725043
 샌디에이고 이민 구치소에 수감되었던 최미선씨의 수감번호는 88725043
ⓒ 이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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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밀려오는 회오리바람과도 같은 반(反)이민 정서는 서류미비자에게 운전 면허증을 발급하려던 뉴욕주 정책의 좌절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9월 21일 엘리엇 스핏처 뉴욕주지사는 체류 신분과 상관없이 한 가지 형태의 운전 면허증을 발급해 서류미비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위-아래의 협공으로 말미암아 10월 27일에는 서류미비자에게 발급하는 운전 면허증은 일반 운전 면허증과는 달리 제작하겠다고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서류미비자에게 발급하는 운전 면허증을 일반 운전 면허증과 다른 디자인으로 제작한다는 것 자체가 서류미비자에게 일종의 주홍글씨 낙인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반(反)이민 세력들은 스핏처 뉴욕주지사의 양보에도 만족하지 않고 일체의 주정부 문서와 신분증이 서류미비자에게 발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압력을 넣었고 그 결과 11월 14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서 볼 수 있듯이 스핏처 주지사는 자신의 정책을 백지화시키고 말았다.

넘쳐나는 이민 구치소... 기본 숙식 제공도 안돼

이민 구치소 수감자와 추방된 자들의 폭증은 이상과 같이 전국적으로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반(反)이민 정서의 결과이며 이민세관국(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의 폭력적인 단속 강화는 수많은 서류미비자의 삶을 위태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기본적인 인권조차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1월 5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인터넷판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1930년대에 설립된 샌페드로 구치소는 수감자들이 넘치는 바람에 그들에게 제대로 된 잠자리조차 제공하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전화 통화 기회조차도 제한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석주씨의 아내 최미선씨 역시 남편에게 배가 고프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멕시칸도 먹으려 하지 않는 볶음밥을 미친 듯이 먹었다고 하더군요"라며 박석주씨는 아내 최미선씨가 겪어야만 했던 고통에 울먹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민 구치소의 실정은 보석 재판의 실종에서도 잘 엿보인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를 제외하고는 재판을 통한 보석 허가를 기본적인 인권으로 간주하고 있다. 추방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즉 정해진 날짜에 법정에 출두하겠다는 조건으로 보석금을 납부하고 신체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러한 추방 재판 보석 케이스는 현저하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단속에 걸려든 서류미비자를 보석 재판없이 이민 구치소에 수감시켰다가 신속하게 해당 국가로 돌려보내는 정책이 선호되고 있는 것이다.

추방을 명령받은 자들 가운데 1/3 정도가 실제로 추방되고 나머지 2/3는 추방 명령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으로 잠적하는지라 이민국 직원들은 보석 재판 대신에 추방으로 직결되는 이민 구치소 수감을 가장 확실한 불법 이민 단속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최미선씨가 보석 재판의 기회도 없이 8월 30일 추방될 때까지 샌디에이고 구치소에서 한 달 동안 수감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추방 관련 보석제도의 실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미선씨가 수감되어 있던 구치소는 일종의 사설 구치소나 마찬가지인 CCA(Corrections Corp. of America)이다.

현재 미국 이민세관국이 관할하는 이민 구치소는 총 여덟 군데이고 이것만으로는 폭증하는 수감자를 충분히 수용할 수 없기에 체포된 서류미비자의 63퍼센트가 일반 로컬 감옥에 수감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감옥 사업을 하는 CCA와 GEO그룹 등이 제공하는 구치소도 추방 대기 이민자를 구금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마구잡이식으로 서류미비자 단속을 벌이고 이들을 보석 재판도 없이 추방될 때까지 이민 구치소에 강제 수감시키는 정책으로 인해 최미선씨와 같은 이민 관련 사범들은 일반 죄수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토안보부의 'No Match Letter' 단속안에 대한 이민권익단체의 10월 3일 LA 한인타운 항의 집회
 국토안보부의 'No Match Letter' 단속안에 대한 이민권익단체의 10월 3일 LA 한인타운 항의 집회
ⓒ 이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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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민의 회오리바람 앞에 정치인들도 침묵

미국의 2008 대선이 이제 일년 앞으로 다가왔다. '이민'이라는 사안을 두고서 민주당 출신 후보들과 공화당 출신 후보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센 반(反)이민 회오리바람을 쉽게 거역하지 못하는 듯 하다. 조금은 친(親)이민 성향을 지녔던 후보들조차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서류미비자에게 운전 면허증을 부여하려는 뉴욕주 정책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은데, 이를 두고서 힐러리 클린턴의 토론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보도가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명확한 대답을 못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지형을 감안했을 때 분명한 입장 표명이 불러올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애써 에두르는 식으로 답변을 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역사학자인 엔가이(Mae M. Ngai) 콜럼비아대 교수가 말하듯이 'Illegal Alien'이라고도 불리는 서류미비자들은 자본의 확대 재생산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의 차원에서는 요구되지만 그 어떠한 정치적 권리와 인권도 부정되는 "불가능한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세계가 국민 국가들로 분할되어 있고 이들 국가들 사이의 부의 분배가 균등하지 못할 때 부득이하게 발생하기 마련이다(Mae M. Ngai, Impossible Subjects: Illegal Aliens and the Making of Modern America, Princeton Univ. Press, 2004, pp. 4-5, p. 269).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반(反)이민 세력들은 자신들의 선조 세대는 근면과 성실로 미국 문화에 동화됨으로써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이기에 현재의 이민자 세대, 특히 서류미비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현재와 역사에 대한 무지를 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서류미비 노동자들이야말로 생존 자체를 위해 하루 하루 힘겹게 노동하고 있거니와, 엔가이 교수가 2005년 6월 14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반(反)이민 세력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이른바 추방 공소 시효(Statute of Limitations)라는 제도가 있어 아무리 불법 체류 신분이라고 할지라도 평생동안 추방이라는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씨에게 미국은 새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13년 가까이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간직한 채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비록 그 드림이 지독한 허구일 지언정.

하지만 10여 년 동안 같이 살았던 아내가 추방될 상황에 몰리자 박씨는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무실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 위에 세워져 있는 'HOLLYWOOD'라는 글자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No Match Letter' 단속안에 대한 예비 정지 명령을 환영하는 이민권익단체의 10월 10일 기자회견
 'No Match Letter' 단속안에 대한 예비 정지 명령을 환영하는 이민권익단체의 10월 10일 기자회견
ⓒ 이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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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류미비자, #추방, #이민, #이민 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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