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낙동강의 젖줄기를 빨며 자랐다는 하용진씨. 그는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을 오기 전까지 줄곧 부산에서 낙동강과 함께 살았다. 1983년 여름 하용진씨는 대학 동아리 회원들과 낙동강을 뗏목으로 '탐사'한 바 있다.

말이 뗏목 탐사지 드럼통, 합판, 각목 등으로 얼기설기 엮은 물건을 끌고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10여 일의 낙동강 탐사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영혼의 소리"와 "아리랑 구슬픈 가락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 탐사는 하용진씨에게 이제는 잊힐 만도 한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강바닥을 파헤치는 굴착기 굉음은 30여 년 전의 그 구슬픈 가락을 한 올 한 올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비록 몸은 멀리 로스앤젤레스에 있지만 4대강 사업으로 마음까지 난도질당한 그는 이렇게 말한다.

"4대강 개발이란 미명하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듯, 굴착기에 강바닥이 파헤쳐지고 핏줄이 잘리우고 심장이 멈추듯, 강물은 고여 섞어 갈 터인 즉, 아! 낙동강, 그동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하용진씨처럼 떠나온 고국의 강산이 파헤쳐지는 아픔에 새파랗게 피멍이 든 미주 동포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했다. 일부 동포들에게는 비록 참정권이 주어졌다지만 해외에서 모국에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어려운 일. 그들은 논의 끝에 작지만 소중한 실천의 길을 마련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릴레이 행사를 이어가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웹사이트 바로가기 : 100인 기원 릴레이 "4대강을 흐르게 해주세요!").

윤성운씨의 4대강 반대 시
유미선씨 그림과 남편 윤성운씨의 시
 유미선씨 그림과 남편 윤성운씨의 시
ⓒ 유미선

관련사진보기


음험한 네온싸인 히번득일 낙동강변 굽이굽이
이젠 더이상 고향을 찾지 않을게다

종아리 담가가며 첨벙이던 곳
할머니 품속같은 갈대밭 수초그늘
나래 가득 가득 계절담아 찾아들던 도래지

은빛 일렁인들 차가운 콩크리트 밑으로 아득히  죽어간다

너울너울 생명담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숨틔우던 기억잊어

마른사막 흐르듯
관같은 수로되어 
반듯 반듯 토막쳐져 흐른다

늪으로 들풀로 썩어서 생명빚는
태초로부터의 섭리를
강기슭 산기슭 도려
콩크리트 범벅으로 반란을 한다

육미터 강기슭
육미터 수심밑으로
억겁의 통곡이 검은 울음을 울을게다
오래 오래 울게다
콩크리트벽을 타고 끝없이 끝없이 눈물 흘릴게다

릴레이 행사는 거창할 필요도 없었고 또 성대하게 할 여유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인 조직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활동은 소박한 1일 1인 4대강 사업 반대 퍼포먼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명상, 금식, 4대강 사업 관련 글 포스팅, 토론 등등의 활동을 매일마다 새로운 릴레이 주자들에 의해 100일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식이었다.

석 달 만에 100번째 주자에게 바통 넘긴 4대강 살리기 릴레이 행진

지난 2월 16일 김원일씨가 첫 주자로 뛰기 시작한 릴레이는 26일 100번째 주자 김종희씨에게 바통이 넘어간다. 그동안 로스앤젤레스뿐만 아니라 뉴욕의 한인들까지도 릴레이에 참가했다.

한국에 있는 김봉준 화백은 소중한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다. 어떤 한 릴레이 주자는 쇼트트랙을 뛰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의 릴레이를 이어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체격 좋은 어느 릴레이 주자는 우리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MB 심성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를 갖기도 했다. 부산 태생으로 1960년대 엘살바도르로 유학을 간 뒤 내전을 피해 엘살바도르인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정치 망명을 했던 최광씨는 "내 그리운 고향의 강들이 파헤쳐지는 것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라며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대영군의 4대강 반대 포스터
 김대영군의 4대강 반대 포스터
ⓒ 김대영

관련사진보기


눈꺼풀이 붕어처럼 솟아오른 그림쟁이 릴레이 주자는 "붕어의 꿈"이라는 그림으로 릴레이에 참여했으며 "구르는 천둥"이라는 별명을 지닌 어느 한 목사님은 108배를 함으로써 하루의 쇼트트랙을 무사히 마무리하기도 했다. 여든세 번째 주자는 콜트콜텍 기타 노동운동가로서 해외 원정 투쟁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몇 차례 다녀갔던 '고공' 이인근씨였다.

어떤 릴레이 주자는 열흘에 걸쳐 1080배를 올리기도 했다. 장구피에 "4대강을 흐르게 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예쁜 그림을 그린 주자도 있었다.

유투브에 올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동영상 갈무리 화면.
 유투브에 올린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동영상 갈무리 화면.
ⓒ shinbulhog

관련사진보기


한국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온 릴레이 주자는 고 김남주 시인과의 오래된 인연을 회상하면서 그의 시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에 곡을 붙임으로써 바통을 이어받았다(☞ 동영상 바로가기).

장거리 트럭 운전업에 종사하는 여든여덟 번째 릴레이 주자는 하용진씨와 마찬가지로 기억 속에만 남아야 할 30여 년 전의 모습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면서 다음과 같은 바람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도 30년 전에 보았던 4대강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런 아름다운 4대강들이 망가진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4대강 사업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원상복귀해야 합니다. 멍박이와 주위 몇몇 인간들의 이해관계에 더 이상 아름다운 조국 강토를 망치고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멍박세력 없는 참세상을 원합니다."

아이린 김씨의 그림
 아이린 김씨의 그림
ⓒ 아이린 김

관련사진보기


이제 26일(미국 현지시각)이면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 왔던 4대강 반대 100인 릴레이가 마무리된다. 릴레이에 참여했던 100인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김원일(2월 16일) 김은희 강두형 변영진 윤우찬 양영수 김지형 우호창 김윤희 김윤경 김영철 이종연 김인수 박용석(3월 1일) 서영국 서승혜 박영준 김하림 한진명 김유석 김현출 노태현 김원석 문동호 이상경 이연숙 정명기 이용식 유미선 김일심 최광 아이린 김 이남희 정신화 윤성운 백승배 박선옥 권순예 김대영 양세현 황정애 신정란 정성목 이수경 김지수/김지민(4월 1일) 박찬일 Austin 김현정 김소진 이화선 아델라 김 정향선 서유미 이승현 김태호 이충섭 남장우 윤이한들 김밝음 박지호 윤수태 송영애 이경진 김진우 전병학 김지수 김정열 송호찬 송현정 이미경 김창옥 육대성 소정미 하용진 고덕재(5월 1일) 박진아 이미성 김봉준 김용호 최윤정 이영남 이계삼 이인근 고선화 김푸름 지나 손인숙 박승우 손주연 민순기 조미숙 박진원 남기원 오성교 육단/육산 김현숙 문우일 허정희 곽건용 김종희(5월 26일 100번째 주자)


태그:#4대강, #로스앤젤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