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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죄송해요.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괜찮아요.”

“정말 미안해요.”
“아녜요. 아나히타도 두 살 때 제 엄마가 세상을 떠나 엄마를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서 생일도 모르고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배우는 영어(ESL) 수업 시간. 나도 모르게 그만 비잔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비잔은 두 달 전 이란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다섯 자녀의 아버지. 그는 내가 가르치는 ESL 중급반에 10대 후반, 20대 중반인 두 딸과 함께 나온다. 

 

이란에 있을 때 미국인들과 교류가 많았다는 비잔은 나이가 많은데도 영어를 잘 한다. 그래서 고급반으로 가라고 권유했지만 히스패닉뿐이어서 싫단다. 사방에서 들리는 스페인어 때문에 도대체 영어를 배우러 온 건지 스페인어를 배우러 온 건지 모르겠다고.

 

결국 우리 반으로 왔는데 우리 반은 비잔네 가족이 오는 바람에 아시아인 비율이 갑자기 높아졌다. 전에는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등 중남미계와 러시아, 알바니아 등 유럽계, 티벳에서 온 아시아인 한 명뿐이었는데 비잔네 식구 세 명이 합류하면서 10명 가운데 아시아계가 40%로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수업 중에 비잔에게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를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숫자(number)를 공부할 때였다. 영어의 기수(cardinal number)와 서수(ordinal number)를 가르치면서 날짜를 말할 때는 서수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생일을 물었는데 운전면허가 없어 날마다 남편이 태워다 주는 닥시에게는 남편 생일을, 세 살 짜리 아들이 있는 킨미앤에게는 아들의 생일을 물었다. 그런데 비잔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그에게 아내의 생일을 물었다.

 

"몰라요."


'아내의 생일을 모르는 남편이라고?'

 

한국에서라면 간 큰 남편 소리를 들었을 그에게 "남편 맞아요?"라고 농담을 건네며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잔의 막내딸인 아나히타에게 엄마 생일을 물었다. 역시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웃으면서 가족인데 어떻게 생일을 모를 수 있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내이고 엄마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생일을 모르는 게 마치 '이란 문화'라도 되는 것처럼 이해하는 듯 했다.

 

날짜에 관한 것은 그렇게 생일을 말해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수업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가방을 챙겨 나오던 비잔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내 앞으로 왔다. 막내딸 아나히타는 아버지를 두고 먼저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미세스 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까 아내 생일을 물었는데 사실 아내는 16년 전에 죽었어요."
"네에? 어머나, 미안해요. 난 그런 것도 모르고."
"괜찮아요."

 

두 딸과 함께 늘 밝은 표정으로 강의실에 들어오는 비잔에게 그런 상처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두 딸 역시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른 아가씨들이었다. 

 

나는 비잔에게 사과를 하면서 몇 마디 말을 더 나눴는데 새롭게 안 사실은 16년 전에 죽은 아내 대신 비잔이 혼자서 아이 다섯을 키웠다고 한다. 막내인 아나히타가 겨우 두 살이었다는데…. 재혼도 안 하고 다섯 아이들을 잘 키워낸 비잔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농담을 건넸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훌륭한 아버지 비잔'이라는 인물과는 별개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내가 죽으면 생일도 같이 잊어버리는 건가.'

 

아직 젊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아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비잔에 대해 나는 문득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이다음에 세상을 떠나면 내 가족들이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려나.

 

저녁을 먹으면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가족들에게 말했다. 아내가 죽었다고 생일까지 잊어버리는 건 아내 입장에서 서운할 것 같다고. 물론 죽은 사람의 생일을 기억하기에 16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적은 게 아니지만 말이다.

 

"엄마, 학생들에게 그런 거 묻지 마. 사적인 거 물어보면 안 돼."

 

큰딸이 날 세운 목소리로 나를 몰아세웠다.

 

"얘, 엄마가 일부러 생일을 물어본 거니? 그게 아니잖아. 날짜 공부하면서 연습 삼아 물어본 것일 뿐. 그것도 태어난 연도를 물은 것도 아니고 예쁜 딸 둘과 함께 나오니까 아내 생일을 물었던 것이라고. 그나저나 비잔이 정색을 하고 아내가 죽었다고 말하니까 되게 미안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좀 다른 생각도 들더라. 아내가 죽었다고 생일까지 잊어버리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죽은 날이라면 몰라도 뭐 그깟 생일까지 기억해?"

 

"얘, 너희는 이다음에 엄마 세상 떠나면 엄마 생일도 다 잊어버릴 거니? 엄마는 외할아버지 생일이랑 외삼촌 생일도 다 기억하는데. 음력 7월 15일. 2월 14일. 물론 돌아가신 날도 다 기억하고."

 

아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비잔이라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비잔은 훌륭한 아버지였다. 죽은 아내 대신 혼자서 다섯 자녀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겠는가. 더구나 막내가 두 살이고 위로 연년생 아이를 비롯해 네 명이 더 있었다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아내 생일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건 너무나 잔인한 게 아닌가.

 

비잔, 당신 정말 훌륭해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냈어요. 이제 은퇴해서 일을 안하다고 했죠. 편히 쉬면서 당신만의 삶을 누리고 자녀들의 효도도 받으세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 있어요.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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