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다."
일기예보에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파란 하늘이 웃고 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만든다. 손짓하는 가을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유혹에 빠지고 싶다. 마음이 조급하여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집사람을 바라본다.
집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모두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다리는 마음이 소중한 줄은 안다. 아니 살아가면서 진득하게 기다려줄 때 무슨 일이든 익어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무조건 기다린다고 하여 항상 좋은 것이 아니다.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시는 그 것을 취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집을 나섰다. 곳곳에서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전주 세계 소리 문화의 축제를 비롯하여 김제시에서는 지평선 축제가 열리고 있고 임실에서는 사선대 축제, 그리고 정읍시 산내면에서는 구절초 축제가 열리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열리고 있는 축제만 이 정도다. 조금 먼 곳까지 헤아려보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싫어졌다. 붐비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은 좋지만, 주차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축제를 즐기려 찾았지만, 교통 정체와 주차 문제로 인해서 모든 힘을 소진되고 만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축제장을 찾게 되면 여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집사람의 생각도 그랬다. 그래서 결정한 곳이 송광사다. 승보사찰 송광사가 아니라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에 위치한 종남산 송광사다. 이곳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산사다. 사찰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많은 문화재도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일요일에 산사를 찾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출발하였다.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어 좋았다. 거치적거릴 것 없이 마음껏 달리니, 일상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여행의 덤이다. 번거로운 삶의 고뇌나 번민은 모두 다 뒤로 밀쳐버린다. 버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묶어두는 것이다. 마음이 텅 비니, 그렇게 가벼워질 수가 없다. 날아갈 것만 같다.
산사에 도착하니, 주차장도 한가하다. 느긋한 마음으로 절 안으로 들어가니, 금강문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더 기분이 좋아진다. 금강문을 지나니 일주문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가로막고 있는 단풍나무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분명 가을이 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준다.
보물 1244호로 지정되어 있는 송광사 종루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38호로 지정된 송광사 동종을 비롯하여 법고 운판 그리고 목어가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만 같다. 욕심으로 찌들어 있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줄 것만 같아서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음을 씻어주고 있어서 세심정이라고 하는가? 정신을 맑고 투명하게 해주는 구절초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얗게 피어난 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어지는 듯하다. 마음이 홀가분해지니 그것만으로 충분하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 꽃은 힘을 나게 해준다.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격려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던가. 위험이 인생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말이다. 안주하게 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꽃들은 그것을 귓가에 들려주고 있었다. 고달픈 삶은 만나게 되는 위험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 소극적인 태도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대로 태풍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가 분명하였다. 파란 하늘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면 후회하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마음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비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완주군 송광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