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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채식을 하는가?

 

 

10월 1일 세계채식인의 날. 광화문에서는 국내외 단체들(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보호연합, 한국채식연합, 칭하이 무상사 국제명상협회)이 시민들에게 채식문화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축산동물들에 발생한 질병이 인간까지 위협하고 있는 시대에 채식은 하나의 대안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공장식 축산업 혹은 기업적 축산업이라 불리는 오늘날의 축산업 방식에서 동물들은 살코기를 제공하는 수단 그 이상은 아니다. 좀 더 많이 자주 싸게 고기를 먹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축산업에도 생산의 효율성이라는 자본주의의 원칙을 적용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동물을 빠른 시간 안에 살찌우게 하기 위해 각종 호르몬제와 곡물사료를 사용하고 항생제는 상용화되었다.

 

매년 4000-6000만의 사람들이 기아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며 13억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10억 마리의 소가 6억톤의 곡식을 먹어치우고 있다. 이것은 전체 곡식생산량의 1/3에 해당하는 양이다. 지난 50년동안 전체 목초지의 60% 이상이 과도한 방목으로 파괴되어 사막화되었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농사를 짓던 소농들은 도시의 빈민이 되었다. 햄버거 1개에 들어가는 쇠고기를 위해 2.5평의 열대숲이 사라졌으며 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숲의 25%가 벌채되었다.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중에서)

 

 

 

 

 

 

채식만으로 영양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채식주의자들이 육류를 즐기는 사람들에 비해 암, 심장질환, 당뇨병, 고혈압 등에 걸릴 확률이 적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학전문가의 조언은 수도 없이 많다. 책임있는 의료행위를 위한 내과의사 협회회장인 닐 바너드의 말을 들어보자. “육류산업은 지난 세기에 발생한 모든 전쟁, 모든 자연재해, 모든 자동차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존 로빈스, <음식혁명> 중에서)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간이 과도한 육식을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는 것. 소비를 줄이면 지구환경을 살리고 기아를 극복하며 동물들의 사육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며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채식을 선택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

 

육식문화의 이런 측면 때문에 채식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동물권리론자,환경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고 평화운동가, 페미니스트들 중에서도 채식주의자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한 언론기사에 소개된 두 명의 활동가의 인터뷰를 인용해보자. 평화인권활동가 최정민씨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야기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의 신념은 국가적 사회구조적 측면의 변화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전쟁과 기타 폭력적 상황에 가담하지 않고 비폭력적인 실천을 하도록 강조한다....목적과 결과만큼이나 그에 이르는 과정과 수단에 주목하는 평화주의자들이 육식을 멀리하는 삶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페미니스트 박소연씨. “육식을 권하는 문화는 사회적 약자를 만들고 타자의 희생과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의 이면이다. 팔리기 위해 통째로 벌거벗고 누워있는 닭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불편했다. 저항조차 포기당한 극단적 폭력의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벌거벗고 다리 벌린 채 누워 있는 사람의 형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겨례 21> 2006년 4월 11일자 기사) 홍등가를 지나면서 정육점의 불빛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페미니즘과 채식주의 역사를 재구성한 고전 캐럴 J 아담스의 <육식의 성정치>에는 동물권리론자의 80%가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일 년 중 단 하루라도 동물에게 자비를

 

10월 2일은 세계농장동물의 날이다. 더 이상 평화로운 농장에서 살지 못하는 동물들을 위해 동물자유연대는 하루만이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날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태어난지 10일만에 마취없이 꼬리가 잘리고 거세된 돼지의 목표는 6개월동안 규격몸무게 110kg을 만드는 일이다. 도축장으로 가는 도중에 열 스트레스로 죽거나 탈진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돼지를 죽여야 하는 도축장직원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돼지를 걷게 하기 위해 쇠꼬챙이, 전기봉을 사용한다. 전기쇼크를 받아 쓰러진 돼지의 목에 칼날이 들어오고 아직 의식이 살아있는 돼지들은 경련을 일으킨다. 이때 흘린 돼지의 피는 우리가 먹는 선지해장국에 사용된다. (자료출처: 동물자유연대) 새끼돼지를 낳는 어미돼지들은 폭 60cm 길이 210cm 의 스톨에서 평생 새끼만 낳을 의무가 주어진다. 오직 앉았다 일어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그곳. 동물도 고통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채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수밖에 없다. 두 번 세 번 먹을 고기를 한번으로 줄이거나 먹지 않는다면 그들의 사육 도살환경을 개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있는 자본주의 아닌가.

 

 

 

 

 

누군가는 식물도 생명이 아닌가? 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런 질문을 던진 분의 의문점에 적당한 답이 될 것 같다. 방송통신대 이필렬교수는 <동물의 권리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곡식을 거두고 과일을 따고 채소를 뜯을 때 느끼는 감정과 동물을 죽일 때 느끼는 감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과일을 딸 때 혐오감, 거부감, 죄의식을 느끼지 않지만 동물에 칼을 들이대로 죽이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거부감이 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사육, 도살, 유통시스템이 철저하게 분리된 오늘날의 식육생산시스템 덕분이다.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에서 복제인간의 존재를 숨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스테이크는 좋아하면서도 도축장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환경운동가이자 침팬지연구가인 제인구달은 뿌리와 새싹 운동을 통해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는 점을 강조했다. 베스킨 라빈스의 후계자 자리를 내던지고 환경운동가가 된 존 로빈스는 이런 실천을 혁명이라고 불렀다. 깃발을 꽂고 정부를 뒤집어야만 혁명인가. 일상을 바꾸고 이제까지 당연시해왔던 진리에 의문을 던져보는 것. 채식은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삶의 투쟁이며 혁명인지 모른다.

 

 

 


태그:#환경, #동물권리, #평화, #채식, #육식의 성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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