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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초. 모 기업의 해외배낭여행비용 지원으로, 급작스럽게 여행일정을 잡아 프랑스 파리, 독일 프랑크푸르트, 쾰른의 세 도시를 6박 7일에 걸쳐 짧지만 알차게 다녀오게 되었다.

세 도시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곳은 파리이다. 비록 11년 전이라고 하더라도 두 번째 방문하는 곳이었지만 당시와는 판이하게 다른 여정과 여행스타일로 그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하루 강행군 후 하루 휴식' 형태의 여행을 다녔던 다른 때의 배낭여행과는 달리 '3박 4일 전 기간 강행군 일정'이라는 무리수를 두며 다녔지만 결국 시간이라는 제약으로 인하여 못 본 곳이 많았던 곳. 그래서, 쉽게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 가보고 싶은 곳. 내게는 그러한 곳이 현재 파리이다.

파리는 건설과 교통에 관심이 많은 내게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세계인에게 유명한 에펠탑, 깔끔하고 독특하게 잘 만든 신도시인 라데팡스, 파리는 물론 프랑스에서 제일 높은 몽파르나스타워, RER과 메트로로 거미줄처럼 엮인 도시철도 등 여러 가지가 인상에 깊게 남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원을 여러 군데 다니며 많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중규모 이상 공원이 군데군데 있기로 유명한 서울 양천구에 10년 넘게 살면서도 '관광객'은 한 번도 못 본 입장에서, 관광객으로 넘치는 공원을 보며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튈르리 공원(Jardin de Tuilerie)

뤽상부르 공원은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500m 전후인 대규모의 공원으로 파리 도심지에 위치한 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공원 중 하나이다. 본래 이탈리아 출신으로서 루브르 궁전에 싫증을 느낀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왕이 죽은 뒤 자신의 고향 피렌체의 궁전과 정원을 모방한 새 거처를 만들도록 명한 것이 이 뤽상부르 공원의 시작으로, 덕분에 종유석 장식의 ‘메디치 분수’와 상원 건물로 쓰이는 '구 왕궁' 등 크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유적이 함께 한다.

뤽상부르 공원과 비교했을 때 규모는 절반 정도이지만 루브르 박물관 인근으로서 뤽상부르 공원에 비해 훨씬 도시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튈르리 공원 또한, 본래 1563년에 당시 왕비였던 가트린 드 메디치가 베르사유 궁전의 조경을 담당했던 르 노트르에게 의뢰하여 만든 궁정정원이 공원의 시작인 곳이다.

파리의 대표적 도심공원인 뤽상부르 공원, 유적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남녀노소의 파리시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자주 찾는 세계적 공원이다
▲ 뤽상부르공원 파리의 대표적 도심공원인 뤽상부르 공원, 유적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남녀노소의 파리시민은 물론 관광객까지 자주 찾는 세계적 공원이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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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원은, 모두 프랑스 대혁명 이후 궁정정원에서 모든 사람들의 공원으로 변경되어 개방되었으며, 남녀노소의 파리 시민들은 물론 파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공원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도보 5분 거리에 소르본대(현 파리 4․5대)를 비롯한 대학교가 많고 바로 건너편 블록에 팡테옹 등 유명 관광지도 있는 뤽상부르 공원과, 세계적인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 옆에 있으며 오랑주리 미술관을 끼고 있는 튈르리 공원 모두 그 입지조건 자체가 매우 괜찮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대 파리인들은 이에 더해, 다채로운 연주가 열리는 야외무대를 만들고 시인과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작품배경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가꾸는 등의 노력으로, 두 공원을 '풀과 나무가 가득한 도심 공원'을 너머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공원'으로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에 앞장섰다.

파리 최중심부에 위치한 튈르리공원. 루브르박물관과 가깝고 오랑주리박물관을 품고 있는 천혜의 위치적 조건에 야외공연을 더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튈르리공원 파리 최중심부에 위치한 튈르리공원. 루브르박물관과 가깝고 오랑주리박물관을 품고 있는 천혜의 위치적 조건에 야외공연을 더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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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우리나라에는 관광객은 물론 다양한 시민들이 가볍게 찾는 공원이 드물다. 그런 상황에서 파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두 공원은, 공원의 기본적인 요건 중 하나인 녹지공간의 유지 및 관리는 물론 인근의 옛 유적과 새 행사 등 다양한 컨텐츠를 조합한 공원으로 잘 가꿈과 동시에 파리의 발달된 도시철도망을 대거 연결하여 접근이 편리하도록 한 점이 돋보인다. 이를 통해, 두 공원은 세계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공원으로 그 명성을 떨치며 다양한 측면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라 비예트 공원 (Parc De La Villette)

라 비예트 공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파리 대도시권(Ill de France)이 아닌 파리시 내에 속해 있지만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어, 시내 중심부 및 주요 관광지 일대와 많이 떨어져 있는 관계로 우리나라의 일반 관광객들은 잘 찾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라 비예트 공원은, 과학산업관 및 제오드 등 독특한 외관의 건축물과 대도시의 공원으로서는 큰 축에 속하는 55만km2에 달하는 방대한 면적의 규모로서, 건축, 토목, 도시, 조경 등 범 건설계열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르고 가는 곳 중 하나가 됐다.

너무 넓은 공간으로서 실내외로 많은 볼거리가 존재하여,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보지 않는 한 족히 3시간은 잡아야 할 곳인 라 비예트 공원. 수족관, 영화관, 멀티미디어도서관, 천문관, 전시관 등이 들어선 거대 규모의 빌레트 과학산업관(Cité des Sciences et de I'Industrie)을 중심으로, 옴니맥스 영화관이 있는 제오드(Géode), 콘서트홀과 국립무용음악학교 그리고 음악박물관이 있는 음악관(Cité de la Musique), 또한 이를 감싸는 거대한 녹지 등이 라 비예트 공원을 구성하는 주요 축이다.

노후운하, 도축장, 가축시장 등을 재개발해 과학관 등이 함께하는 초대형 시민공원으로 재개발한 라비예뜨공원.
▲ 라비예뜨공원 노후운하, 도축장, 가축시장 등을 재개발해 과학관 등이 함께하는 초대형 시민공원으로 재개발한 라비예뜨공원.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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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비예트 공원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부담없이 찾아 휴식, 운동, 데이트, 학습, 체험 등을 접하는 '넓이만 넓은' 공원이 아닌 '다양한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폭 넓은 공원으로서도 그 의미가 크지만, 낙후지역을 복합용도개발을 통해 새롭게 가꿔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본래 가축시장, 도축장, 노후운하 등의 모습을 갖고 있던 이 곳에 공원이 개장한 때는 1993년. 스위스의 유명 건축가인 베르나르 추미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여러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하였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복합공원 하나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한 지역은 아닌 곳이라 할 지라도 범위를 넓혀 보면, 수도권 서북부 지역의 초대형 문화예술시설로 유명한 아람누리, 양 옆으로 라페스타 및 웨스턴돔 등의 스트리트몰이 있는 가운데 작은 공원으로 존재하는 미관지구, 그리고 전 국민에게 유명한 거대한 공원인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일산의 이 라인 정도만 파리 라 비예트 공원과 구색을 맞출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베르시 공원 (Parc De Bercy)

파리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로 손꼽히는 15구 및 16구가 서쪽 지역에 치우친 반면, 상대적으로 아프리카 및 동아시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쪽 지역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네로서 발전 속도 또한 느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테랑 대통령의 주도로 개발되기 시작한 12구의 베르시 지역은, 베르시 일대가 파리에 포함될 때 폭등한 임대료로 상인들이 하나씩 떠난 후 오랫동안 남은 빈 와인 저장창고 중 상태가 양호한 와인창고를 리모델링한 긴 쇼핑 스트리트와, 노후한 와인 저장창고 부지 및 인근 공터를 새롭게 만든 드넓은 베르시 공원 등으로, 파리 동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휴식․쇼핑․문화의 지역으로 자리잡았다.

베르시 지구는, 건물 네 귀퉁이가 마치 책을 펴 놓은 듯한 형상으로 세느 강 건너편에 위치한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Bibliothéque Nationale Fracois-Mitterrand), 공연장인 클럽메드월드, 영화관․서점․음반점 등 복합문화공간인 MK2, 세느 강 선상(船上) 나이트클럽인 Batofar 등 인근에 가 볼만한 곳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공원이 생기며 부수적으로 쇼핑스트리트를 조성한 것이며, 그 뒤 이 지역이 번화함에 따라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시설 및 상업시설 등이 확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공원이 한 지역의 생활환경을 어떻게 바꿀 수 있으며 공원을 잘만 가꾼다면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관광지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낙후지역 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베르시지구 도시개발의 일환.
▲ 베르시공원 낙후지역 재개발 차원에서 이뤄진 베르시지구 도시개발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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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베르시 지구의 경우, 동아시아계 민박 상당수가 위치한 파리 동남부에서 멀지 않다. 그렇기에 아침에 산책 차 공원을 찾고 세느 강을 건너는 사람들, 주말 오후에 가볍게 쇼핑을 즐기는 사람들, 저녁 때 프랑스 클럽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 등, 유명관광지는 아니라 많지는 않아도 의외로 동아시아인을 찾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강 외에 안양천, 중랑천, 경안천, 왕숙천 등 수도권 내 대형 하천에 이러한 곳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과거 공업지역이 많던 위 지역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개발하는 일이 빈번한 상황에서 하천과 연계한 거대한 복합문화공원의 조성은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파리의 공원 그리고 우리의 공원

파리는 고전적인 도시의 면모가 지배적이던 곳으로 오래 전에는 노후한 도시의 이미지가 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단위 도시 정비 계획을 기점으로 개성있는 건물과 드넓은 녹지를 통해 아름다운 도시로 발전되어 가고 있으며, 이는 시민들의 풍요로운 생활에 도움을 줌은 물론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권의 경우, 최근 아담한 모습의 소규모 공원을 다수 만들고 있고, 새로 건설되는 대단위 택지개발지구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공원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강시민공원, 월드컵공원, 여의도공원, 서울숲, 양재시민숲, 올림픽공원, 일산호수공원, 분당율동공원 등 대규모 공원 몇 곳을 제외하면, 관광객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운동하는 사람들과 데이트하는 연인들 외에는 이용이 드물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안심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벤치에 누워 낮잠을 청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프랑스 파리 대도시권의 공원과, 평소에도 상당수의 공원이 노인 분들 외에는 사람들이 적다가 해가 진 뒤에는 '우범지역'으로 인식되는 대한민국 수도권의 공원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물론 아직은 양적으로도 공원의 수가 더 많아져야 할 시기라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양적으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공원을 질적으로도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단은 모든 공원을 언제나 안전한 공원으로, 그 다음에는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원으로, 몇 개의 공원은 뿌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때, 국민 삶의 질은 보다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국정브리핑(korea.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파리, #공원, #건설,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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