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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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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남편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남편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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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세계적 현대음악 작곡 거장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부인 이수자(80) 여사가 남편의 고향인 경남 통영을 찾은 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흐린 날씨였다. 40년만에 한국 땅을 밟은 이 여사는 딸 윤정(57)씨과 함께 14일 하루 종일 통영에 머물면서 남편의 체취를 찾았다.

이 여사 일행은 이날 오전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사천공항에 도착했다. 진의장 통영시장이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으며, 통영시청에서는 시민 100여명이 모여 박수로 이 여사를 맞이했다.

진 시장과 환담을 나눈 이 여사는 고 윤이상 선생과 친구인 화가 전혁림(90) 선생을 통영시내에 있는 전혁림화랑에서 만났다. 통영시내 곳곳에는 이수자 여사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수자 여사는 14일 오후 충무관광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남편은 고향에 돌아오고 싶어했고, 고향에 묻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현재 베를린에 있는 남편의 유해를 모시고 올 의향에 대해, 이 여사는 "베를린에 묻힐 당시 베를린 정부에서는 '앞으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방법이 없어 사인했다"면서 "언젠가는 고향 땅에 와서 파도 소리에 묻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누구의 힘으로도 될 수 없고, 정부 대 정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미공개 악보인 '현악4중주 2번'에 대해 딸 윤정씨는 "1번부터 6번까지 썼는데, 2번만 공개가 안 됐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친필로 악보 위에 글을 썼다"면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 2번이 빠졌으니까 얼마 있다가 출판을 먼저 하고 공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정씨는 "얼마 전 통영에 우연히 땅을 샀다, 그 땅 위에 서니까 편안하더라, 언제 한번 어머니도 계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수자 여사는 "베를린과 평양에도 집이 있다, 외국에 오래 살면 정도 든다, 서울에 와 보니 너무 복잡하고 일본에 간 느낌 받았다, 자주 오게 되면 정도 들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통영에 자주 오겠다, 남편의 고향을 제 고향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남편의 고향인 통영을 찾은 14일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흐린 날씨였다. 이수자 여사가 우산을 쓰고 미래사 경내를 거닐고 있는 모습.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남편의 고향인 통영을 찾은 14일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흐린 날씨였다. 이수자 여사가 우산을 쓰고 미래사 경내를 거닐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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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래사 법당에 마련된 고 윤이상 선생의 영정과 위패.
 통영 미래사 법당에 마련된 고 윤이상 선생의 영정과 위패.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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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이수자 여사는 이날 오후 2시 미륵산 미래사(주지 여진)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했다. 미래사 법당 안에는 고 윤이상 선생의 영정이 위패가 놓여져 있었다. 법당에 들린 이 여사와 윤정씨는 먼저 향을 피운 뒤 재배하기도 했다.

이어 미래사 주지 여진 스님이 반야심경을 봉독하자 이수자 여사는 두 손을 모은 채 염불을 따라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이 여사는 여진 스님을 향해 절을 한 번 했다. 여진 스님은 스님들의 염불 소리가 담긴 음악CD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이 여사한테 전달했다.

여진 스님은 "고 윤이상 선생이 쓴 책을 읽어보면 어릴 적 통영 용화사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스님들의 염불소리를 들고 음악적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면서 "이 CD에는 꽹과리와 북, 징의 반주 속에 하는 염불소리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뒤이어 고 윤이상 선생의 영정을 향해 선 이 여사는 작심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고 윤이상 영가시여. 사랑하는 당신이시여.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고향에 제가 왔습니다. 당신과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고향에 오지 못한 한을 푸십시오. 저는 당신을 대신해서 고향의 정을 느낍니다. 하늘 높이 승천하리라 빕니다. 내 인생이 다해 당신 곁으로 갈 때까지 평화롭게 계시길…."

말이 끝나갈 즈음 이수자 여사는 목소리가 메이면서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와 딸 윤정씨가 미래사 법당에서 절을 하고 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와 딸 윤정씨가 미래사 법당에서 절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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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이상 선생의 딸 윤정씨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딸 윤정씨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서 향을 피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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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도 통영을 고향으로 삼도록 하겠다"

이수자 여사는 이날 오후 5시 충무관광호텔에서 진의장 통영시장과 박진해 마산MBC 사장, 딸 윤정씨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통영 방문의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이수자 여사 기자회견 때 한 말이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다.
 고 윤이상 선생의 부인 이수자 여사가 14일 오후 통영 미래사에서 열린 '윤이상 추모제'에 참석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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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감은?
"고향 방문은 개인보다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 방문이다. 남편의 영령을 모시고 40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저는 통영이 처음이다. 1950년에 결혼했을 때는 전쟁이 일어나 통영도 방문하지 못했다. 수복한 뒤 선생은 유학 갔다. 저는 통영에는 전연 와보지 못했다.

그래서 낯선데, 낯설지 않다. 윤이상 선생은 항상 비진도며 한산도 등 통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했다. 통영에 온 것이 기본이라 생각했다.

통영 앞바다와 산천을 바라보며, 여러분들을 봤을 때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영해 주었는데 저한테 한 것이 아니라 남편한테 해준 것이라 보고 가슴이 뜨겁다.

그동안 음악축제를 해도 소식만 들었지 와보지 못했다. 정부에서 명예를 회복한 만큼 앞으로 기회 있으면 와 볼 것이다. 그래서 고향으로 삼고 자식들의 고향으로도 삼아야 된다."

- 윤이상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이 되었다고 보시는지?
"일단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진상규명을 하고 정부에서 사과를 했다. 지금 정치사항으로 봐서는 대단히 힘든 일이라 판단했다. 윤이상 선생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이니까 예술적인 면에서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 음악제와 국제콩쿠르 등에 있어 '윤이상'이란 명칭 사용을 허용할 것인지?
"명칭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윤이상 선생은 때를 잘못 만났다. 홀홀 단신 40살에 가까워 유학 가서 만년에는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섰다. 그동안 우리 조국은 선생한테 무엇을 했나. 아픔만 주었다. 통영에서는 '윤이상 축제'를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반가웠다. 그런데 그 뒤 이름이 '통영국제음악제'가 되었더라. 그 다음에는 콩쿠르가 나왔다.

물론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어렵다. 윤이상 선생이 작곡가가 아니라면 어느 곡이라도 좋다. 콩쿠르를 하면서 지정곡이 윤이상 선생의 곡이어야 한다. 윤이상이란 이름을 붙여 놓고 베토벤이나 모자르트 곡을 해서 수상하고 연주된다면 가슴 아프다. 그래서 때가 안됐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윤이상 선생의 곡은 거대하고 방대하다. 연주하는 곡은 소곡들이다.

당돌하고 염치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콩쿠르에 이름에 달지 못하도록 했다. 이해해 달라. 하지만 통영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기에 통영시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내고, 문화적으로 발전을 본다면 만족한다. 옆에서 도울 수 있으면 돕겠다."

- 윤이상 선생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고 올 의향은?
"선생은 고향에서 돌아가시고 싶었다. 친구인 고 김용익 선생이 윤이상 선생의 동기로 미국에 살다가 돌아가신 뒤 통영에 모셔다가 바다가 바라보는 언덕에 파도소리 들으며 묻혔다. 부인으로부터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고 윤이상 선생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정말 돌아오고 싶었다. 불행한 사건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당시 명예가 회복되었다면 유골을 당당하게 가지고 왔을 것이다. 베를린에 묻힐 당시 베를린정부에서는 '앞으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방법이 없어 사인했다. 항상 희망하고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고향 땅에 와서 파도 소리 묻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누구의 힘으로도 될 수 없고, 정부 대 정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윤이상 선생이 남긴 악보 중에 가족만을 위한 미공개 작품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작품을 통영에서 처음으로 발표 의향은?
"(딸 윤정씨 대답) 미공개작품은 하나가 있다. 현악4중주 2번이다. 1번부터 6번까지 썼는데, 2번만 공개가 안됐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친필로 악보 위에 글을 썼다. 이것은 다만 가족들을 위한 곡이라고 했다. 보관해 있으면서 공개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2년이 되었다. 2번이 빠졌으니까 얼마 있다가 출판을 먼저 하고 공개하고 싶다. 연주하는 것은 통영에서도 하고 싶다."

진의장 통영시장은 "정부와 통영시가 힘을 합쳐 세계적인 음악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선생에 대해 많은 고통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한다.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겠다. 이곳에 세계적 건축가를 통해 음악당을 건립하겠다. 480억원 정도 예상된다. 이 일은 통영시만의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수자 여사는 딸 윤정씨와 진의장 통영시장, 박진해 마산문화방송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14일 오후 충무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수자 여사는 딸 윤정씨와 진의장 통영시장, 박진해 마산문화방송 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14일 오후 충무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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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육필 악보, 문화재 지정 검토"

이수자 여사는 고 윤이상 선생 탄생 9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 여사는 1967년 발생한 '동백림사건'에 남편인 윤이상 선생과 함께 연루되어 한국으로 연행되어 40여일간 지내다 독일로 돌아갔다. 윤이상 선생도 그 뒤 고향을 찾지 못했으며, 이 여사는 40년만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다.

2006년 1월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동백림 사건 관련 조사발표를 하면서 '사과권고'를 했다. 이에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지난 5월 이수자 여사에게 "과거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감표명"과 함께 "선생과 유족들이 겪은 그간의 고초에 대해 위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수자 여사는 13일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하기도 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고 윤이상 선생의 육필 악보를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여사는 15~2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2007 윤이상 페스티벌' 행사에 참석하고, 20~21일 사이 자신의 고향인 부산을 방문한 뒤 10월 3일 출국할 예정이다. 14일 통영을 방문한 이수자 여사는 15일 오전 상경한다.

미래사 주지 여진 스님이 염불소리를 담은 음악시디를 이수자 여사한테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미래사 주지 여진 스님이 염불소리를 담은 음악시디를 이수자 여사한테 선물로 전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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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이상, #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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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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