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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마파나에는 이렇게 생긴 도마뱀이 많다.
 라노마파나에는 이렇게 생긴 도마뱀이 많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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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 기둥을 기어오른다. 처음에는 한 마리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세어보니까 그게 아니다. 열 마리도 넘는다. 초록색 바탕에 등에는 얼룩덜룩한 무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마다가스카르의 겨울인데, 겨울에도 이렇게 많은 도마뱀이 있을 정도면 여름에는 얼마나 많을까?

이살로 국립공원에서도 도마뱀을 보았었다. 그곳의 도마뱀은 온통 회색이었다. 황량한 암석지대인 이살로에서는 도마뱀도 보호색으로 회색을 택하나 보다.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은 초목이 울창한 열대우림이다. 이 곳에 사는 도마뱀들은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몸 색깔이 초록색이다.

전망대에서 휴식 후 야간트레킹에 나서다

여기는 트레킹 도중에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라노마파나 트레킹 코스의 전망대. 이곳에 서면 저 아래로 라노마파나 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아주 작게 보인다. 그걸로 봐서는 우리가 꽤 많이 올라온 모양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쉬면서 어두워지기 전에 간식을 먹었다. 간식메뉴는 빵과 파파야, 오렌지다.

먹고나서 조금 쉬고 야간 트레킹에 나설 예정이다. 야간 트레킹이란 것은 사실 별게 아니다.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에는 야행성 동물들이 있는데, 그 동물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바로 야간 트레킹이다. 그 동물들은 생쥐여우원숭이를 포함한 몇 종의 포유류들이다.

전망대에서 쉬고 있자니 다른 외국인여행자들도 이곳으로 계속 들어온다. 이들은 나처럼 주간 트레킹을 마치고 온 걸까? 아니면 그와는 별도로 그냥 야간 트레킹을 위해서 올라온 사람들일까? 아침부터 거의 하루종일 숲을 누비고 다녔더니 몸이 축 늘어진다. 이따 마을에 돌아가서 맥주를 한잔 먹으면 바로 뻗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가이드 도핀이 말했다.

"이제 어두워지니까 천천히 걸어가보죠."

그래서 나는 일어섰다. 산이라서 그런지 해가 빨리 진다. 해가 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깜깜해졌다. 도핀과 나는 각자 휴대용 손전등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해가 져서 선선해진 산길을 손전등으로 비추면서 걸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흘러내린 땀이 마르지 않을까?

밤이 되니 숲은 더욱 조용해졌다. 낮에는 새가 우는 소리라도 들렸었는데 밤에는 그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가로등 같은 시설도 당연히 없기 때문에 보이는 불빛이라고는 오직 도핀과 내가 들고 있는 손전등 불빛뿐이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혹시라도 내가 도핀을 놓쳐서 혼자 이곳에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쥐여우원숭이는 어떻게 작아졌을까

생쥐여우원숭이
 생쥐여우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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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여우원숭이
 생쥐여우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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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어서 야행성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대충 10명 정도 되는 외국인여행자들이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이들은 한 곳에 모여서 아무 말도 없이 숲의 한쪽을 쳐다보고 있다. 뭘 보고 있는 걸까. 분위기 파악을 못한 내가 도핀에게 물었다.

"생쥐여우원숭이를 보고 있는 거예요?"
"아뇨, 시벳(Civet)을 보고 있는 거예요."
"시벳? 그게 뭔데요?"

그러자 조용히 모여 있던 외국인들이 '와~' 하고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도핀이 말한다.

"망구스 알아요? 망구스하고 비슷한 동물이에요."

망구스하고 비슷하다. 그러면 고양이과의 육식성동물이라는 얘기가 된다. 나도 외국인들을 따라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나무숲 사이로 어떤 동물 하나가 나왔다가 들어갔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놈이 나올만하면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연신 플래시를 터뜨린다. 야행성인 시벳은 플래쉬에 놀라서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생쥐여우원숭이예요!"

한쪽에서 다른 팀의 가이드가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다. 육식성고양이처럼 생긴 놈보다는 아마 이 작은 영장류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다. 나도 사람들 틈에 섞여서 보았다. 영어로는 'Mouse Lemur'라고 부르는 놈이 그곳에 있었다. 이름 그대로 생쥐처럼 작게 생긴 여우원숭이다.

이 여우원숭이는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나무에서 나무로 옮겨다닌다. 모여든 낯선 사람들의 시선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연신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생쥐처럼 작고, 생쥐처럼 재빠르다. 하지만 이 놈은 생쥐가 아니라 영장류다. 아주 작은 영장류. 영장류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작은 놈이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안경원숭이 다음으로 작은 영장류가 아마 이 생쥐여우원숭이일지 모른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작아졌을까?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많은 여우원숭이 중에서 가장 큰 놈은 인드리원숭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놈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생쥐여우원숭이일 것이다. 여우원숭이들은 마다가스카르에서 다양한 크기과 형태로 분화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서 이 두 종은 크기에서 극단적으로 분화했다. 하나는 커지는 쪽으로 진화했고, 다른 하나는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물론 이 문제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종을 가진 여우원숭이의 계통발생을 추적해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난해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궁금하기는 하다. 이 두 종은 같은 조상으로부터 분기했을까? 어떤 요인 때문에 하나는 작아졌고, 다른 하나는 커졌을까?

손전등을 비추며 밤길을 걷는 즐거움

나뭇잎도마뱀
 나뭇잎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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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노마파나의 숲
 라노마파나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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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여우원숭이를 보고나서 우리는 다시 공원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저녁 7시. 공원입구로 가는 도중에도 몇 번을 멈춰서서 동물을 보았다. 나뭇잎처럼 생긴 나뭇잎도마뱀도 있고 카멜레온도 있다. 숲을 헤메고 다니느라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숲을 떠나기가 싫다. 고요하고 적막한 이 숲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헨젤과 그레텔> 등의 이야기가 숲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닐까.

공원을 빠져나온 도핀과 나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마을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가 얻어탈 만한 차가 있으면 얻어타고, 아니면 그냥 걷는 수밖에 없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 떠 있고, 밤의 공기는 선선하다. 사람도 없고 차 한 대도 없는 포장도로에 손전등을 비추면서 우리는 걸었다. 100m를 걸을 수 있다면 1km를 걸을 수도 있다. 1km를 걸을 수 있다면 마을까지 6km를 걷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아침부터 거의 10시간 동안 숲속에서 트레킹을 해서인지 다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쑤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분 하나만큼은 좋다. 숲에 들어가서 땀을 흠뻑 흘린 데다가 이제 마을로 돌아가면 샤워를 하고 즐거운 식사를 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차가운 맥주도 함께.

라노마파나 국립공원에 오는 여행자들은, 비록 운이 없다고 하더라도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만일 운이 좋은 여행자라면 정말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얼마나 운이 좋은 편이었을까.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는 아마 곧 멸종할 거예요."

낮에 도핀이 했던 이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물론 모든 종은 멸종하기 마련이다. 곳곳에서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인간도 아마 언제가는 멸종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멸종'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될 것 같다. '멸종할 거예요'라는 말을 자꾸 꺼내다가는, 정말로 곧 이들에게 멸종이 닥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황금대나무여우원숭이, 큰대나무여우원숭이는 오직 이곳에만 산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립공원을 만들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어쩌면 인간이 마다가스카르에 상륙했던 그 순간부터, 이들의 운명은 멸종으로 가도록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좀 기다려보죠. 우리한테는 시간이 있거든요."

도핀이 아까했던 이 말도 떠오른다. 그래. 조금 기다려보자. 대나무를 먹는 여우원숭이가 언젠가는 멸종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시간이 있다. 시간을 희망과 연결시킬 수만 있다면, 아직도 희망은 있다.

라노마파나의 폭포, 아래 앉아있는 사람이 가이드 도핀
 라노마파나의 폭포, 아래 앉아있는 사람이 가이드 도핀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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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했습니다.



태그:#마다가스카르, #라노마파나, #여우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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