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열차 창가에서 만난 아가씨는 얼굴만 보곤 소년인 줄 알았다. 그녀는 음베야에서 내려 말라위로 간다고 했다.
 열차 창가에서 만난 아가씨는 얼굴만 보곤 소년인 줄 알았다. 그녀는 음베야에서 내려 말라위로 간다고 했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여행 12일(1월13일) 날이 채 밝기 전이지만 배낭을 짊어지고 잔지바르 항구까지 20분을 걸으니 온 몸이 땀으로 젖고 말았다. 항구에서 수속을 밟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바라보는 인도양의 바다에는 이제 막 하루를 여는 작은 배들이 일터로 떠나고 있었다.

다르에스살람 항구에 도착하니 어김없이 '삐끼'들이 몰려들었다. 아무리 좋은 가격을 불러도 선금을 달라는 운전수는 거절해야 한다. 돈을 받고 도망가 버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삐끼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갈 때 쯤 택시 가격도 이미 반값으로 떨어졌다.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로 넘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나라에 걸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타자라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타자라는 탄자니아-잠비아 철도(Tanzania-Zambia Railway)의 준말이다. 덜컹거리고 소음도 심하지만 말라위나 잠비아로 가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교통수단이다.

타자라는 다르에스살람을 출발해 말라위와 국경지역인 음베야(Mbeya) 등 147개의 역을 경유하여 잠비아의 뉴 카피리 음포시(New Kapiri Mposhi)에 이르는 1860km에 달하는 거리를 연결한다. 책에는 30시간 걸린다고 했지만 보통 4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50시간 걸렸다. 사실 우리의 KTX로 달린다면 1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다.

버스로 가면 24시간 정도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기차노선은 도중에 국립공원을 지나는 덕분에 창밖으로 기차 사파리를 즐길 수 있다고 해서 타자라를 타기로 했다. 실제로 거의 꼬박 이틀을 기차 안에서 먹고 자고 뒹굴게 된다.

탄자니아 타자라 기차역의 대합실. 3등석 대합실은 각지로 떠나는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현지인들은 모두들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기차에 올랐다.
 탄자니아 타자라 기차역의 대합실. 3등석 대합실은 각지로 떠나는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현지인들은 모두들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기차에 올랐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타자라 기차역.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 있는 타자라 기차역.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개찰구가 열리자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3등칸은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아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개찰구가 열리자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3등칸은 좌석이 정해져 있지 않아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중국과 비슷한 열차구조

좌석은 4인 1실인 1등석과 6인 1실의 2등석, 좌석이 배정되지 않고 긴 의자만 있는 3등석으로 나뉜다. 가이드책에 의하면 1등석이 2등석 가격의 두 배나 된다고 해서 2등석으로 예약했는데 역에 와보니 15불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1등석 침대칸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이미 모든 표가 매진되어 어찌할 수 없다. 

대합실도 1·2등석과 3등석이 구별되어 있는데, 3등석은 각지로 떠나는 현지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현지인들은 모두 피난이라도 가는 것처럼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3등석은 좌석이 지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출구가 열리자 사람들이 와르르 일어나더니 제 몸뚱이만한 짐들을 이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차에 오르자 좁은 복도와 그 옆으로 철문이 이어져 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3층 침대가 마주 보고 있다. 한쪽에 3명씩 한 칸에 6명이 잘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면 머리가 천장에 닿아 앉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낮에 생활할 때는 침대를 접어 올리고 1층 침대에 마주보고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2·3층을 펴고 잠을 잔다.

1등칸으로 구경을 갔다. 창가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2층 침대 2개가 마주보고 있었다. 1등석은 1층 위에 2층 침대를 펴 놓아도 사이 공간이 넓어 낮에도 침대를 접을 필요가 없었다. 아무 때나 눕거나 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침대시트도 더 뽀송하고 생수와 휴지까지 제공되었다.

지나는 현지인에게는 거의 표를 확인하는데, 나는 별 어려움 없이 1등칸을 드나들 수 있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거의 1등칸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보다. 덕분에 1등칸에만 있는 샤워실을 맘껏 사용할 수 있었다. 비록 달랑 수도꼭지 하나 달려있는 것이지만.

[왼쪽] 타자라 열차의 복도 1·2 등칸은 좁은 복도와 그 옆으로 문이 이어져 있다. 
[가운데] 세면실 
[오른쪽] 화장실은 기차가 움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의 변기통을 보면 구멍 아래로 철로가 보인다. 볼일을 보는 즉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왼쪽] 타자라 열차의 복도 1·2 등칸은 좁은 복도와 그 옆으로 문이 이어져 있다. [가운데] 세면실 [오른쪽] 화장실은 기차가 움직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의 변기통을 보면 구멍 아래로 철로가 보인다. 볼일을 보는 즉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잠비아로 가는 타자라 열차표. 마치 예전 우리나라 비둘기호 티켓처럼 생겼다.
 잠비아로 가는 타자라 열차표. 마치 예전 우리나라 비둘기호 티켓처럼 생겼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타자라 철도는 1970년 대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대외 원조 계획에 의해 설계되고 건설된 것이다.  당시 철로 공사에는 수많은 중국 죄수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오랫동안 보수가 되지 않아 노후해졌다. 

당시 이 철로는 내륙 국가인 잠비아가 바다로 진출할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 시장에 대한 진출을 확대할 수 있었고, 중국 정부와 석유뿐만 아니라 코발트 같은 지하자원의 개발에 대한 협정을 체결했다.

열차 내부 또한 중국의 열차처럼 차를 마실 수 있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차주전자가 있다. 열차 이곳저곳에 써있는 한자 표지판으로 보아 이 열차도 중국에서 들여온 것 같다. 

낡고 노후한 철로와 열차를 누가 고칠 것인가?

타자라 열차 경로.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을 출발하여 잠비아의 뉴카피리음포시까지 1860㎞를 연결한다.
 타자라 열차 경로.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을 출발하여 잠비아의 뉴카피리음포시까지 1860㎞를 연결한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기차를 타기 전 했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지나는 역마다 마을 사람들이 돈과 바꿀 먹거리를 들고서 창가로 모여들었다.
 기차를 타기 전 했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지나는 역마다 마을 사람들이 돈과 바꿀 먹거리를 들고서 창가로 모여들었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지속적인 투자와 교역으로 아프리카에서 중국의 입지는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뉴스에 따르면 현재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도입하는 원유의 비중이 30%에 이르고 있으며 오는 2025년경에는 그 비중이 4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또한 지금 중국의 아프리카 자원개발은 석유 등 에너지 자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물·면화·목재 등 각종 원자재를 망라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성과들이 앞으로 아프리카가 성장하는데 건전한 경제 기반을 제공하지 못할 거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이 건설 사업장에 중국인 근로자들을 보냈다가 일단 그 일이 완료되면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술을 남겨두지 않은 채 모두 철수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기술력이 없어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타자라 철로다.

승용차나 고속버스· 비행기 등 고속으로 달리는 것에는 안전벨트가 필수품처럼 붙어 있다. 그러나 유독 기차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고속 전철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바로 기차의 엄청난 무게 때문이다. 보통 기차 객실 1량의 무게는 43톤, 기관실의 경우에는 엔진과 같은 기계장치 때문에 120여 톤에 달한다. 그러니 기관실 1량에 객실 9량이 붙어 있다면 기차의 무게는 약 500여 톤에 달한다.

이런 기차가 트럭이나 승용차와 부딪친다면 얼마나 충격을 받을까? 정답은 '거의 충격이 없다'이다.

2박3일의 50시간 기차여행이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파리와  가끔씩 만나는 마을을 구경하다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2박3일의 50시간 기차여행이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사파리와 가끔씩 만나는 마을을 구경하다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충돌사고가 위험한 이유는 충돌로 속력이 갑자기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차에 충돌하는 자동차는 기차의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게 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가볍다. 1톤 정도의 승용차가 달리는 기차와 부딪쳤다고 해봐야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또한 기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갑자기 정지하더라도 제동거리가 길어 자동차끼리 부딪쳤을 때와 같이 충격이 크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차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그러나, 물론 희박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기차끼리의 충돌이나 탈선 등을 고려한다면 기차에도 안전벨트가 있는 편이 낫다. 특히 중국이 만들어 놓고 도망가버린 노후된 타자라 열차라면 말이다.

오토바이에도 안전벨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차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안전벨트가 없다. 오토바이의 경우,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크게 다치는 사례는 넘어진 오토바이에 깔려서 같이 미끄러지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물론 헬멧이나 장갑 등의 안전장구를 모두 갖추었을 때를 전제로 말하는 것이다. 만약 안전벨트가 있어서 운전자와 오토바이를 한 데 묶어둔다면 간단한 마찰에도 오히려 크게 다친다. 이런 이유로 오토바이에는 안전벨트가 없다.

창밖으로 펼쳐진 대륙의 풍경

국립공원 근처를 지나갈 때는 나뭇잎을 먹고 있는 기린을 볼 수 있었다. 이 기차를 사파리 열차라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국립공원 근처를 지나갈 때는 나뭇잎을 먹고 있는 기린을 볼 수 있었다. 이 기차를 사파리 열차라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앗! 기린이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창밖으로 내다보니 기린 가족이 서 있었다. 멀리 있어도 긴 목 덕분에 금방 눈에 띈다. 코뿔소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워톡뿐이다.

기차는 가끔씩 코끼리 떼의 습격을 받아 몇 시간씩 연착되기도 한단다. 우리 처지에선 코끼리 떼나 사자 떼들의 습격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 기차를 사파리 열차라 부르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창밖으로 뜨거운 아프리카 대륙의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초원, 부족끼리 자리잡은 작은 마을, 양동이에 물을 길어 이고 여인들이 지나간다. 어린 꼬마들은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지나가지 않는 기차가 신기한지 연신 손을 흔들어댄다.

밤이 깊어 2층을 펴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가위바위보로 정한 나의 자리는 3층 꼭대기다. 제공받은 담요로는 밤 추위를 견디기에 부족할 것 같아 침낭을 꺼냈다.

다음날 오전 7시쯤, 객실로 들어와 커피주문을 받는 승무원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나를 제외한 5명은 쾡하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이미 1층에 앉아있었다. 기차가 밤새 덜컹거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고, 자리가 불편해서 허리가 아프다고 난리들이다. 알고 보니 그 소리와 충격은 열차가 고지대로 올라가는데 힘이 부쳐서 올라가다 미끄러져 객차끼리 부딪히는 일을 반복하는 거였다.

사실 나도 잠결에 부딪히는 소리를 약간 들은 것 같지만 역에서 열차가 객차를 교환하는 줄 알았다. 리듬에 맞춰 흔들거리는 것이 안마침대에 누워있는 것 같아 잘 잤다는 솔직한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들르는 역마다 물건을 파는 사람, 구걸하는 아이들이 몰려든다.
 들르는 역마다 물건을 파는 사람, 구걸하는 아이들이 몰려든다.
ⓒ 조수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다르에스살람에는 두 개의 기차역이 있다. 시내에 있는 중앙역은 수도인 도도마나 키고마, 음완자등으로 가는 노선을 운행한다. 타자라역은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6km에 있는데, 다르에스살람에서 뉴 카피리 음포시 방향은 화, 금요일에 출발한다.



태그:#아프리카, #타자라, #잠비아, #기차, #안전벨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