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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철 업계는 물론 세계철도업계의 철도사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한큐전철의 부대사업 진출 모습. 사진 왼쪽은 교토에 위치한 '한큐백화점 시조가와라마치점', 오른쪽은 오사카 우메다에 위치한 '신한큐호텔'
ⓒ 이준혁
부동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면서, 중앙일간지 경제 섹션에서 '역세권'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좀 쉽게 풀어 '역이 세력을 미치는 범위'라는 의미의 이 단어는 최근 들어 부동산의 가치를 따지는 데 있어 '성공의 보증수표' 마냥 강조되어 있다. 하긴, 상업시설이라면 일단 사람이 모여야 그 뒤로 장사가 더 잘 될 것이고, 주거시설이라면 역이 가까울 때 외부와의 이동이 보다 더 편리할 것이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역세권을 강조하는 부동산 관련 기사와 광고를 볼 때마다 '영종도의 신선한 공기를 서울로 수송하는', '세금 잡아먹는 하마' 등의 좋지 않은 수식어가 붙어 언론과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는 해방 후 최초 민영철도인 인천국제공항철도와 부채 규모가 조(兆) 단위에 이르고, 매년 수천억 원씩의 적자를 내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생각나 안타깝다.

특히 역세권의 잠재력을 먼저 깨닫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직영부대사업을 통하여 회사 전체적으로는 거액의 흑자를 내(비록 철도사업에서는 적자라 할지라도) 철도의 가치를 또 다른 측면으로 바라보게 한 민영철도(사철) 기업들이 있는 일본 게이한신[京阪神]일대를 보게 되면 더더욱 그렇다.

역세권 개발로 대기업 반열 오른 한큐그룹

게이한신 일대의 중심인 오사카. 그 오사카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지역은 '우메다'이다. 이곳은 메이지 시대 초에 철도가 개통된 이래 교토, 다카라츠카, 고베, 간사이공항, 나라 등 간사이권 대부분 지역에서 한 번에 철도가 닿는 대중교통요지이자 고층 빌딩이 많은 업무중심지역이다. 오사카 중심지로 발달한 이 지역은 현재 게이한신 일대를 대표하는 사철(私鐵)인 한큐전철 및 한큐전철로 시작한 한큐그룹(한큐한신홀딩스)의 기반이 확고한 지역이다.

한큐그룹은 철도회사로 출발해 백화점·호텔·패션몰·주택·관광지 등 부동산개발을 통해 일본에서 대기업의 반열에 오른 기업이다. 이 회사는 단순히 '지역(점)과 지역(점)을 연결 시켜주는 운송사업(선)' 역할만을 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밀집하는 지역의 경우 '철도를 통해 모이는 사람들을 이끌어 그 이윤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면)와 콘텐츠(공간)를 만들고 운영'하고,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지역의 경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면)와 콘텐츠(공간)을 만들고 운영하여 시너지 효과를 도출'하는 적극적 노력으로, 관(官)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쉽게 운임을 변동할 수 없는 준공공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중교통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했다.

특히 한큐전철에서 운영하는 교토 본선, 다카라츠카 본선, 고베 본선이 모두 모이는 한큐전철의 최중요지점이라 할 수 있는 우메다의 경우, 한큐그룹에서 만든 공간만을 통해서도 하루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여기에 작년에 한큐그룹과 합병한 한신전철 및 그 계열사의 공간(현 한큐백화점과 규모가 비슷한 '한신백화점', 전 객실에 온천 '도쿠지로노유'를 제공하여 인기가 높은 '한신호텔' 등)까지 합치면 효과는 더 높아진다. 구 한신전철 계열을 뺀 한큐그룹에서 직영하는 유통·관광·호텔 부대사업체의 예시를 관광객의 입장에서 만든 가상의 이야기로 살피면 다음과 같다.

한큐전철 타고 영화·레저·쇼핑에 숙박까지

▲ 한큐그룹에서 운영하는 다카라츠카 극장(왼쪽)과 다카라츠카 역. 다카라츠카 극단은 한큐전철의 창업자인 고바야시 이치조가 창단한 유명 뮤지컬극단이다. 현재 한큐 다카라츠카 역 내에는 한큐백화점 다카라츠카점(역사 지하 2층~지상 2층)이 입점중이며, 다카라츠카 시어터는 한큐 다카라츠카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독립된 거대 극장이다.
ⓒ 이준혁
'오전에 HepNavio 7~8층에 위치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당이 수십 개로 즐비한 한큐 3번가(한큐우메다역 내 지하 2층~지상 2층)에서 점심을 먹으며, 이른 오후에는 간사이권 유행을 선도하는 HepNavio와 HepFive(주: 'Hep'은 'Hankyu Entertainment Place'의 약자이다)에서 쇼핑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늦은 오후에는 오사카 최대 백화점인 한큐백화점과 로하스(LOHAS) 테마 백화점인 한큐잉스에서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반 이상의 식당에서 바깥풍경을 바라볼 수 있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 인기가 높은 한큐 32번가(한큐그랜드빌딩 27층~31층)에서 저녁을 먹으며, 야간에는 HepFive에 위치한 직경 70m, 최고높이 105m의 대관람차에서 오사카의 멋진 야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숙박은 신한큐호텔에서 한다.'


실제 위의 예시에서 나온 정도만 즐겨도 난바와 함께 오사카의 양대 중심부인 우메다에서, 관광객들은 볼거리를 구석구석 보고 가는 것이다. 우메다의 경우 이 이외에 가 볼만한 곳은 '하비스 플라자 엔트(Herbis Plaza Ent. 재즈로 유명한 '오사카 블루노트'와 뮤지컬로 유명한 '오사카 사계극장'이 있으며, 쇼핑·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복합단지)', '신우메다시티(높이 173m 위치의 '공중정원'과 옛 일본 골목을 형상화하여 구성한 식당가 '타카미코치' 등이 있는 복합단지), 그리고 JR오사카역과 앞 육교에서 볼 수 있는 '거리의 악사'와 다 합치면 1.8km 정도에 달하는 거대한 지하상가 정도이다.

이러한 한큐그룹의 성공은 주변의 비아냥과 사업상 위험을 무릅쓴 한큐그룹의 창업자 '고바야시 이치조'의 선견지명에서 시작된 것이다. 궤도사업법을 통해 한큐전철이 처음 허가를 받은 노선의 경우 세상 사람들이 '철도회사가 설립되면 아마 산속의 너구리나 논바닥에 서 있는 허수아비나 타고 다닐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던 지역이다. 한국의 코레일과 서울메트로 등은 물론 광주광역시도시철도공사나 공항철도보다도 열악한 경영환경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큐전철은 고바야시의 아이디어로 일본 최초의 주택론 도입 등이 활용된 철도 주변 택지개발, 다카라츠카극단 창설과 온천 개발 등의 관광지 개발, 한큐백화점 등 우메다의 유통사업 등으로 시너지효과를 내며 흑자경영과 동시에 일본 굴지의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한다.

▲ 한큐전철 외 타 사철업체의 유통·개발 부대사업 진출 모습. 위에서부터 산요전철의 백화점인 '히메지 산요백화점', 난카이전철이 개발·운영중인 MXD(Multi-use Mixed Development: 복합용도개발)인 '난바파크스(Nanba Parks)', 한신전철의 백화점인 '우메다 한신백화점'.
ⓒ 이준혁
'만년 적자' 한국 교통인프라기업의 미래는?

최근 나오는 민자사업 관련 용어로 설명하자면, 한큐전철은 BOO(Build-Own-Operate: '시공-소유-운영')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며, 인천국제공항철도와 현재 운영중인 민자고속도로(천안논산간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민자터널(국우터널, 문학터널 등) 등 교통인프라는 BOT(Built-Own-Transfer: '시공-소유-소유권이전') 방식이다. 더군다나 인천국제공항철도와 민자고속도로·민자터널 등은 당초 정부와 함께 설정했던 예상수익의 90% 이하일 경우,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는 한 정부의 재정지원까지 받는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옛 속담이 딱 들어맞는 경우이다.

일본에서도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의 재정지원이 들어가는 교통인프라기업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제3섹터'라 하여 은행으로 치면 불량자산을 따로 빼놓아 운영하는 배드뱅크와 같은 기업으로, 우리나라의 농어촌버스 수준의 경영환경이다. 즉, 만약 그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면 해당지역 주민들의 이동에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는 지역이지만, 누가 보아도 이익이 나기 어려운 지역을 오가는 버스나 철도의 경우에 애당초 제3섹터 방식을 취해 경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통인프라분야 공기업·사기업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코레일, 서울메트로,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 부산교통공단, 인천광역시지하철공사 등은 공기업(주: 코레일은 공사전환 이전에는 정부기관)으로서 그동안 온갖 제도적·법적·경영적 제약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공기업 혹은 정부기관이 민간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일부의 부정적 시선 또한 고려했을 것이다. 또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의 경우 육지에서는 영종도방향 입구와 영종도출발 차량들의 출구만 만들 수밖에 없던 제약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도 무서운 것은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때 다가오는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다.

▲ 게이한신 일대의 웬만한 대중교통수단이 모이는 우메다는 간사이 일대의 심장부이다. 한큐타운에서는 사진과 같은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간판은 한큐전철의 성공적인 경영을 상징적으로 함축한다.
ⓒ 이준혁
HepFive나 한큐잉스 등의 앞에 가면 세계 여러 인종들이 웃으며 있는 사진 옆에 'We Love Here'라고 적힌 대형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실제 게이한신 일대는 철도 주변에서 생필품부터 사치품까지 구입이 가능하고, 학생부터 비즈니스맨까지 모두 먹고 마시며, 게이한신 일대 사람들은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다 함께 즐긴다.

그리고 게이한신 일대 사람들은 한큐전철, 킨테츠, 한신전철, 난카이 등 철도기업을 자신의 부동산자산가치 상승의 파트너가 아닌 생활가치 상승의 파트너로 여기며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부채와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국민의 비난에 직면한 한국의 교통인프라기업이 본받아야 할 사례가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기자단 기사입니다. 본 기사의 자료수집은 인하대학교 '해외 학술문화탐방 지원(8월 10일~14일)'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태그:#한큐, #민영철도, #부대사업, #철도, #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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