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미국-멕시코 국경에 인접한 쇼핑몰.
ⓒ 하승창

얼마 전까지 뉴저지에서 같이 살던 지명이가 학교 문제로 샌디에이고로 이사를 갔다. 한 이틀정도 지명이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하고 샌디에이고로 갔다. 이전부터 지명이가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설치한 국경펜스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벼르던 참이었다. 박사과정 첫 학기가 시작되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윤주씨까지 함께 미국 멕시코 국경 근처의 쇼핑몰에 가보기로 했다.

샌디에이고에서 40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끝까지 내려가다 보면 'LAST USA EXIT'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이 나온다. 거길 넘어가면 이제 멕시코 땅으로 들어선다는 말이다. 여권을 손에 쥐고 온 것이 아니라서 당연히 우리는 그 마지막 출구로 나섰다. '거길 지나치면 도로상에서는 돌아 올 길이 없다'고 한다.

'LAST USA EXIT'...

▲ 마지막 출구.
ⓒ 하승창
표지판이 아주 상징적으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처럼 바다와 이어져 있거나 비무장지대가 있는 경우 '마지막 대한민국 출구', 이런 표현을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출구로 나가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맞닿아 있는 곳에 위치한 큰 쇼핑몰에 도착하게 된다. 멕시코에 인접해 있기 때문인지 가게의 외양도 왠지 멕시코풍 같아 보인다. 주차장에는 멕시코에서 쇼핑을 위해 국경을 넘어 온 차량들이 즐비하다. 거의 하나 건너 하나씩 멕시코 차량이다. 우리가 그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번호판의 숫자 배열이 두 나라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쇼핑몰에 들어서서도 영어를 듣기는 어려웠다. 매장 안에서나 거리에서나 멕시코인들이 사용하는 스페인어만 들릴 뿐 영어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쇼핑몰 뒤편으로 가보면 두 나라 사이에 서있는 기다란 장벽을 볼 수 있다. 불법적으로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세워진 국경펜스다. 펜스 너머에서 커다란 멕시코 국기가 펄럭이며 그 곳이 멕시코 땅임을 말해주고 있다.

미국의 정가는 지금 여름 휴회를 마치자마자 이민법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이민법 개혁을 위한 법안들이 제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진척을 보일 가능성이 없다. 아무리 개혁적인 이민법안이라고 해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국경펜스가 설치될 공산이 큰 것이다.

국경펜스로 미국의 국가안보 지키겠다고?

▲ 멀리 국경펜스가 보인다.
ⓒ 하승창

이 펜스는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관련되어 있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을 넘어 온 후 ‘불법체류자’들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촘스키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 내 테러는 미국의 패권적인 대외정책에 기인한 것이지 관리가 안되는 국경탓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보면 국경펜스 설치 논의의 실제적 효과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 사람들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주는 공간이 이 쇼핑몰이다. 이 쇼핑몰에 와 있는 멕시코 사람들은 쇼핑을 위한 허가를 받고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다. 즉 미국이 자신들의 상품을 사 가려는 멕시코 사람들의 입국을 허용한 것인데 이들이 마음먹고 불법체류 하기 위해 여기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샌디에이고로 LA로 가면 막기는 어려운 일이다.

돈은 돈대로 들여서 국경펜스를 만들고 헬리콥터 띄우고, 총 들고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을 벌기 위해 손쉽게 입국을 허가함으로서 불법체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열어주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국경에 펜스를 치는 것도 그래서 실상 알고 보면 국가안보와는 관련 없는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다. 실제로 테러리스트를 막으려면 멕시코 국경보다 미국으로 입국해 들어오는 사람들을 전부 검사해야 할 지 모른다.

왜냐하면 미국내 불법체류자의 신분인 사람 대부분이 처음 입국할 때는 합법적으로 왔기 때문이고, 테러리스트가 굳이 불법체류 신분으로 불안하게 있을 이유는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결국 늘어나는 라티노 인구에 대한 일종의 견제 아니냐는 해석도 해 볼 수 있는 셈이다.

돈 들여 국경펜스를 치겠지만...미국의 장사 속은 막지 못해

▲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입간판.
ⓒ 하승창
이렇게 돈 들여 국경에 펜스를 치고, 또 앞으로 논의되는 모든 이민법에서 국경 전체에 펜스를 친다는 것에는 다들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이 쇼핑몰처럼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통로가 미국의 시장의 요구로 열려 있는 것은 불법체류자 문제의 본질이 국경에 대한 물리적 통제에 놓여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쇼핑몰을 돌아나가는 데 첫 표지판에 ‘이 곳으로 가면 미국으로 오지 못한다’는 표식이 보인다. 마치 멕시코로 향하는 것은 무언가 어려운 곳으로 가는 것이고 미국으로 가는 것은 구원의 손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 실상 많은 멕시코인들이 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나프타로 멕시코 경제가 미국경제와 통합된 이후, 경제적 전망이 너무 분명한 미국 땅을 눈앞에 두고 멕시코에 남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고속도로 표지판. 이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아무리 높은 국경펜스가 쳐진다 해도 그 펜스를 넘어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는 멕시코 사람들의 비관적 처지를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오랑캐가 중원을 넘보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이 만리장성을 세웠던 것처럼 백인 인구를 소수로 만들고 다른 인종을 다수로 만들어 버릴 핵폭탄이 될 수도 있는 라티노들을 막기 위해 미 대륙을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펜스가 세워질 것인지 궁금하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