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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별 2005년 군비지출 총액(단위 : 미화 10억 달러).
ⓒ 데니스 하트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의 첫 편지를 읽어주시고 격려쪽지나 답글을 써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편지에서는 제국으로서 미국이 초군국화(hypermilitarized)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아마도 가장 군국화한 제국일 것입니다. 미국의 군국주의는 어마어마한 양의 공격무기 비축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인의 일상생활과 문화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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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료·주택·빈민보조금 예산의 3.7배나 되는 군비

미국 정부의 2007년 군비(국방비) 예산은 미화 6250억 달러에 달합니다. 한화로 하면 무려 590조원에 해당합니다. 1분에 무려 11억여원씩 계속 지출한다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이 지금 이 기사를 읽으시는 동안만 해도(5분 안에 빨리 읽는다는 가정 아래) 미국 정부는 56억원 어치의 군비를 지출했습니다.

국가 경제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지나치게 비대한 군대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은 초군국화의 한 단면입니다. 제국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이로 인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우선 군대를 키우는 데 힘을 쏟다보니 정부의 여타 정책과 기능은 덜 중요해집니다. 군비로 1년에 6250억 달러를 들인 미국 정부는 같은 기간 동안 교육 분야에는 700억 달러, 여타 공공부문(예를 들어 의료, 주택, 빈민보조금 등)에는 980억 달러를 배정했습니다.

교육 현장만 봐도 교과서, 교사수당, 학교 건물 보수 등에 필요한 예산이 부족해 갈수록 공교육이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필요한 예산을 주로 지방자치정부가 거두는 재산세에서 충당합니다. 결국 부자 동네는 학교도 좋고, 가난한 동네는 여러모로 열악한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사는 클리블랜드에서는 매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수학능력시험에서 낙제합니다. 클리블랜드의 학교 건물 중 20%는 노후한 정도가 워낙 심해서 보수가 불가능하며 철거해야 할 상태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스며드는 군사문화에 젖어든 미국인... 전쟁 코스프레도 인기

한편 제국의 시민들은 군국주의적인 시각으로 미국과 세계와 일상생활을 보도록 훈련되고 있습니다. 물론 군국주의적 시각을 견지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군대에 지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중의 초군국화는 알게 모르게 군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이 조금씩 몸에 배며 일상생활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군대적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지며, 폭력과 흉악한 무기에 감각이 무디어지고, 군인과 영웅을 동일시하고, 군대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우리 학교 학생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전투복 바지나 상의를 입고 다니는 것이 이상할 게 없을 뿐 아니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살인, 죽음, 부상 같은 실제 전투의 끔찍한 현실과는 완전히 단절된 하나의 패션이 되어 있습니다.

험비(Humvee)나 지프차를 타고 쇼핑하러 가는 사람들도 비슷하게 희한하지요. 이런 전투차량은 침략이나 공격무기가 아니라 "지대 멋있고", "민간에서 구입할 수 있는 차량 중 비포장도로에서 가장 기능적인" 차라고 광고에 나옵니다. 민간인인 당신도, 편리하게도 전투 현장에서 총 맞을 걱정도 없이 군인들처럼 엄청 남성미 넘치는 차를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험비는 원래 미 육군용 차량으로 개발되었지만 백인 남자들 사이에서 개인용 차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참고로 험비의 연비는 갤런당 11마일, 리터당 4.7킬로미터밖에 안 나온다고 합니다.)

▲ 험비.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스포츠도 일상생활의 초군국화를 보여주는 한 면입니다. 스포츠 언어를 보면 군대용어가 많이 섞여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 스포츠면이나 방송 해설을 보면, 축구든 농구든 스포츠 경기는 흔히 전투에 비유되며, 운동선수는 '전사'로 불리고, 어떤 팀이 다른 팀을 '제압'했다거나 '파괴'했다는 표현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21일 보스턴 레드삭스 관련 블로그를 보니, "레드삭스가 탬파베이에 진격하다"라고 쓰여 있더군요. 막대한 월급을 받는 근육질 남자들이 기껏 몇 시간 동안 공 던지고 치는 운동경기를 처참한 파괴가 따르는 전투로 비유하는 스포츠면과 방송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군대와 폭력의 언어에 결국 무디어집니다.

의식의 군국화는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집만 해도 저와 형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각기 장난감 총과 군인 인형, 탱크, 대포, 폭격기, 전투함 등을 꼭 한두 개씩 받았습니다. '서부개척시대'의 장총을 선물 받아 원주민을 쏘아 죽이는 흉내를 내며 놀기도 했고, 산탄총으로 미국의 적을 제압하는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물론 장난감 가게에 가면 아주 사실적으로 만든 장난감 무기들이 한가득 쌓여있습니다.

전쟁을 놀이로 생각하는 것은 어린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수십만 명의 미국인들이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 장비와 의상을 구입해서 역사적인 전투를 재연하는 일종의 전쟁 코스프레를 취미로 삼고 있습니다. 오하이오에서는 남북전쟁 재연이 특히 큰 인기입니다. 다음 달에도 어느 소도시에 수천 명이 모여 이틀에 걸쳐 전투를 재연한다고 합니다.

150년 전의 전투복을 본떠 만든 의상을 걸치고 군인처럼 행군하고 장총과 대포를 쏘아대는 이런 행사는 군대를 미화하고 취미활동이란 미명 아래 민간인을 군인화하는 효과를 냅니다.

초군국화한 문화에서 자란 미국 시민 중 일부는 군인이 되어 바그다드에, 팔루자에, 아부 그라이브에, 또는 서울의 미8군에 배치됩니다. 이들 중 일부가 현지인들의 죽음과 고통에 무감각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장난감 무기와 컴퓨터 게임과 폭력적인 만화 등에 노출되면서 군대와 폭력이 정상적인 삶의 일부로 각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을 절대 선으로 보는 인종차별적인 사고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남북전쟁 재연 행사.
ⓒ 위키피디아 공공자료실

공포는 미국 문화의 본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미국이 이렇게 막대한 군비를 지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가장 흔히 나오는 대답이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우방을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인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의 대중 심리에서 공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만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항상 공포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건 미국인뿐입니다. 공포는 초군국화의 핑계이자 결과입니다.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부단히 경계하지 않으면 외국군이 미국을 침략할 것이라는, 심지어는 자기 동네와 집도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럴 듯한 테러 목표물 비슷한 것도 없는 시골에 사는 학생들도 '테러리스트'들이 언제 자기네 동네를 공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과 아주 가까운 영어권 우방이 아니면 외국에 나가는 것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중국에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둘째 형이 하는 말이 "중국 정부가 너나 학생들을 잡아가면 어떡할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중국 정부가 뭣 땜에 날 잡아가겠어?"라고 물어보니 "글쎄, 네가 아는 게 많으니까 써먹으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습니다.

학생들을 한국의 여름학교에 보낼 때도 마찬가지로 걱정하는 부모들이 꼭 있습니다. 한국에 수돗물이 나오는지, 전기가 들어오는지, 너무 더럽지는 않은지, 풍토병은 없는지 물어보는가 하면, "한국은 안전한가요? 전쟁이 나면 어떡하죠? 북한군이 애들 납치해가지는 않겠죠?"라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어디서부터 답변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서울은 클리블랜드나 뉴욕이나 보스턴이나 시카고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하면 제 말을 믿지 못합니다.

공포 부추기는 지배층... 결과는 '약소국을 두려워하는 초강대국'

이런 공포의 만연은 우연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전쟁도발과 공격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의 반대여론과 저항을 미국 정부에서 원천 봉쇄하는 데 공포만큼 좋은 도구는 없습니다. 공포를 느낄 때 미국 국민들은 역사적으로 예외 없이 자기네 정부를 적극 지지합니다.

단적인 증거로, 9·11 직전 부시의 지지율은 52%였는데 직후에는 88%로 치솟았습니다. 부시는 공포 유발을 지속적인 책략으로 써먹었는데, 적들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를 부추기는 연설을 자주 했습니다. 한번은 "오늘날 우리는 더욱 더 큰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자유를 미워할 뿐만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미워하고 죽음을 숭배합니다"라고까지 주장했습니다.

즉 세계에는 미국인의 존재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과는 이성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 전쟁으로 이들을 박멸하는 것 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는 뜻입니다.

▲ 국민 위험 정도 경고 차트.
ⓒ 미국 국토안전부
부시 정권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공포 유발 장치는 국민 위험 정도 경고 차트(national threat advisory)라는 색깔로 표시한 단계입니다.

미국인들의 공포는 거의 반사적인 반응으로서 이성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나라들은 대체로 약소국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올해 초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최대의 위협이 되는 나라"로 이란, 이라크, 북한이 꼽혔습니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야만 존속할 수 있는 군수산업, 석유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과 유착되어 있는 미국의 정·재계 지배층은 대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한편으로는 군국화를 주도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공포의 정서를 부추겨왔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이 과정에서 교육과 미디어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태그:#미국, #초군국화, #공포 문화, #전쟁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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