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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여전히 잡초 그리고 병해충과의 싸움이다. 옛날에는 특히 그랬다. 피사리와 김매기는 농민들을 골병들게 했고 병해충의 기습으로 농민들은 절망하기 일쑤였다. 병해충이 돌면 나라님이나 고을 수령이 포제(酺祭)를 올려 하늘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농약이 있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제초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대다수의 농민들이 기우제는 알아도 포제가 뭔지는 모른다. 농약은 분명히 위험(risk) 뿐만 아니라 편익(benefit)이 있다.

위험과 편익, 모든 문명의 이기는 두 측면이 끊임없이 저울질되면서 위험을 줄이고 편익을 극대화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시민사회는 위험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기업은 편익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unacceptable risk)'의 기준, 즉 타협지점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고 이에 따라 담담히 법을 집행하면 된다. 잔류허용기준이나 노출기준 등이 그러한 예이다.

농약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농촌진흥청

▲ <농약! 과연 안전한가?> 29페이지 삽화, 아스피린이 농약보다 독성이 더 높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 농촌진흥청
그런데 근래 나는 관계 당국이 마치 기업처럼 '편익'을 불합리하게 옹호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농약등록업무를 맡고 있는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에서 5월 출간한 <농약! 과연 안전한가?>에는 농약의 안전성을 무리하게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과거 농약공업협회에서 발행한 책자의 내용과도 많은 부분 흡사하다. 이 기관은 농약등록업무 뿐만 아니라 유기농 분야를 연구하는 최고의 국가연구기관이기도한데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불합리한 내용이란 <농약! 과연 안전한가?>의 p 29~30 사이의 농약의 독성에 관한 부분이다. 내용을 보면 농약이 마치 아스피린 보다 덜 해로운 것처럼 표현하였고 발암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단적으로 기술하였다. 모두 사실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농약과 의약품 등과의 급성 독성치를 비교할 때 감기약보다도 독성이 낮은 농약이 83%나 됩니다."(p29, <농약! 과연 안전한가?>)

"사회적 이미지 때문에 믿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농약이 암의 원인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근거의 하나는 농약이 되는 후보화합물에 대하여 쥐, 마우스, 개 등의 실험동물을 이용하여 그 농약을 투여한 경우 암의 발생 여부를 조사하는 엄밀한 시험(발암성 시험)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암의 징후가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화합물은 농약의 후보에서 탈락되어 농약으로 등록될 수 없습니다."(p30, <농약! 과연 안전한가?>)


삽화는 아스피린이 농약보다 더 독성이 높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자료에서는 급성독성이라는 전제를 분명히 하고는 있지만 일반인이 볼 때 농약이 감기약보다 독성이 더 낮은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급성독성은 어떤 화학물질이 갖는 독성의 한 면모일 뿐이다. 급성독성은 수 시간에서 수 일 이내에 나타나는 독성을 말하고 만성독성이란 암이나 신경계, 면역계 등에 대한 만성적 건강영향과 같이 오랜 시간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영향을 말한다. 어떤 물질의 독성을 말할 때는 이 모두를 같이 언급해야 한다.

아스피린은 사용된 지 수십 년이 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동안 아스피린을 복용해왔다. 아스피린이 약으로 등록될 당시의 독성평가에 덧붙여 아스피린을 복용한 사람들에 대한 수많은 만성건강영향 평가 연구, 즉 역학조사가 진행되었다. 소화기관 궤양이나 과민반응 등 부작용은 이런 역학적 연구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 아스피린은 암이나 기타 심각한 만성질환을 일으키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에 비해 농약은 장기적으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일으킬 것인가에 대한 역학적 정보는 극히 적다. 그러므로 아직 "농약은 암의 원인이 아니다"라고 결코 단언할 수 없다. 등록과정에서 시행하는 발암성시험 등 만성독성평가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이며 아무리 안전계수를 두어 기준을 제정한다고 하여도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농약은 암의 원인이 아니다?

▲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이 올해 5월 발행한 <농약! 과연 안전한가?>
ⓒ 농촌진흥청
미국에서도 농약의 인간발암성 등 만성건강영향에 관한 역학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겨우 10년 정도가 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90년대부터 농업이 성한 몇 개 주를 대상으로 거대한 역학조사 농업보건연구(Agricultural Health Study)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는 농약과 관련된 농민과 농약살포사(pesticide applicator) 및 그 가족들에 대한 암 발생을 비롯한 만성건강영향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서야 역학조사 결과가 하나씩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역학조사 결과가 누적되어야만 인간발암성에 대하여 비로소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퍼들이면서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인데 어떻게 이 사실을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 이는 근거가 부족한 단언이며 연구를 업으로 하는 기관의 자세가 아니다.

유해물질을 뜻하는 'hazard'라는 말은 주사위를 뜻하는 아랍어 'al zar'에서 유래하였다. 유해하다는 것은 어디로 가야할지 주사위를 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인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유해물질과 관련하여 관계당국은 당면한 불확실성의 상황에서 위험과 편익을 모두 고려한 합리적인 조정을 유도하고 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편익을 홍보하고 불확실성을 감추는 일은 농약공업협회 등 관련 기업의 몫으로 놓아두는 것이 어떨까?


태그:#농약, #독성, #발암성, #불확실성, #밥상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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