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그렇게 외면하다 끝내 죽여버려라

사는이야기

동강, 그렇게 외면하다 끝내 죽여버려라

어릴 적 놀던 강변 물은 이미 썩었고 악취만 풀풀...

07.06.29 12:16l최종 업데이트 07.06.29 12:16l

강기희(gihi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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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썩은 물을 방류하는 도암댐. 해체되어야 마땅하다.

도시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벌써 4년 째를 맞았다. 고향에서 산 기간보다 떠돌아 다니며 산 세월이 더 길었다. 그나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아직도 고향을 바라보며 수구초심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애초 시골 행을 결심할 땐 마음 편한 곳에 작업실 하나 만들어 놓고 평소 쓰고 싶은 소설이나 원없이 써보겠다는 거였다. 그러나 그 작심은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과 같았다. 세상 일에 관심많은 버릇을 시골에 온 후로도 버리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고무신 기차 타고 맘껏 여행하던 강변은 어디로

그러한 탓에 시작만 해놓고 마무리 못한 작품이 몇 개나 되었다. 완성되지 못한 소설은 철저히 외면했다. 컴퓨터 안에서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눈부터 질끈 감았다.

고향 땅인 강원도 정선은 예로부터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었다. 높고 깊은 산은 많은 골짜기를 만들었고, 골짜기는 맑은 물을 끊임없이 흐르게 했다. 물길을 따라 골짜기로 찾아든 사람들은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화전민들의 삶은 곤궁했지만 행복했다.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삶이 그러했다.

정선 사람들을 지켜낸 힘은 정선아라리이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선아라리는 정선 사람들이 만들어 낸 소리다. 산촌에서의 힘겨운 삶을 견뎌낸 것도 정선아라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리랑의 시원이라 평가 받는 정선아라리는 전해지는 가사도 많다. 가사만 봐도 고단한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확인된다.

정선의 또 다른 별칭은 무릉도원이다. 무릉도원인 정선 땅에서 조용히 소설만 쓸 수 없게 만든 것은 동강이었다. 오래 전 정선을 휘감아 도는 강의 이름은 동강(桐江)이었다. 조양강이라는 낯선 이름이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오동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여진 동강이나 햇살이 곱게 퍼지는 조양강이나 물이 심각하게 오염되면서 그 이름값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릴 적 강은 놀이터였다. 아이들은 수업을 마치면 강으로 먼저 나갔다. 흘린 땀을 씻기 위해 뛰어 들었던 곳도 강물이었고, 밤 목욕을 나간 곳도 동강이었다. 그 시절의 강물은 헤엄을 치다 물을 먹는다 해도 억울할 일 하나도 없었다. 큰 맘 먹고 산 유리어항을 들고 천렵을 나갔던 곳도 마을과 마을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었다.

그 시절 물고기를 유인하는 미끼는 송장 꼬내기였다. 송장 꼬내기는 명주잠자리 애벌레로 모든 물고기가 좋아하는 미끼였다. 송장 꼬내기는 돌 밑바닥에 서식하는 수서곤충으로 수중 생태계의 바로미터와 다름 없었다. 당시만 해도 작은 돌 하나만 들춰내도 송장 꼬내기가 서너 마리는 너끈히 달려나왔다.

꼬내기를 잡아 어항 입구에 짓이겨 놓고는 고운 모래가 펼쳐진 백사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경험상 30분 정도면 어항이 가득찰 정도로 물고기가 들었기에 그 시간까지 모래사장을 뒹굴며 놀았다. 몸을 이리저리 굴리며 놀다가 그래도 심심하면 고무신의 뒤축을 뒤집어 기차놀이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기차놀이였지만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차놀이를 했다. 우리는 낡은 고무신 기차를 타고 서울로도 가고 평양으로도 갔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고무신 기차는 그 시절 더 큰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 도암댐이 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었다.

세월이 훌쩍 흘러 모래사장을 뛰놀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그 시절의 아이들은 더 이상 강변을 찾지 않는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제 자식을 강변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모두가 강을 외면하는 사이 동강은 죽어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물빛이었던 강은 싯누렇게 변했다. 악취도 풍겼다. 하수구 물이라 해도 믿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정선의 동강은 여름철이 되어도 누구 하나 발을 담그지 않았다.

모두가 외면하는 사이 강은 죽어가고

그러한 어느 여름 날 어릴적 놀던 강변으로 가보았다. 강변으로 가자 누렇게 말라붙은 뻘이 개울 바닥을 흉하게 만들어 놓았다. 두텁게 엉긴 뻘은 서해의 갯벌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갯벌은 살아 있는 생명의 땅.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까지 함유되어 있는 정선의 강바닥에 깔린 뻘은 죽음의 뻘이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강은 죽어 있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강이 죽어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썩은 강물은 맨발로 들어가기도 싫을 정도. 신발을 신은 채 바지 가랑이만 걷어 올리고 강으로 들어가 보았다. 종아리에 뭔가가 들러 붙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몸이 오싹해졌다.

강바닥은 미끄러웠다. 맑은 청대가 끼던 예전과 달리 석면가루같은 부유물질이 둥둥 떠다녔다. 돌 하나를 뒤집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또 하나를 뒤집었다. 그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장소를 옮겨 여울로 갔다. 여울에 있는 돌에도 생명체는 없었다.

예전 그러니까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것같은 시절엔 돌 하나를 뒤집으면 송장 꼬내기가 몇 마리나 살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단 송장 꼬내기 말고 납작 꼬내기와 물도래 등의 수서곤충들이 돌에 기생하며 살고 있었지만 이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꿈틀거림이 느껴지지 않는 강바닥은 폐사지와 같았다. 물 속 생명체들이 살지 못하는 동강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인 나뿐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아니 슬펐다. 죽음의 강이 되어버린 곳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 같아 미안했다. 나는 장소를 옮겨가며 강바닥을 확인했다. 어디서도 살아 있는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여울을 거슬러 올라가던 쉬리나 갈겨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돌을 뒤집어보지만 그 흔한 퉁가리 한 마리 없었다. 강을 거느리던 그 숱한 꺽지는 터를 버리고 어디로 간 걸까.

강바닥을 손으로 훑으니 오염 덩어리들이 떠올랐다. 강물은 금세 시궁창으로 변했다.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그 맑던 강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사람들이 강을 외면하는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정선의 강을 죽인 것은 도암댐. 도암댐은 평창군 도암면 송천계곡에 세워진 인공댐이다. 도암댐은 서슬퍼렇던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계획되었고, 1985년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시절만 해도 정선 지역 사람들은 송천계곡에 댐이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다.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막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아름답던 송천계곡을 막아 생긴 호수에 미군들 전용 놀이터를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맑은 물에 보트를 띄워 미군들을 놀게 하겠다는 발상이라는데, 들리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한강 최상류의 물이 이렇게 썩었다.

도암댐은 작은 댐이다. 담수능력 5천만톤의 도암댐은 전력예비댐으로 만들어졌다. 억지로 붙여진 명목이 그러하다. 전력 생산은 한 달에 서너 차례. 1년에 전기를 팔아 번 돈이 10억 남짓이다. 댐을 짓는 데 들어간 비용에다 발전소와 댐 관련 유지비를 생각하면 적자 투성이인 댐이 도암댐이다.

정부는 깨진 독인 도암댐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991년부터 전력을 생산하던 도암댐은 2001년 오염된 물을 방류하는 죄로 전력생산이 중단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도암댐은 용도폐기된 채 방치되고 있다.

국민의 강 죽이는 정부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방치된 도암댐은 썩은 물을 방류하는 일로 건재를 확인시킨다. 방류된 물은 아우라지를 거쳐 동강으로 간다. 동강물은 다시 영월과 단양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든다.

그런 도암댐을 정부는 어찌하든 살려보려 애쓴다. 반신불수에 불과한 도암댐을 정부와 일부 지자체는 홍수조절용으로 전환하려고 있다. 홍수조절이란 명목도 일부 지자체의 요구에 의해 마지못해 결정했다. 정선지역 주민들은 도암댐 해체를 원한다. 쓸모없는 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속내는 홍수조절용이 아니라 전력생산으로의 전환이다.

지역의 정서와는 전혀 다른 정부의 생각. 한강의 본류를 죽이는 일을 정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잘도 한다. 동강은 환경부에 의해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동강을 보호하겠다는 환경부의 의지와 동강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산자부의 의지가 자못 희극적이다.

환경부는 동강의 생태계 따윈 상관 없는지 동강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다. 환경부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동강 감시원 일당 주는 일과 동강변의 땅을 매입하는 일이 고작이다. 한 술 더 떠 환경부장관은 동강을 국민의 강이라 했다. 그럼에도 살릴 생각은 없다. 대책 없는 정부의 엇박자가 동강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물 속에 잠시 있었을 뿐인데 악취로 머리가 멍하다. 어릴 적 맡던 청량한 물 냄새는 강바닥에 깔린 뻘이 잠식해 버렸다. 돌을 감싸고 있는 뻘을 손으로 문지르자 진흙 반죽 같은 게 흘러내렸다. 뻘이 물에 녹아드는 순간 주변은 뿌옇게 흐려졌다.

죽음의 강에서 산란도 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갈겨니 한 마리를 만났다. 갈겨니는 물살에 떠밀려 천천히 떠내려 갔다. 갈겨니는 스스로 제 지느러미를 움직이지 못했다. 손으로 살짝 뜨니 갈겨니는 힘없이 손바닥에 올라 앉았다. 아가미를 쩍쩍 벌리는 일도 힘겨워 하는 갈겨니. 바라보기 안쓰럽지만 살릴 방법도 없었다.

갈겨니를 다시 물에 풀어주었다. 잠시 정신이 들었던 듯 갈겨니는 꼬리를 힘겹게 흔들었다. 그러나 갈겨니는 얼마 가지 못해 결국 흰 배를 드러냈다.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두 눈 뻔히 뜨고 죽어가는 갈겨니를 바라만 봐야 했다. 참담했다.

▲ 도암댐과 호수에 갇혀 썩은 물.

어린 시절 어른들은 가끔 '싸이나'라고 하는 약을 강에 풀었다. 약을 풀면 강물은 희뿌옇게 변했다. 약물이 지나간 자리엔 어김없이 물고기들은 곧 흰 배를 드러내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어른들은 죽은 물고기를 주섬주섬 챙겨 비료포대에 담았다. 물고기가 죽어간 거리만도 10리가 넘었다.

기다리자, 조금만 더 외면하면 동강은 확실하게 죽는다

어른들은 힘없이 개울 바닥을 기는 뱀장어와 메기도 잡아냈다. 어떤 뱀장어는 축 늘어져 꿈틀거리지도 못했다. 어른들은 그것들을 챙겨 어디론가 떠났다. 어른들이 돌아가면 그때에야 강은 아이들 차지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남기고 간 죽은 물고기들을 건져 집으로 돌아갔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물고기는 요긴한 먹을 거리였다. 아이들이 건져온 물고기가 약물을 먹고 죽었지만 그것이 인체에 위험하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것을 먹다 죽는다 해도 우선은 배불리 먹는 일이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가져온 물고기를 정성스럽게 요리하여 가족에게 먹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약물을 품은 물고기를 먹고 죽음에 이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먹을 것이 떨어지면 어른들이 다시 약물을 풀기만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어른들은 약만 푸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전기를 이용해 지지기도 했다. 자전거에 달린 라이트 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물에 넣으면 물고기들이 둥둥 떠올랐다. 어른들은 그것들을 재빨리 수거하고는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시절 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그렇게 수난을 당했다.

세월이 훌쩍 흐른 요즘 동강의 물고기들은 더 큰 시련을 맞고 있다. 각종 공사로 인해 서식지까지 잃어버린 물고기들은 갈 곳을 찾지 못했다. 1년 내내 방류되는 도암댐의 오염된 물은 물고기들을 연중 괴롭혔다.

물고기들은 혼인색으로 무장했지만 산란터를 만들지 못했다. 어쩌다 산란을 한다 해도 산소가 부족한 데다 햇빛마저 들어오지 않으니 부화가 어렵다. 설령 부화를 한다 해도 치어들이 먹을 것이 없다. 동강의 현실이 이처럼 비참하다.

동강은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게 보인다. 하지만 산그림자 어른 거리는 수면 위와 달리 물 속에선 죽음의 행렬이 이어진다. 인간이 내린 재앙에 물고기들은 속수무책이다. 동강에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나면 인간이라고 자유로울까.

어릴 적 놀던 강변은 이제 백로조차 발을 담그지 않는다. 그런 곳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인간은 대체 누구인가. 어서 발을 빼고 동강을 외면해 버리자. 그리고 다시는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자. 그렇게 외면해 버리면 '국민의 강'이라는 동강이 확실하게 죽어버리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