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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현실화를 외치는 노동자들.
ⓒ 이지섭
2008년 적용될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6일 서울세관 별관에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제6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전년대비 8.3%가 오른 시급 3770원(2007년 최저임금은 시급 3480원)으로 결정했다. 이날 오후 3시50분에 시작된 회의는 다음날 새벽 1시52분이 돼서야 끝났다. 무려 10시간이 걸린 지난한 협상이었다.

지난 22일 있었던 제5차 전원회의에서는 제6차 전원회의 시작과 동시에 공익위원들이 조정안을 내기로 했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 전부터 공익위원들의 안이 결정되지 못하면서 3시에 시작되기로 했던 회의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3시50분에 시작됐다. 그리고 예정된 시각을 훨씬 넘겨 회의를 시작했음에도 공익위원들은 조정안을 내지 않았다. 최종태 위원장은 오후 4시15분 정회를 선언하고 4시30분까지 양측이 수정안을 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고용불안 야기 vs 임금격차 해소

▲ 협상이 벌어지던 서울세관 밖에서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현실화 요구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최저임금 현실이 목에 씌워진 칼과 같다는 뜻으로 칼을 쓰고 있는 노동자들.
ⓒ 이지섭
오후 5시3분에 속개된 회의에서 노사 양측은 치열한 기싸움을 펼쳤다. 이날 있었던 논리싸움은 첫 회의에서 모두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측은 먼저 전년대비 4%가 인상된 시급 3,620원을 수정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한 사측의 첫 수정안인 전년대비 2.4% 인상, 시급 3565원에 비해 1.4%를 인상한 것으로 주40시간 기준 월급 74만5085원에 해당한다. 같은 기준으로 현재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한 72만7320원보다 1만7800원 가량 오른 금액이다.

한상원 사용자위원은 이 수정안에 대한 근거로 29세 이하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상승률을 제시했다. 이 실태생계비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매년 최저임금 심의 이전에 참고자료 차원에서 전국 29세 이하 미혼 단신근로자 3,000명의 실제 생계비를 조사한 결과로, 최저임금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단신근로자 생계비는 작년 113만5234원에서 올해 117만6695원으로 약 3.52% 올랐다. 그는 "우리의 요구는 경영과 고용이 같이 유지되는 수준"이라며 "경영유지에 문제가 생긴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최저임금 상승이 고용불안을 야기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노측은 전년대비 19.5%가 인상된 시급 4160원을 요구했다. 지난 제5차 전원회의에서 요구했던 전년대비 21% 인상, 시급 4210원에서 1.5%를 낮춘 것이다. 김태현 근로자위원은 이 수정안에 대해 "공익위원이 납득 가능하고 노사합의가 가능한 수준으로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사측 수정안이 노동연구원이 제시한 올해 적정 임금인상률인 5.7%에도 못 미치는 점을 지적하며 "올해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5.7%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인데 최저임금을 똑같이 5.7% 인상하면 임금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유지조차도 되지 않고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작년 최저임금 심의에서 공익위원들은 공익위원안을 제시하면서 향후 3~5년간 중위임금(노동자들의 급여를 최하위에서 최상위까지 쭉 나열했을 때 한 가운데 위치하는 임금)의 50% 수준까지 상승시키는 계획을 근거로 제시한 바 있고 작년 최저임금은 결국 이 기준에 따라 결정된 바 있다. 김태현 위원은 현재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45.2% 수준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부터 단계적으로 일정 수준 최저임금을 인상하지 않는다면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할 시기인 3년 뒤쯤에 사용자들은 급격한 임금상승에 따른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용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도 사측의 수정안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공익위원들의 이 목표는 주 40시간 사업장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즉 주 40시간 근로시간이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주 44시간 사업장이 주 40시간으로 바뀔 때에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만큼의 월급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위임금 50%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손실된 월급만큼의 임금보전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게 된다. 사용자의 부담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김태현 위원의 주장은 나중에 닥칠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서서히 합리적인 수준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 최저임금은 마이너스가 없냐" vs "최임위 역할은 자본주의 폐해 보완"

▲ 전원회의가 끝난 후 근로자위원들이 회의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 이지섭
이에 대해 김정태 사용자위원은 "최근 4~5년간 두 자릿수 인상에 따라 임금격차는 많이 완화됐다. 임금격차의 문제는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박종남 사용자위원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이지만 근로복지성격도 있다. 왜 기업에게만 일방적으로 부담을 전가하는가?"고 물었다. 그는 공익위원들도 노측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고 주장하며 "공익위원들도 균형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기업을 한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하겠는가. 사용자들은 '왜 최저임금은 마이너스가 없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용식 근로자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보완하는 것"이라며 "OECD 사회복지 꼴찌, 양극화 지수 꼴찌에서 3번째인 현실에서, 노동자의 삶 자체가 바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단신가구 생계비의 60%, 3인가구 생계비의 25%밖에 안 되는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최저임금위원회의 역할이다"고 맞섰다. 또한 "국민의 80%가 노동계 요구 이상의 수준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위원회가 말만이 아니라 국민적 통합과 복합적 관계를 고려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간 끝에, 최종태 위원장은 오후 6시에 정회를 선포하고 저녁 식사 후 7시에 다시 회의를 속개하겠다며 그 때 공익위원안을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 속개는 또 다시 늦어졌다. 공익위원안의 확정을 놓고 공익위원들의 논의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공익위원들은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 채 공익위원안에서 제시할 최저임금의 범위를 놓고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위원안 제시... 적정 임금인상률보다도 낮은 하한선

오후 8시10분경 속개된 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은 5.3%~11.2%의 공익위원안을 내놓았다. 정인수 공익위원은 제안 설명에서 하한선인 5.3%는 '경제성장률 4.4%+물가상승률 2.6% - 취업자증가율 1.3%'를 근거로 산출된 적정 임금상승률 5.7%에서 대화의 촉진을 위해 0.4%를 뺀 것이며, 상한선인 11.2%는 '적정 임금상승률 5.7%+소비자물가 대비 실태생계비 초과상승률(실태생계비 상승률인 4%에서 물가상승률 2.6%를 뺀 것) 1.4%+임금격차 개선분(작년에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중위임금 50% 목표가 3년 뒤에 달성되도록 하기 위한 상승분) 3.7%'를 근거로 계산된 10.8%에서 대화 촉진을 위해 0.4%를 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공익위원안의 하한선은 문제가 컸다. 적정 임금상승률과 같은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조차 임금격차 해소에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공익위원들이 오히려 그보다 낮은 수준의 하한선을 제시한 것은 공익위원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년 7월에 주 40시간제가 도입되는 20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이 전년대비 8.25% 이상 인상되지 않으면 단축되는 근로시간만큼의 임금이 삭감되는 일이 발생한다. 공익위원안의 하한선대로 최저임금이 5.3% 인상될 경우, 현재 월 786,480원을 받고 있는 주 44시간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내년 7월부터는 765,985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찬배 근로자위원은 "주 40시간제로 바뀌면 8.3% 미만의 최저임금 인상은 임금 삭감을 의미한다"며 "최저임금법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 4가지를 최저임금 결정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기준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 기준은 위법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사용자위원들은 "우리 생각보다 상한선이 높다"(김정태 위원), "중소기업이 어려운데 다시 상승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임금 인상이 실업자 증가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된다"(한상원 위원)는 등 오히려 공익위원안의 상한선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결국 근로자위원들은 집행부에서 위임받은 수준을 넘어서는 하한선에 대해 논의할 권한이 없다며 집행부의 지침을 확인하기 위한 정회를 요청했고 오후 8시40분에 최종태 위원장은 10시까지의 정회를 선포했다.

정회된 회의는 속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측에서는 8.3% 미만의 인상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회의에 더 이상 참여하지 말고 퇴장하자는 얘기가 나왔고 공익위원들이 사측의 요구를 지지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도 있었다. 가라앉은 노측 회의실 분위기와 달리, 노측 회의실과 마주한 사측 회의실에서는 간간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조정, 버티기... "실질적 임금 삭감 막아낸 데 의의"

▲ 이 노동자의 요구대로 주 40시간제 최저임금 보전은 얻어냈지만, 여전히 최저임금 현실화의 길은 멀다. 근로자위원들의 협상 결과 보고를 듣고 있는 한 노동자.
ⓒ 이지섭
의견조율을 위해 길어진 정회 끝에 밤 11시에 속개된 회의에서, 노사 양측은 각각 11%와 5.5%의 수정안을 제출했다. 더 이상 양측의 자발적인 수정안을 받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양측의 수정안 제출 직후 최종태 위원장은 정회 후 재수정안을 받는 방안과 공익위원안을 다시 제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의견을 물었다. 이미 공익위원안을 준비해 온 듯한 분위기였다.

홍순직 사용자위원이 공익위원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자 정인수 위원이 다시 공익위원안을 제출했다. 1차 공익위원안에서 상ㆍ하한선을 1.4% 내리고 올린 7.1%~9.4% 인상안이었다. 정인수 위원은 제안 취지에 대해 "상ㆍ하한을 좁힘으로써 가까이 들어온 안을 선택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노사 양측이 공익위원 범위 안에 확실히 들어오도록 하기 위한 압박이었다.

2차 공익위원안 제시 후 회의는 다시 11시40분까지 정회됐다. 이때부터 운영위원회(노ㆍ사ㆍ공익 각 2인의 위원으로 구성)를 통한 공익위원 측의 본격적인 조정이 시작됐다. 노측은 사측의 강력한 반발에도 끝까지 9%의 요구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초반에 6%~7%대의 인상을 예상했던 것으로 알려진 사측은 공익위원들의 조정과 노측의 강경한 태도에 당혹스런 모습이었다.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던 사측 회의실에서는 고성이 오고가는 소리도 들려왔다.

새벽 1시, 회의가 속개된다는 알림에 위원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였다. 이번 회의가 마지막 회의가 될 것이고 사용자위원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표결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이완영 상임위원은 회의실 옆방에서 사용자위원들 전부와 공익위원 몇몇의 회의를 요청했다. 아직도 사용자위원들 내부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듯했다.

결국 새벽 1시50분 속개된 회의에서, 최종태 위원장은 전년대비 8.3%가 인상된 시급 3770원으로 2008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음을 선포했다. 노ㆍ사ㆍ공익 위원들의 3자합의라는 짤막한 설명과 함께였다. 이 수치는 노측이 주 40시간제 도입에 따른 실질적 임금 삭감을 막아내기 위한 최종 마지노선이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다년간 실무진으로 참여해온 한 관계자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지만, 역대 가장 어려운 협상이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힘든 협상이었다. 주 40시간제가 도입되는 사업장의 임금 삭감을 막아낸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결정된 최저임금은 내년 1월1일부터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며 시급 3,770원은 월 급여로 환산하면 주 40시간 사업장은 78만7930원, 주 44시간 사업장은 85만2020원을 적용받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최저임금, #3770원, #최저임금위원회, #서울세관, #2008년 최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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