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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계가 내년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 기륭전자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들.
 최근 재계가 내년 비정규직-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정규직 전환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서울 기륭전자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학생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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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계가 비정규직법 개정 논의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다. 경총은 지난 6월 27일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이 기업인력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전체고용 규모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곧이어 대한상공회의소는 7월 7일 노동부 등에 제출한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한 업계의견 건의문'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2년으로 지나치게 짧아 기업 인력운용의 유연성을 저해하였고, 대규모 계약해지를 초래하는 요인이 될 우려가 크다"고 밝히고, △비정규직 사용기간 4년으로 확대, △사용기간 제한 예외대상에 50세 이상 준고령자 포함, △파견업종 네거티브리스트 방식으로 전환 등을 요구했다.

"비정규직 해고한 만큼 정규직 고용 안 한다"

정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10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7월이면 2년으로 제한된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느냐 해고되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만큼 복수노조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비정규직 관련법"이라며 비정규직법 개정입법 시기를 앞당길 뜻을 내비쳤다.

이렇게 정부와 재계의 비정규직법 개정 주장의 근거는 주로 '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정규직법이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2년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느끼는 기업들은 비정규직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경총은 "기업들이 비정규직들을 해고한 만큼 정규직들을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 고용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 같은 주장에 문제를 제기하는 통계가 나왔다. 11월 6일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비정규직 실태와 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2007년 8월보다 약 22만 명 줄어든 839만 명으로 조사됐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정규직은 44만 명이 늘었고 비정규직 중에서도 용역근로형태는 5만 명가량 증가했다. 비정규직 전체 규모는 줄어들었으나 정규직과 용역근로는 늘어난 것이다.

김유선 소장은 "정규직과 용역근로가 (동시에) 증가한 것은 기간제 보호법 효과에서 비롯된 것이며, 비정규직 감소는 경기침체 효과에서 주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정규직이 늘어난 것은 기업들이 기간제 보호법에 따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이유도 있지만, 용역근로가 함께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에 용역노동자로 대체한 효과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감소는 재계가 주장하는 "비정규직법 때문"이라는 이유보다는 최근 경기침체에 따라 비정규직들이 가장 먼저 고용불안에 노출된 탓이 크다는 것이다.

기간제 보호법 앞 기업들의 두 가지 선택, 간접고용과 정규직

그는 특히 "일종의 '풍선효과'로 판단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노동시장에서는 꼭 필요한 만큼의 수요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업들이 비정규직법과 경기침체로 줄어든 비정규직만큼의 노동력을 채우는 과정에서, 기간제 보호법상 정규직 전환 부담이 있는 기간제 노동자보다는 용역 노동자 등의 간접고용을 늘리거나 아예 반대로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는 비정규직을 형태별로 나눠서 분석한 결과를 보면 더 잘 드러난다. 김유선 소장의 분석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시행이 시작된 무렵까지의 기간인 2006년 8월~2007년 8월 동안에는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에서 기간제근로만 감소하고 장기임시근로, 호출근로, 용역근로, 시간제근로, 파견근로, 특수고용형태 등 기타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정규직 역시 크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김유선 소장은 "이 때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정규직법의 효과가 잘 나타난 때"라고 말했다. 2007년 7월 기간제 보호법이 시행되기 직전에 기업들이 입법 취지대로 기간제근로를 정규직 혹은 무기계약근로로 전환하거나, 기간제 계약을 해지하고 필요한 인력을 호출근로나 시간제근로,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기간제를 제외한 기타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정규직 전환 효과마저 없앨 '개정판 비정규직법'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부터 현재까지, 즉 2007년 8월~2008년 8월까지의 비정규직 변화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동안에도 기간제근로는 계속해서 감소 추세를 보였지만, 용역근로와 시간제근로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특히 비정규직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2007년 3월부터 2008년 8월까지를 따져 보면 용역근로만 증가하고 기간제근로를 포함한 다른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모두 감소했다. 기업들이 기간제 보호법 회피 수단으로 간접고용을 선호하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게다가 김유선 소장이 처음 비정규직 규모를 분석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로 정규직 역시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고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기간제근로가 계속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간접고용과 정규직의 규모가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은, 결국 기업들이 기간제근로를 기피해 '다른 고용형태'를 늘리고 있다는 얘기일 뿐 전체 고용과 기간제 사용기간과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만한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유선 소장은 보고서에서 정부와 재계의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움직임에 대해 "기간제 보호법에서 그나마 긍정적 효과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효과마저 없애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 간접고용을 규제함과 동시에, 비정규직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법은 제정 당시부터 노사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부와 재계의 '개정판 비정규직법'은 적어도 이런 비판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다른 한 쪽의 비판과 저항의 강도는 훨씬 거세지겠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지섭 기자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편집차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비정규직법, #기간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김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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