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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수운교 천단. '도솔천' 이란 현판을 걸려 있다.
ⓒ 안병기

유불선 합일을 꿈꾸는 민족종교인 수운교

수운교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이다. 내가 이 종교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970년대 중반 군 입대를 기다리면서 다락방에서 헛일 삼아 역사대사전 따위를 읽고 있던 때였다. 거기, 수운교에 대해 설명하기를 금강산 유점사에서 도를 닦던 이상룡이란 중이 수운 최제우를 교조로 모시고 1923년에 세운 신흥종교라고 쓰여 있었다.

그 무렵은 일제의 수탈을 견디다 못한 민중들이 뭔가 새로운 삶의 지표를 찾고자 갈망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원불교나 증산도 등과 함께 세상에 출현한 것이 수운교였던 것이다. 민족종교라 불리는 이런 종교들은 민중의 요구에 부응하던 측면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을 기만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국사대사전을 읽던 당시만 해도 난 크게 수운교라는 종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가 수운교에 대해 괸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전에 이사 오고 나서부터였으니 10년 가량 된 셈이다.

수운대를 찾은 것은 지난 일요일(17일)이었다. 먼 산행을 하자니 비가 온다는 기상대의 예보가 나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수운교는 대전시 유성구 추목동 금병산 아래 자리하고 있다. '자운대'라 불리는 군부대가 밀집한 곳이다. 들머리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먼저 나와 길손을 기다리고 있다.

한참 동안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 저 멀리 높지도 낮지도 않게 정겨워 보이는 금병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운교는 그 아래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좌정하고 앉아 있다. 왼쪽에 위치한 수운교 본부를 지나쳐 조금 더 가면 왼쪽에 종각이 보이고 종각 앞에는 본전인 도솔천으로 들어가는 문인 광덕문이 있다. 문을 들어서면 수운교 본전인 도솔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 건물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1929년에 지어진 이 건물의 설계는 교주 이상룡이 하였고, 건축은 경복궁을 지은 최원식이 하였다 한다.

▲ 도솔천 우측 추녀마루 잡상.
ⓒ 안병기
도편수가 지은 건축이라서 그런지 지붕 추녀마루에는 마치 궁궐 건축들처럼 잡상들이 늘어서 있다.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작은 흙인형이다, 잡상은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궁궐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측면도 있다.

수운교 천단은 조선시대 말의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바라볼수록 균제미와 함께 정중함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 석종.
ⓒ 안병기
도솔천 왼편에는 개구리 모양을 한 다듬지 않은 자연석이 있다. 어찌 보면 누운 소와도 비슷한 형상인데 두드리면 신기하게도 쇠북소리가 들려 석고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이 돌이 발견된 곳은 보령으로, 충남 보령군 미산면 황룡리에 살던 송석호라는 분이 3일동안이나 꿈에서 이 석종을 보았는데 우연히 이 돌을 발견하여 두드려 보니 쇠북소리가 나는 게 신기해서 1925년 3월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전해진다. 어디서 구했는지 오른편에도 이와 비슷한 형상의 돌이 하나 더 있다.

수운교를 방문할 때마다 정말 소리가 날까 두드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애써 참는다. 종교의 상징으로 삼은 성물을 함부로 만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석종은 두드리면 쟁쟁 쇳소리가 난다고 한다. 두드리는 부위에 따라 소리도 약간씩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세계 평화와 종교 통합의 날이 오면 이 쇠종이 저절로 울릴 거라는 전설이 있다. 불가능을 아름답게 미화시키는 데는 전설만큼 유효한 수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운교 천단을 뒤로 하고 왼쪽으로 난 용호문을 나서 3, 400미터 가량 걸어가면 부속건물인 봉령각, 용호당, 법회당 등이 모인 곳에 닿는다.

하마터면 멸실될 뻔한 위기에 처했던 근대문화재들

문화재청은 지난 5월 1일, 입구에 있는 본부 사무실과 종각 및 범종, 그리고 이곳에 밀집한 법회당, 용호당, 봉령각 등을 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한 바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건축물들은 수운교본부가 경내에 신규 건축물을 짓기 위해 철거할 계획이었다. 하마터면 귀중한 근대문화재가 멸실될 뻔한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 현재 이 건축들은 문화재로 등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 수운교 본부.
ⓒ 안병기
▲ 사모지붕 형태인 육모정의 종각은 포작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 안병기
▲ '금룡산 도솔천 범종'이라 불리는 대형 종. 타종 소리가 오래 가도록 종 아래에 있는 구멍인 명동을 깊게 팠다.
ⓒ 안병기
▲ 법회강당으로 쓰이는 법회당. 단의 중앙에 삼불상이 모셔져 있다.
ⓒ 안병기
▲ 수운교 창시자인 이상룡이 정양하던 곳으로 1926년에 지어진 수운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 안병기
▲ 봉령각. 이상룡이 별채처럼 사용하면서 거처했던 봉령각. 내부 중앙에는 목조 아미타불 입상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 안병기

아픈 세상에 등돌린 종교가 아편이다

수운교는 독특한 종교이다. 민족적 색채가 짙은 유불선 합일을 주창하면서도 타 종교에 배타적이지 않다. 세계평화와 종교통일을 꿈꾸면서도 국조인 단군을 모신다. 그뿐 아니라 의례도 불교적 습속을 고수하고 있으며 석가모니불 등 다양한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어찌 보면 이 시대의 정신과 부합되는 종교이다.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다양성을 하나로 묶으려는 것이 그렇다. 삐딱하게 바라보면 여러 종교을 뭉뚱그려놓은 잡탕같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의 충돌, 계층 간의 반목, 동서양의 문명 충돌 등을 감안하면 수운교가 지향하는 가치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지만 세상과의 불화 속에서 조금이나마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면 종교를 무작정 배격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아픈 세상을 모른 체 보듬지 않으려는 종교 말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은 아편이 아닐까.

봉령각을 나오면 바로 금병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날씨가 꾸무럭한 게 비가 올 것 같기도 하다. 불볕 내리쬐는 날에 퍼붓는 소나기 같은 게 종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하면서 허위 허위 금병산으로 난 산길을 올라간다.

태그:#수운교, #최제우, #도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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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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