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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19일 공개한 한미관계 보고서가 국내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 민주당 의원 보좌관의 말을 인용한 이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대북 인식과 정책을 유지한다면 한미관계는 10년 뒤에 붕괴할 수도 있다”면서 “한국의 대북정책은 너무 관대하고 순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대북 문제로 한미관계가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5월 22일자 <동아일보> 사설)면서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번 경의선·동해선 시험운행의 경우처럼 향후 남북관계가 한 단계 진전될 때마다 미국·중국·일본의 싱크탱크들로부터 유사한 보고서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런 보고서의 내용에 유의하기보다는 보고서 발표의 의도에 일차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남북교류의 확대는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로 이어질 것이지만, 외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참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기에 남북교류 자체를 위험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외세의 입장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대로 생각하고 그들은 그들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CSIS의 보고서나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CSIS는 자신들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대다수의 미 의회 관계자들은 한미동맹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의회의 주류가 한미동맹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했으면서도, 의원 보좌관의 말을 빌려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은 상당히 모순된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다. 의원도 아닌 의원 보좌관의 말을 인용한 보고서를 근거로 위기의식을 조장하려는 것은 객관적인 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보수 언론들이 그만큼 궁색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남북관계에 제동을 거는 데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워싱턴 길거리에서 햄버거를 입에 물고 걸어가는 무명 시민의 말이라도 근거로 삼으려 할지 모른다.

그런데 CSIS 보고서의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의원 보좌관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현재의 한미관계는 그의 우려처럼 실제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한미관계는 ‘이혼’ 위기에 직면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혼’이라는 것은 한미관계의 붕괴를 말한다. 한미관계는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에서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첫째,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인 현존 한미관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한국의 경제적·국제적 지위가 상승하며 한국 국민의 자긍심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 기존의 종속적인 한미관계가 계속 유지될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가능성도 별로 없다. 충분한 경제력을 갖춘 여자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남편의 폭행과 무시를 계속 견디려 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분단을 전제로 한 한미관계는 붕괴될 수밖에 없다. 남북교류가 지속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통일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통일이 되면, 이전에 미국이 한국을 다루던 방식은 통일 코리아에 더 이상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면천을 거쳐 과거에까지 급제한 사람 앞에서 옛 상전은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1945년 이후의 현존 한미관계는 통일이 다가오는 지금 시점에서 그 붕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기존 한미관계의 붕괴는 그래서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붕괴는 해체적 붕괴가 아니라 발전적 붕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재결합’을 전제로 한 이혼이기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이혼과 재결합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는 이유는, 한미관계가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조정된 후에는 양국이 협력할 만한 이유와 필요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주변에는 언제라도 한반도를 위협할 만한 잠재적 세력이 상존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통일 코리아는 미국과 가급적 적대적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아직까지는 경제적으로 또 군사적으로 세계 최강이다. 통일 코리아가 세계 최강 미국과 가급적 우호적이 되는 것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이 훗날 새로운 마음으로 반갑게 재결합할 수만 있다면 한국과 미국이 일단 이혼하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봉건적’ 관념에 젖어서 평등·합리의 가치관에 무딘 미국 같은 ‘배우자’와 하루라도 더 함께 사는 것은 숨 막히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게 최선책일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한미관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미국 내 일부의 의견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미관계의 붕괴를 우려하는 사람들은 현존 한미관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미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기존 관계를 일단 청산해야 한다는 점까지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 붕괴가 발전적 붕괴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기존 한미관계의 붕괴가 새로운 한미관계의 구축을 가능케 하는 일이라면, 지금 당장 한미관계가 다소 삐걱거리더라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따금씩은 따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미관계의 붕괴를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면서 그것을 더욱 더 다그쳐야 할 것이다.

태그:#한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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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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