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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아기맘이구요. 젖을 떼려고 하는데 방송에서 광고하는 ○○분유랑 △△분유 중 어떤 게 더 좋은가요? 먹여보신 분 답변 좀 주세요."
"혼합수유를 하려는데 분유 어떤 기준으로 사야 하나요? 초유 성분이 들었다고 광고하는 분유 있잖아요. 그거 정말 엄마 젖과 비슷한 건가요?"


세상에서 내 아기처럼 소중한 존재가 있을까? 내 아기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다는 엄마들의 바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런 엄마들의 바람을 말해주듯 인터넷 육아관련 사이트마다 어떤 분유가 좋은 분유인지 묻는 엄마들의 질문 역시 끊이지 않는다. 넘쳐나는 광고보다는 선배 엄마들의 소중한 경험을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기를 위해 가장 좋은 분유를 찾고 싶다는 엄마들이 말하는 '분유광고'란 바로 이런 것이다.

▲ 환상만 있고 정보는 없는 분유업체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
ⓒ 매일유업·남양유업
세상을 다스릴 아이라면…
내 아기는 특별하다
하나뿐인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중세풍 저택이나 자금성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궁궐에서 아름다운 엄마와 아기가 행복하게 웃고 있다. 행복한 모자의 모습을 클로즈업시키고 분유통과 분유 이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끝을 맺는 광고. 사다 먹이기만 하면 우리 아기도 당장 황제나 귀족이 될 것만 같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대부분 분유광고로 알고 있는 이 광고는 엄밀히 말하자면 '분유광고'가 아니다.

조제분유 광고 금지한 지 15년째... 그럼 이 광고는 뭔지?

WHO(세계보건기구)는 6개월 이하 아기들이 먹는 '조제분유(Infant Formula)'에 대해 광고 금지를 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1991년 11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개정, TV와 신문 등에서 조제분유 광고를 금지하도록 한 바 있다.

하지만 조제분유 광고 금지 조치 이후에도 광고는 사실상 줄지 않았다. 같은 이름, 같은 용기, 같은 포장의 분유를 월령에 따라 6개월 이하는 1·2단계(조제분유), 6개월 이상은 3·4단계(성장기용 조제분유)로 구분한 뒤 광고가 허용되는 3·4단계 제품을 광고하면서 조제분유까지 간접 광고하는 효과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편법 분유광고에 대한 항의가 거세어지자 2001년 7월 또 다른 조치가 내려졌다. 편법광고를 막으려 식품위생법을 개정한 것이다.

'모유 대용으로 사용하는 식품, 영/유아의 이유 또는 영양보충의 목적으로 제조/가공한 식품을 신문, 잡지, 라디오 또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광고하는 때에는 조제분유와 동일한 명칭 또는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여 소비자가 혼동할 우려가 있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식품위생법 시행규칙 중 개정령)

하지만 이 조치 이후에도 분유업체 광고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3·4단계의 이름만 바꾸었을 뿐 1·2단계와 통의 모양, 디자인, 색깔 등은 그대로 둔 채 계속 광고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농림부에서 2004년 8월 조제유류의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한 축산물가공처리법을 개정하고 2005년 2월 1일부터 이를 시행한 것이다. 분유류의 경우 1·2단계 조제분유는 물론 이전까지 광고 허용품목이었던 3·4단계인 성장기용 조제분유에 이르기까지 광고가 전면 금지됐다.

모유수유를 위한 강력한 법 적용이 아닐 수 없으며, 법대로라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TV는 물론 잡지, 신문 등 그 어떤 매체에서도 분유광고를 접할 수 없어야 한다.

자, 이제 과연 분유광고가 사라졌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분유광고는 분유광고가 아니었단 말인가?

분유광고 속 숨은 그림, 찾으셨나요?

▲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분유광고와 다를 바 없다.
ⓒ 매일유업·남양유업
물론 우리나라 분유회사는 이 같은 규제를 지키고 있다. 다만 몇 가지 속임수를 숨겨 놓았을 뿐이다.

이제 분유광고 속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보자.

아름다운 엄마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안고 있거나 벌거벗은 채 아기와 함께 목욕을 하고 있다. 내 아기에게 최고의 것을 주겠다는 광고 문구와 함께 초유 성분 DHA 등 모유에 가깝다는 표현을 강조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구입했던 분유통이 등장한다. 분유통의 모양과 색깔 디자인도 우리가 알고 있는 분유와 거의 같다. 과연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분유광고일까?

만약 '그렇다'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분유회사의 광고에 속은 셈이다. 광고가 끝날 무렵 화면 우측이나 좌측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잠깐 보였다 사라지는 '성장기용 조제식'이라는 자막을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분유광고'들은 모두 2005년 2월 분유광고 금지조치 이후 만들어진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다. '성장기용 조제식'은 식품위생법상 '식품'으로 분류, 광고가 허용된 품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지난해 한 분유회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분유를 구입하는 엄마의 60% 이상이 '성장기 분유'와 '성장기용 조제식'의 차이를 모르고 있거나 혼동해서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성장기용 조제식'을 분유로 잘못 알고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아, 그 피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광고 분유' 먹이다가는 영양 불균형·조기 비만 우려

▲ 분유업체에서 광고 중인 '성장기용 조제식'과 '조제분유'의 디자인이 대부분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 매일유업·남양유업
'조제분유'와 '성장기용 조제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보통은 분유 속 유당 함량의 차이로 이를 구분하는데 '유성분' 함량이 60% 이상이면 '조제분유'로, 60% 이하이면 '성장기용 조제식'으로 분류하게 된다.

분유 속 유당 함량은 매우 중요하다. 유당이 모유의 탄수화물 성분과 같아 유아의 두뇌발달과 칼슘흡수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당 성분이 60% 이하인 '성장기용 조제식'의 경우 이유기 이후 아기의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 '영양 보충식'으로 권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월령에 미치지 못하거나 다른 이유식으로 영양섭취를 하지 않는 아기가 식사대용으로 '성장기용 조제식'을 섭취할 경우 영양의 불균형을, 이유식을 하면서 성장기용 조제식을 함께 섭취할 경우 열량 과다로 인한 조기 비만의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광고만을 믿고 분유통을 집어들었다가는 오히려 아기의 건강을 해치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 환경정의시민연대의 한 관계자는 "광고 금지 이후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의 문제점에 대해 자료수집과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면서 '성장기용 조제식' 광고의 몇 가지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너무 어린 월령의 아기가 등장해 광고에 등장하는 아기에 해당하는 월령의 아기가 먹을 수 있는 '분유'로 오해하기 쉽다 ▲제품의 이름은 다르지만 조제분유와 조제식이 같은 디자인, 같은 색으로 되어 있어 구매시 구분이 어렵다.

▲기능과 성분 유형이 다른 상품인 조제분유와 조제식을 1단계부터 4단계의 시리즈로 연결, 소비자의 잘못된 구매를 유도한다 ▲광고 속에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 즉, 성장기용 조제식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매일유업에서 광고하는 성장기용 조제식 '앱솔루트 궁-초유의 비밀 3, 4'는 6개월 이하용 조제분유 '프리미엄 궁-초유의 사랑 1, 2'와 한 묶음이고 통일된 분유통 디자인을 사용한다.

남양유업 조제식 '아이엠마더'와 조제분유 '엑스트라 셀렉션'도 시리즈로 묶여있고 이름만 다를 뿐 분유통 디자인이 같다. 파스퇴르유업 조제식 '다이아몬드 그랑노블' 역시 조제분유 '에메랄드 프리미엄'과 제품 디자인을 맞췄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여성모임인 '다음세상지킴이'는 이런 문제점들이 지속된다면 모니터링과 사례수집, 여론 등을 모아 조만간 해당 분유회사를 상대로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시정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우리 아이에게 먹일 분유"라면, 제대로 광고하라

대부분 분유회사의 기업 모토는 비슷하다. 아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아기에게 좋은 분유와 식품을 만들어 먹이겠다는 것이다. 아기와 엄마를 최대한 사랑하고 아껴야 할 분유회사가 수십억을 들여 만든 광고에, 환상과 혼란만 있고 정작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담겨 있지 않다면 이는 무책임을 떠나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지적을 당해 마땅한 일이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이와 관련된 의견을 듣기 위해 각 분유회사 홍보실에 여러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만 여기저기로 돌려줄 뿐 분유회사의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먹고 자라고 내 아이들이 먹고 자란 국민기업이라는 분유회사. 나라의 장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키워내는 기업에 좀 더 큰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까?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태그:#TV, #광고, #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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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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