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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우리나라 조간신문 부고란.
김승희의 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에 나오는 두 편의 시다.

▲ 한국식 죽음

김금동씨(서울 지방검찰청 검사장), 김금수씨(서울 초대병원 병원장), 김금남씨(새한일보 정치부 차장) 부친상, 박영수씨(오성물산 상무이사) 빙부상, 김금연씨(세화여대 가정과 교수) 부친상, 지상옥씨(삼성대학 정치과 교수) 빙부상, 이제이슨씨(재미, 사업) 빙부상 = 7일 상오 하오 3시 10분 신촌 세브란스 병원서 발인 상오 9시 364-8752 장지 선산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한국식 실종자

● 부음

이상준 (골드라인 통상 대표), 오희용 (국제가정의학원장), 손희준 (남한 방송국), 김문수 (동서대학 교수)씨 빙모상 = 4일 오후 삼성 서울병원, 발인 6일 오전 5시

누군가 실종되었음이 분명하다
다섯 명씩이나!
순교 문화의 품위를 지키면서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다소곳이
남근 신의 가족 로망스 이야기


김승희 시에도 나오듯 우리나라 신문 부고란에는 대개 망자의 이름이 없다. 생전에 잘 나가던(?) 사람만이 이름 석 자 올리고 잘난 직함을 올릴 수 있다. 아니면 출세한 자식이라도 둬야 '부친상' '빙부상'의 이름으로 죽음을 알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망자의 이름은 생략되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잘나지 않으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 미국의 일간신문 <워싱턴포스트> 3월 9일자 부고면.
한 사람의 일생이 한 편의 전기처럼

미국에 사는 기자의 하루는 차 한 잔 마시면서 신문 부고란을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에엥, 아침부터 칙칙하게 웬 부고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 신문의 부고란은 결코 칙칙하지 않다.

신문 부고란에 실리는 부고 기사는 한 사람의 일생이 한 편의 전기처럼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날마다 여러 편의 전기문을 읽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미국 신문에 실리는 일반적인 부고 기사다.

엘크튼에 사는 골디 더플메이어 메도우즈가 향년 90세로 사망했다. 메도우즈 부인은 1916년 3월 19일, 라킹햄에서 M.L. & 로잘리아 프레지어 더플메이어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앨크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주부가 되었고 솔즈버그 교회에 출석했다. 남편 해밀턴 어빈 메도우즈는 1961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도우즈 부인은 엘크튼에 사는 아들 조셉과 오하이오에 사는 딸 진 M. 라이프와 사위 랄프가 있다. 또한 쉐난도에 사는 자매 맥신 리나카와 세 명의 손자, 손녀(사라, 아만다, 조엘), 네 명의 증손자, 증손녀(로렌, 릴리, 켄델, 제이콥)가 있다.

메도우즈 부인의 형제인 율라 블록섬과 칼 S. 더플메이어는 먼저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엘크튼에 있는 카이거 장례식장에서 3월 3일 토요일 오후 2시에 로버트 아즈바크 목사의 주례로 열리게 된다.

가족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친구들을 맞을 계획이다. 메도우즈 부인은 이스트론 메모리얼 가든에 있는 가족 묘지에 묻힐 예정이다. 조의금은 엘크튼 구조대(P.O. Box 152)나 컬럼바인 리뎀션 펀드(P.O. Box 261698)로 보내면 된다.


특출나지 않은 '보통 망자'는 이력은 커녕 이름 하나 실리지 않는 쓸쓸한 우리나라 부고 기사와는 많이 다르다.

▲ 태어난지 3개월만에 사망한 아기의 죽음을 알리는 <데일리 뉴스 레코드>지 부고기사.
슬픈 영화보다 더 슬픈...

사람이 태어나서 떠나는 것은 정한 이치다. 하지만 미국 신문의 부고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떠나보내기에 너무 아쉽고 아까운 죽음들이 많아서이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블레이크 헌터 카버와 제시카 마리 히그스의 3개월 된 아들인 드레이크 앤드류 카버가 윈체스터 병원에서 2007년 2월 9일 금요일에 사망했다. 드레이크는 2006년 10월 23일에 웨스트버지니아의 피터스버그에서 태어났다.

유족으로는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 외증조부모가 있다(이름이 다 나와 있음). 케빈 헨리 목사가 일요일 오후 2시, 웨스트버지니아의 무어필드에 있는 애스베리 묘지에서 장례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친구들을 맞게 된다. 조의금은 '아메리카 심장 재단(162 Court Street, Charleston, WV 25301)'이나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로 보내면 된다. 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글은 www.fraleyfuneralhome.com에 남길 수 있다.


피어나지도 못한 어린 꽃봉오리가 그만 심장병으로 죽은 것일까. 3개월 된 아기의 부고 기사가 슬픈 영화보다 더 슬프고 애잔하다.

▲ 한국전쟁, 제2차 세계대전 등 각종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의 묘비.
ⓒ 한나영
망자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미국 신문의 부고란은 철저히 망자 중심으로 기사가 작성된다.

▲ 망자는 어떤 사람이었나?

망자에 대한 가족관계가 소개된다. 누구의 아들, 혹은 딸이고 누구랑 결혼해서 몇 남매를 두었고, 손자, 증손자는 모두 몇 명이고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자세히 언급된다. 자신의 학력과 경력, 취미 등도 소개가 된다. 하지만 이력서에 올라 있는 것 같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소개가 아니다.

· 팬차리 부인은 헌신적이고 애정이 많은 부인이었으며 자상한 어머니, 할머니였다. 그녀는 늘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요리하고, 빵과 쿠키를 굽는 일을 즐겨했다.

· 더글라스씨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세 명의 딸, 누이, 여섯 명의 손자가 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는데 특별히 손자들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 더글라스씨는 둘도 없는 친한 벗 '주니어 보우이'와 애완 동물 '찰로에'를 남기고 갔다.


망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부고 기사에는 시시콜콜한 신상도 소개가 된다.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이름도 나오고, 80평생을 미혼으로 살다 간 외로운 할아버지의 생전의 활동도 적혀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의 이름과 의붓자녀, 의붓 손자의 이름까지도 언급된다.

▲ 망자는 어떤 여가활동을 했나?

· 터렐씨는 바깥 활동을 좋아했다. 골프와 구기 종목을 즐겨 했으며 나무로 집짓는 일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이런 활동을 하는 모든 순간을 즐기고 사랑했다.

· 스트릭클러 부인에게는 음악이 그녀의 삶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고, 플라스키 트리니티 루터란 교회에서 25년 동안 성가대 대장과 오르간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 망자의 생전 업적

· 리온 F. 그레이씨는 1971년 4월 30일, 육군 상사로 전역을 했다. 그는 27년 동안 복무하면서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브론즈 스타(주=공중전 이외의 전투에서 용감한 행위를 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메달)'를 받기도 했다.

· 마샬씨는 1954년 10월 14일부터 1956년 10월 6일까지 한국전쟁 이후 혼란기에 미 육군으로 복무한 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 망자가 떠날 때의 모습

· 어네스트 갤로씨는 그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잠들었다.
· 메노티씨는 고통 없이 평화롭게 내 팔에서 영면했다.


▲ 에밀리 클라크 할머니의 유언이 실린 부고 기사.
▲ 망자가 당부하는 말

향년 96세로 사망한 에밀리 T. 클라크 부인의 부고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것은 에밀리의 당부다. (제발)

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에 없고 잠자는 것도 아니다
나는 수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날고 있을 것이다
나는 눈 속에 빛나는 다이아몬드 섬광, 익은 곡식 위의 햇살, 부드러운 가을비

네가 아침의 고요 가운데 깨어날 때
나는 원을 그리며 조용히 나는 빠른 새의 비상
나는 밤에 빛나는 은은한 별
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마라
나는 거기에 없고 죽은 것도 아니다.


남은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멋진 한 편의 시로 대신한 96세 할머니 에밀리 클라크의 시심이 감동으로 와 닿는다.

▲ 시신과 조의금은 이렇게

· 폴 I. 롤러씨는 자신의 시신을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했다.
· 에밀리 클라크 부인은 화장을 원했고 조의금은 윌로 이스테이트 은퇴촌에 있는 사람들과 스태프를 위해 쓰이도록 했다.
· 제임스 얼 브라운씨의 조의금은 해리슨버그 캔트럴 애비뉴에 있는 '호스피스'나 '암센터'로 보낼 수 있다.


▲ 인터넷으로도 조문 가능

· 피셔 부인에 대한 조문은 www.fraleyfuneralhome.com으로도 할 수 있다.
· 조앤 W. 리콤트 가족에 대한 위로의 글은 이메일(lindseyfh@comcast.net)로도 남길 수 있다.
· 갈렌 T. 드라이버씨에 대한 온라인 조문은 www.johnsonfs.com에서 할 수 있다.


망자의 일생이 자세히 기술된 이런 부고 기사를 읽노라면 경건해지고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떠나게 될 모든 인생들에게 미국 신문의 부고 기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유산으로 남겨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 보라고 우리를 촉구하고 있는 것 같다.

▲ 미국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 시내의 공동묘지 모습.
ⓒ 한나영

태그:#부고, #신문,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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