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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구상에서 인간이 인간을 집단학살하는 광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에서 홍해를 건너 이라크까지, 민간인 학살은 현재진행형이다.

또 역사적으로 20세기 첫 학살인 오스만투르크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에서, 백인에 의한 인디언 학살, 독일군의 유태인 학살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군·경·우익청년단체들에 의해 집단학살 당한 우리의 할아버지·아버지들까지. 온 세계가 피로 물들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제노사이드다.

각종 언론을 통해 매일 아침마다 접하는 살인사건과 비교할 수 없이 비극적인 것이 바로 집단학살 사건이라고 하겠다. 이 참혹한 집단학살은 흑백 전쟁영화에만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는 현대사의 한 부분이다.

국내의 숨겨진 제노사이드는 이들에게 맡겨라!

▲ <제노사이드 연구> 창간호 표지.
ⓒ 전갑생
국내 근현대사 전공자들이 모여 한국근현대사에 숨겨진 집단학살을 연구하는 '한국제노사이드'(회장 홍순권, 동아대 사학과 교수, 이하 제노사이드)가 최근 <제노사이드연구>(2007. 2, 선인) 창간호를 냈다. 이번 창간호는 5편의 논문, 강화군 민간인 학살을 다룬 사례연구, 서평과 자료해제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이 책의 논문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정근식 회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의 '민간인학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의 현황과 과제'는 2005년 12월 1일 독립된 국가기관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이하 진실위)의 출범 이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그 조사방법과 문제점, 전망 등을 정리했다.

다음으로 한성훈 회원은 '거창사건의 처리과정과 남은 문제'를 다루면서, 거창학살사건을 재구성하고 정부의 은폐와 군법회의 과정에서 일어난 쟁점 등을 다루었다. 또 노영석 회원은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의 결성과정과 유족의 역사인식에 대한 연구'로 경북 청도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 1960년과 1999년 양 시기의 유족회 결성과정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또 박구병(서울대 서양사학과 강사)과 후지이 다케시(藤井たけし, 성균관대 사학과 강사) 회원은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추악한 전쟁청산의 최근 동향'과 '동아시아 과거청산의 두 가지 과제(타이완의 과거청산은 무엇을 가렸는가)'에서 각각 해외의 제노사이드 사례를 연구했다.

이번 <제노사이드연구> 창간호에서는 경기도 '강화군 민간인학살'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했다. 강화민간인학살 대책위원이기도 최태육 회원은 한국전쟁 발발부터 1·4후퇴까지 강화도에서 발생한 반공무장단체 강화특공대의 민간인 학살 과정을 상세히 다뤘다. 특히 부역자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도 비중 있게 다뤘다.

그 외 1960년 국회에서 구성된 '양민학살사건조사특별위원회'와 관련된 증언 청취록 등의 자료들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국회의 진상활동에 참여한 의원들을 통해 집단학살에 대한 의식과 활동 내용을 담았다. 또 당시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수찬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가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이라는 서평을 통해 기자의 눈으로 본 전쟁과 학살을 소개하고 있다.

▲ 대전형무소 학살사건. 국내에서 제주도 외에도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 학살이 자행되었다. 사진은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보도연맹원과 재소자들이 학살당하는 장면.
ⓒ 미국국립문서관
이번에 창간호를 낸 '제노사이드'는 2004년 10월 28일 창립된 신생 연구단체다. 이 단체는 2000년 9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규명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의 출범 이후 꾸준하게 요구되어 온 민간인 학살 연구를 보다 학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출발했다.

매년 타 연구단체와의 공동학술 행사 개최, 지역 순회 학술 답사 및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격월마다 열리는 지역 순회 학술 답사는 지금까지 강화도, 대구 경산코발트, 경북 문경 등지에서 보도연맹원 학살이나 부역자 학살로 희생당한 유족들의 증언과 현장 답사 등을 겸하고 있다. 또 제주도 4·3과 여순항쟁 연구단체와 학술교류 행사도 꾸준하게 열고 있다.

홍순권 회장은 이번 창간호를 내면서 앞으로 <제노사이드연구>에 "해외의 연구활동,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국내외 인권단체의 활동 등을 소개하거나 그 성과를 점검하는 글도 실을 작정"이라며 "'진실위' 등 정부기구의 과거 청산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의 진상 규명 작업을 지켜보면서 연구활동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제노사이드는 현재 진행형

지난 아프간에서,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로 미군에 의해 집단학살 당한 민간인들은 그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물론 한국전쟁 당시 군·경뿐만 아니라 미군에 의한 학살도 얼마나 되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인종 또는 종교집단 간의 학살도 여전히 TV 화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람이 사람을 집단학살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인간이 파리 목숨보다 못하다는 비애감을 떨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제노사이드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라고 하겠다.

역사로 본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란? :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genos)와 살생을 뜻하는 라틴어(cide)의 합성어이다. 특정의 집단을 절멸(絶滅)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제노사이드 협약은 1948년에 국제 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집단 살해의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이다. 국민, 인종, 민족, 종교 따위의 차이로 집단을 박해하고 살해하는 행위를 국제 범죄로 규정하고 각국이 협력하여 이를 방지하고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다음은 역사로 본 제노사이드 사례들이다.

인디언 학살: 미국 내 인디언 학살로 알려진 대표적인 사건은 1864년 콜로라도주에서 200명을 숨지게 한 '샌드 크리크' 학살과 1890년 350명의 희생자를 낳은 '운디드 니' 등이다. 또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은 1814년 부대를 이끌고 1천여 명이 원주민을 붙잡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지를 절단해 죽였으며, 일부는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후 시신을 말려 말안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특히 1830년 미 의회를 통과한 인디언 강제이주법을 토대로 백인들의 개발 사업에 방해가 되거나 백인들의 주거지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에 대한 본격적인 강제 이주 정책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거나 기아와 추위로 사망했다.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 :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러시아 등 24개국에서 505천만명에서 508천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종적 학살로 대표되는 유태인 홀로코스트는 폴란드에서만 300만이 학살되었으며 전쟁 후 3천명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 오스만투르크(지금의 터키)가 ‘인종청소’라는 미명 아래 1909년에 1만5천~2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또한 1915년부터 1922년 사이의 기간 동안 죽은 아르메니아인의 수는 모두 100만에서 150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주 4·3 : 1947년 3·1절에 경관이 민간인들에게 발포한 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의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북청년회에 의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 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군·경·우익청년단체(특히 서북청년회) 등은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해 강경 무력 진압으로 일관했다. 이 사건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2만5천명~3만명으로 추정된다. 1950년 4월 김용하 제주도지사가 밝힌 2만7719명과 한국전쟁 이후 발생된 예비검속 및 형무소 재소자 희생 3000여 명도 감안된 숫자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 1949년 6월 5일에 결성된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정권이 사상통제 차원에서 좌익단체에 관계했던 사람들을 가입시키고 그 외 강제적으로 가입된 민간인까지 약 33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관변단체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들은 인민군에 협력할지 모른다며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약 25~30만명이 군·경·우익청년단체 등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 외 미군에 의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됐다. 또한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천 수만명이 종교적·인종적인 이유로 학살된 사건도 많다.

덧붙이는 글 | 한국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 연구, 2007.2, 선인,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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