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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노래 강촌은 윌카페와 최영엽이라는 가수가 있었기에 청춘의 해방구가 될 수 있었다. 북한강과 그와의 만남은 그래서 천생연분처럼 보였다. 그런데 천생의 연분이 깨졌다는 것이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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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렸다. 와이퍼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강촌에 이르러서는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봄눈과 봄비는 시간을 교차하며 북한강으로 떨어졌다. 북한강은 말없이 눈과 비를 차례로 받아들였다.

 

지난 10일, 강촌역과 붙어있는 회전식 철계단을 지나 '윌카페'로 갔다. 문을 열자 카페 주인인 최영엽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와 포옹을 나누고 창가에 앉아 뜨거운 차를 마셨다. 눈발이 잦아 들기 시작하더니 찻잔을 비우기도 전에 눈은 그친다.

 

옆 자리에 앉은 여자는 홀로 왔는지 찻잔이 식는 줄도 모르고 낙서장에 무슨 글인가를 쓴다. 그동안 손님들이 남긴 흔적만 해도 엄청나다. 낙서장이란 이름으로 남은 사연들이 백여권이 넘는다. 카페의 역사가 낙서장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이다.

 

강촌 문화의 중심지였던 '윌카페', 역사 속으로

 

 

카페 문을 닫기로 했다."

 

그가 애써 웃음을 달며 말했다. 할 말이 있다며 강촌으로 오라고 한 것이 그 이유였다니. 운영난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 애 많이 썼어요."

 

그 순간은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아직 날이 훤했으므로 술을 마시기에도 적당하지 않았다. 이럴 땐 말없음이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일이다.

 

그의 부인 역시 말없이 짐을 꾸렸다. 연탄난로에서 나오는 열기가 얼굴을 발갛게 달구었다. 바람 좀 쏘고 오겠다며 카페문을 나섰다. 회전식 철계단을 걸어 내려와 북한강으로 간다.

 

강촌은 윌카페와 최영엽이라는 가수가 있었기에 청춘의 해방구가 될 수 있었다. 북한강과 그와의 만남은 그래서 천생연분처럼 보였다. 그런데 천생의 연분이 깨졌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를 떠나게 하는 것일까. 세상일까. 고단한 삶일까. 변해버린 사람들의 웃음일까. 천박한 자본주의 물결일까.

 

들고 나는 이가 줄어든 카페는 언젠가부터 고독한 성 같았다. 그때부터 그가 부르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흐느낌이었다. 추억을 더 이상 추억하지 않는 이들은 무심히 강촌을 지나쳤다. 그는 더 외로워졌다.

 

강변을 거닐고 있는 청춘 남녀는 윌카페가 왜 존재하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산악용 4륜 오토바이를 신나게 타는 남녀는 윌카페가 문을 닫는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강변에 있는 버들가지만이 서럽게 피어나며 강촌을 지키던 가수 한 사람이 떠나는 것을 슬퍼한다.

 

물수제비를 뜨는 젊은이들을 한참 바라보다 강촌 번화가로 간다. 번듯한 거리로 변한 강촌은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 밀려드는 차량들로 거리는 몸살을 앓는다. 차량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오토바이의 아슬아슬한 곡예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청춘들은 그저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안마시술소까지 들어온 강촌엔 즐길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하다. 서울의 신촌이나 강남 어느 거리 하나를 옮겨 놓은 것 같은 강촌에서 옛 추억을 길어 올리는 일은 초라하다. 안마시술소 건물을 돌아 그물이 쳐진 실내야구장으로 간다.

 

 

옛 모습을 찾을 길 없는 강촌, 순수만으로론 견디기 힘들어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타석에 선다. 야구공이 툭툭 튀어 나온다. 세 개의 공을 그냥 흘려 보낸다. 배트를 말아쥔 손에 힘을 주곤 날아오는 공을 기다린다. 이때다 싶어 배트를 휘두르지만 헛스윙이다. 옆타석에 선 젊은 친구는 연타석 홈런이다. 그를 바라보는 여자는 그럴 때마다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야구장을 나와 카페로 간다. 카페를 인수한 사람이 와있다. 그는 카페를 어찌 활용할까 궁리가 많다. 한때 강촌의 명물이었던 윌카페는 이제 빛 바랜 사진 속에서나 확인이 가능하다. 실내에 붙여 놓았던 사진 속에서 내 사진을 발견한다. 언제 찍었는지 주인이나 찍힌 사람이나 기억하지 못한다. 사진은 두 장이나 된다. 사진을 떼어 책갈피에 넣는다.

 

윌카페는 북한강이 바라보이는 요새와 같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강촌역 절벽에 붙어있는 카페는 숱한 사연이 스쳐간 곳이다. 이제는 중년이 된 이들이 카페의 단골이었다. 이른바 7080세대들이다. 암울한 시대 강촌은 그들의 해방구였고 윌카페는 그들의 은신처 역할을 했다.

 

창밖으로 어둠이 깔린다. 불빛을 받은 북한강이 잔물결을 일으킨다. 어른거리는 물빛을 바라보며 소주 한 잔을 비운다. 한낮 강변을 질주하던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카페 안은 물빛만큼이나 조용하다.

 

"이 자리가 탤런트 김혜수씨가 즐겨앉던 곳이야."

 

최영엽이 술잔을 비우며 말한다. 그녀는 촬영이 끝나는 밤시간 윌카페를 자주 찾았단다. 윌카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유명인들도 많다. 가수 전인권이 그랬고 수와진도 무대에 올랐다. 대학가요제 출신 그룹사운들 멤버들에겐 더 없이 소중한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 카페를 오픈했을 땐 사람들이 줄을 섰었지. 밖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렸다가 빈 자리가 생기면 들어올 정도였거든. 대단했어."

 

최영엽이 당시를 떠올리며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 21년 전의 일이다. 21년 간의 역사가 막을 내리는 날 손님이라곤 세 테이블이 전부다. 30대였던 그를 50대 중반으로 변하게 한 강촌과 윌카페는 그에게 힘겨움만 남겨주었다.

 

무대에 있는 드럼과 전자기타는 끝내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오늘만큼은 노래를 하지 않겠다던 최영엽이 무대에 오른다. 마이크를 잡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객석에 있는 손님들에게 알린다. 윌카페만의 문화를 즐기던 그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무대에 오른 가수 최영엽, 가수도 울고 객석도 울고

 

 

최영엽이 기타를 잡고 자신의 노래를 시작한다. 촉촉하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자주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친다. 울음 섞인 노래가 이어진다. 정태춘의 <북한강에서>를 부를 땐 객석에 앉은 손님들도 함께 운다. 중년이 된 이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촛농보다 뜨겁다.

 

함께 노래를 따라 불러보지만 예전처럼 흥겹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의 노래는 북한강마저 울린다. 최영엽의 노래는 무대를 잃은 가수가 그러하듯 슬프고 눈물겹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무대로 오르더니 드럼을 친다. 실력만 있다면 누구든 악기를 만져도 되는 게 윌카페의 법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다. 드럼반주에 맞춰 최영엽의 노래가 몇 곡 더 이어진다. 가수 전인권의 친구인 그는 전인권의 노래도 잘한다. 노래가 끝나자 드럼이 치던 남자가 기타를 잡는다.

 

"우리는 오늘 벗 하나를 잃었습니다. 윌카페는 우리에게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만든 추억은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요. 안타까운 밤입니다."

 

그는 대학시절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반백이 된 그가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옥슨80'의 <불놀이야>를 부른다. 나도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로 오른다. 예전 윌카페만 가면 몇 곡의 노래를 불렀다.

 

최영엽과 형, 동생 하며 지내기 시작한 것도 노래가 빚어낸 일이다. 어느날 내 노래를 들은 최영엽이 맥주 한 박스를 내놓은 게 계기였다. 그때부터 카페만 가면 노래를 불렀다.

 

몇 곡의 노래를 불렀다.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던 남자가 기타를 잡고 최영엽은 드럼을 쳤다. 오랜만에 무대가 가득찼다. 노래를 부르는데 기껏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사람과의 이별이 아닌 공간과의 이별인데도 눈물이 흘렀다.

 

문화라는 것은 공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사람이 떠난 공간은 남아있던 문화마저 빛을 잃는다. 예술인을 소중하게 대접해야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윌카페가 사라지면 강촌에 올 이유도 없다. 다들 돌아간 시간 최영엽과 둘이 앉았다.

 

"강촌이 너무 변했어. 순수했던 그 시절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북한강도 날 실망시키고 있어. 그 맑던 강물이 흙탕물로 변한 지 오래야."

 

최영엽이 북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북한강은 상류에서 흘러드는 흙탕물을 견디지 못하고 붉게 죽어가고 있다. 북한강을 터전으로 살던 원앙과 청둥오리들도 강을 떠난 지 오래되었다. 흙탕물은 수서 곤충들이 살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민물고기의 아가미까지 막는다. 인간이 만든 재앙이다.

 

최영엽이 북한강에 남다른 애착을 갖는 것은 그가 한때 환경운동에 관여했던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흙탕물 사태는 비단 북한강만의 일은 아니다. 남한강도 흙탕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욕심이 한강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강촌을 지키던 문화도 그렇게 트럭에 실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 서울에서 출발한 마지막 기차가 강촌역을 지난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각자의 숙소를 찾아가기 바쁘다. 술을 제법 마셨음에도 어쩐지 취기가 오르지 않는다. 자정 지나 민박집으로 간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쉬 잠이 들지 않는다.

 

어느 방인지 싸우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인지 격렬하게도 싸운다. 욕설이 내 방에까지 들리고 벽이 쿵쿵 울린다. 여자의 목소리가 커지는가 싶더니 남자의 욕설이 이어진다. 강촌까지 와서 싸워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생각에 빠져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다음날 아침 사다리차가 도착하고 이삿짐을 실을 트럭이 도착한다. 그 시간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도착한다. 일요일이라 승객이 많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이삿짐을 나르는 인부들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 무심히 지나친다. 윌카페를 지나친 그들은 각자의 갈 길로 간다.

 

윌카페의 간판이 내려지고 이삿짐이 트럭에 실려지는 시간에도 북한강은 붉은 물되어 말이 없다. 이삿짐이 실리는 동안 최영엽은 담배만 피울 뿐 달리 입을 열지 않는다. 한참만에 이삿짐이 꾸려진다.

 

사다리차가 떠나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이 시동을 건다. 최영엽이 북한강과 긴 이별을 한다. 트럭이 조심스럽게 출발한다. 강촌을 지키던 문화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간다. 덜컹덜컹 그렇게 간다.

 


태그:#윌카페, #강촌역, #7080,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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