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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아름다운재단의 모금행사가 열리던 지난 26일은 뉴욕 일대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금행사장 330석을 꽉 메웠고, 자리가 없어서 헤매던 사람까지 합하면 350여명에 달했다.
ⓒ 하승창

아름다운 재단은 우리나라에 나눔 문화를 널리 퍼지게 하는데 기여한 조직이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재단이 미국에도 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 두 개가 있고, 이 곳 뉴욕에 하나가 있다. 그 중 뉴욕 아름다운 재단은 지난해 출범해서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은 조직이다.

서울의 아름다운 재단과 정신을 함께 하고 기본적인 조직형태나 활동방식을 그대로 가져오긴 했지만 운영은 독자적이다. 기본적으로는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향후 발전 정도에 따라서는 히스패닉이나 흑인 등 미국 내 다른 소외된 그룹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겠다는 것이 강영주 상임이사의 말이다.

상근자는 두 명. 강영주 상임이사와 서지영 간사 두 사람이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상근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주부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로 바빴던 강영주 이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한국에서 탤런트로 활동했던 서지영 간사도 유학 왔다가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번에 모금행사를 준비하면서 두 분은 거의 녹초가 될 정도로 정신없이 일했다.

아름다운재단이 일구는 작은 변화

@BRI@모금행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전전긍긍하던 두 사람은 아름다운 재단을 찾은 주부 자원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지원, 유학생들의 자원활동과 재단 이사들의 노력 덕분에 만만치 않은 큰 행사를 잘 치루어냈다. 모금행사가 열리던 지난 26일은 뉴욕 일대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금행사장 330석을 꽉 메웠고, 자리가 없어서 헤매던 사람까지 합하면 350여명에 달했다. 그간 미국 내 한인 사회가 나눔을 실천하는 데 다소 인색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것에 비추어 보면 작지 않은 변화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이 날 사람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을 것이다.

이 날 행사에서 박정찬 UMC 감독(천주교 같으면 추기경 정도에 해당된다고 한다)은 "나눈다는 것은 자선의 의미를 넘어선다"며 "나눔은 모두를 풍요롭게 하며 나누어 줌으로써 내 삶을 소중하게 살찌우고, 공동체 모두가 풍요로워진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도 함께 했다. 박 변호사는 자신이 스탠포드 대학에 한 학기 강의하러 와 있을 때 한인 사회의 몇몇 분들과 만나 무언가 한인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름다운 재단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태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란다.

유태인들은 동네마다 자신들의 재단을 만들어 지역사회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유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나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미주 한인 사회가 100년이 되었지만 아직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뉴욕 아름다운 재단은 미주 한인 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이날도 프린스턴 지역에 사는 한인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미주 한인 사회 100년의 역사에서 최초로 코리아커뮤니티 센터를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첫 모금으로 20만불을 약정했다. 한인들이 지역사회의 소외된 한인들과 마이너리티들을 위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보겠다는 것이다.

한인 조직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는 달리...

▲ 박원순 변호사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재단의 조직 결성 방법이 인상 깊었다. 그동안 한국의 명망가들이 미국에 와서 한인 조직을 만들면 대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뤘고, 그 단체를 자신의 배경중의 하나로 삼기도 했다. 지금도 뉴라이트 계열의 한 인사는 한인사회 내의 보수적인 교회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보수진보 대결에 한 몫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재단의 경우에는 한국 사회운동의 경험을 가지고 오히려 미국 내 한인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이 전혀 다르다. 박원순 변호사는 행사에서도 "미국 아름다운 재단들이 모으는 돈은 단 한 푼도 한국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미국 내 한인 사회를 위해 쓰여질 것이며 미국 내 다른 소외된 그룹들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은 한국에 있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인'이다. 미국 내에서 미국인으로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한인'들이 미국 사회 내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한인 사회에 조직을 만들어 한국 내부 문제를 미국 내 한인 사회에 이식하고, 이곳을 똑같은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한국 사회의 갈등을 미국 내에 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름다운 재단은 과거 잘못된 행태와는 단절돼 있어 보인다. 예상을 뛰어넘는 모금 행사 참가자들의 숫자가 그런 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재단이 잘 발전해서 미국 내 한인 사회가 보다 건강하게 발전하고 미국 내 한인들이 미국 내의 다른 소외된 그룹들과 건강하게 연대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만난 박원순 변호사

여기서 오랜만에 박원순 변호사를 만났다. 오히려 서울에서는 짬이 없어 기껏해야 전화통화로 대화를 나눴는데 그래도 뉴욕까지 오니까 잠시라도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시간이 만들어졌다. 물론 이 곳에서도 박원순 변호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잠깐동안이라도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 행사가 다 끝나고 느지막이 박 변호사가 머무는 호텔 커피숍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자리에 앉으면서 "한국에서는 말들이 많던데, 이번 대선에 출마할 생각은 있나요?"라고 물어봤다.

이에 박 변호사는 "아휴 왜 그래"라고 답변하면서 나마저도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함께 있던 김보근 박사가 "지금 하지 마시고 5년 후에 하시죠"라고 말하니 비슷한 표정과 답변만 돌아온다. 순간, 이런 이야기 계속 하다간 대화가 중단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올해는 대선의 해인데, 시민운동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을 텐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 지 궁금했다. '창조한국 미래구상'에 대한 박 변호사의 생각도 궁금했다.

- 이번 대선에서 시민운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 시민운동은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미래구상의 움직임만 도드라지는데.
"미래구상이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지만 정파를 만들든, 정당에 들어가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매 시기마다 하나의 그룹을 만들어 (정치권에) 들어갔지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미래구상도 묻히게 될지 어떻게 될지 주목해야 하지만…. 다른 그룹들도 기본적인 역할이야 다 할 것이다.

역시 시민운동의 역할은 정책선거에 있지 않나? 그러나 총선연대처럼 세력을 모아내는 것은 이제 한계가 있다. 아이디어로 돌파를 해야 한다. 정책선거도 지난번 선거처럼 수도이전 문제, 이런 거 하나로 정책대결이 끝장나지는 말아야 한다. 국정이 얼마나 다양한가? 국정의 다양함, 변화무쌍함, 이런 것을 변별력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드러내 주는 게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언론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의 검증방식처럼 TV토론 1~2시간 내에 전분야를 다루면 변별력이 없다. 작은 이슈로 차별성을 드러내는 토론 방식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대통령 본인만이 아니라 그 그룹과 정책집단이 중요하다. 당선되고 난 후에 인수위 상태에서 논의하는 것은 이미 늦는 것이다. 그 전에 요구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가 함께 갈 사람들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정책으로 견인해 가는 움직임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우리사회에서 콘텐츠가 정말 중요하다."

항상 열정적인 그

잠시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도 박 변호사는 여전히 열정적으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을 보면 출마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아름다운 재단을 미국까지 와서 만든 건가요?
"스탠포드 대학에 있을 때 이런 것을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은 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아름다운 재단을 비영리단체로 미국에 등록해 놓았다. 소위 미국 국세청의 501(c)3 조항으로 불리는 기부금에 대한 세금혜택이 가능한 비영리단체로 등록한 것이다. 모금이란 것은 테크닉이나 문화, 이런 게 중요하다. 미국 사회가 그런 점에서는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이런 걸 잘 배워보자는 생각으로 '간사 연수용'으로 등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시작했고, 또 마침 한국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 초대 점장으로 일하던 이혜옥씨가 미국에 와 있기도 해서 그에게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게 된 것이 시작이다. 특히 미주 한인사회에는 이런 전문 모금기관이 없기 때문에 동포 사회에 이런 기관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가게도 생겼으면 좋겠다."

- 뉴욕 아름다운 재단 규약에는 한인 커뮤니티만을 위해 돈이 쓰여지도록 되어 있다. 그렇게 되니까 흑인들이나 히스패닉 등 한인들보다 어렵게 사는 커뮤니티를 돕기 어렵고, 지역적 제한도 두고 있던데.
"애초의 목표도 그렇지 않고, 당연히 차츰 넓혀 나가게 될 것이다. 한인 사회가 이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은 유태인들의 지역재단도 참고했다. 특히 인도인들의 모습도 그러한데, 소위 디아스포라 펀드레이징이라는 것이다. Children's Foundation의 상근자 2명이 전국을 돌면서 100만불을 모금한다. 한인 사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오히려 인터뷰를 당하다

도대체 더 이상 무엇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 있으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가의 아이디어를 줄줄이 쏟아냈다. 박 변호사는 또 내가 귀국하면 뭘 할 생각이냐? 시민운동과 관련해서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오히려 질문만 받았다.

어느 새 새벽 1시가 넘었다. 내일도 아침부터 이런 저런 회의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이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사람이라 더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4월에 다시 워싱턴에서 보기로 하고 뉴욕에서의 박 변호사와의 만남을 뒤로 했다.

태그:#아름다운 재단, #뉴욕 아름다운 재단, #박원순, #대선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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