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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일 제10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권양숙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하며 환송나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출국에 앞서 청와대 홈페이지에 당원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편지글을 게시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 통합신당파와 친노그룹은 이미 선을 넘었다. 매일 같이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다 이제는 실력대결을 벌일 참이다. 통합신당파는 의원들을 상대로 정계개편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친노그룹은 오늘 전국 당원협의회장 등 200여명 명의로 지도부 해체와 전당대회 준비위 구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흘 뒤에는 1000여명이 참석하는 전국당원대회를 당사 앞에서 열 계획이다.

갈 데까지 가고 있다. '이혼'은 기정사실이다. 남은 문제는 협의로 끝내느냐, 소송까지 가느냐는 것이다.

@BRI@이대로라면 대선에서 분열상을 보이는 건 필연이다. 궁금하다. 도대체 뭘 믿고 양패구상을 감수하려는 걸까?

'커닝 페이퍼'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일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띄운 편지다.

노무현 대통령은 편지에서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를 비판했고, 통합신당 움직임을 "구 민주당으로의 회귀"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연합정치는 한국 정치의 발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노무현 당'을 "최악의 정치구도"를 깨는 쇠망치로, "연합정치"를 실현하는 가교로 삼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힘이다. '노무현 당'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까? 여소야대인 작금의 상황은 통합신당파와 결별하는 순간 더 심화된다. 여소야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여졸야차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최악의 정치구도" 타파와 "연합정치" 실현은 17대 국회가 아니라 18대 국회에서 실현하려는 구상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편지에서 "참여정부에서 연정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다시 제안할 수도 없다"고 했다 .

믿는 구석이 있다. 경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졸야차 상황을 이미 경험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후 2004년 총선까지 1년여 동안 '다윗'급 여당 체제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이건 무형의 자산이다.

사정도 달라진다. 대통령직에 있을 때도 여졸야차 상황을 이겨냈다. 야인으로 돌아간 다음에야 거리낄 게 뭐가 있겠는가? 오히려 야당의 위치라면 "연합정치"의 전형을 만들어나가는 데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제대로 된 야당 한번 해보길 소망한다는 전언(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있었다.

확인되는 게 있다. 대선에 대해 마음을 비웠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적전분열을 감수할 '용기'를 내보일 수는 없다. 정권재창출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정치는 길게 봐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이 그래서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2008년 18대 총선에 마음 가 있는 노무현 대통령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월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한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드리는 편지글'.

이제 중간정리를 겸해 가설을 설정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보다는 2008년 4월에 치러질 18대 총선에 마음이 가 있다. 이를 통해 "최악의 정치구도"를 타파하고 "연합정치"를 실현할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제 따져보자. 잘 될까?

노무현 대통령이 통합신당파와 결별한다면 호남과 충청권 의원 대부분, 그리고 수도권 의원 상당수를 잃을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당'이 18대 총선을 기약할 수 있을까? '노무현 당'이 지역당의 굴레를 벗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일부 언론이 점치는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 개정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려 할 것이란 전망이다.

객관적이다. 지역구도에 뿌리를 둔 "최악의 정치구도"를 깨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다.

현실적이다. '노무현 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삼고, 중대선거구제를 자양분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야 틈새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려면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다른 정치세력의 동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러 정치세력의 이해가 일치해야 한다.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통합신당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지만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통합신당을 추진하는 게 대선 승리 외에 '금배지' 유지라는 절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란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런 통합신당파에게 중대선거구제는 일언지하에 내칠 수 없는 제안이다. 통합신당파가 친노그룹과 결별을 하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할 경우 이들의 정치적 입지는 극도로 좁아진다. 친노그룹의 지역주의 회귀세력, 구태정치 답습 공격도 수없이 받을 것이다. 이런 상황, 즉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상황에 대비하려면 담보장치가 튼실해야 한다. 호남 등지에서의 의석수는 줄지 모르지만 모두가 죽는 길은 면할 수 있다.

'금배지' 혈안 통합신당파, 중대선거구제 내칠까?

▲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제는 한나라당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에 대연정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을 때 한나라당은 싫다고 했다. 이때의 경험에 비춰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과거와 미래의 한나라당은 다르다. 지난해의 한나라당은 대여투쟁의 단일전선을 유지해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즉 대선국면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승부가 박빙이다. 이 때문에 대선주자별로 소속 의원 줄세우기에 골몰하고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의원 개개인에게 지워지고 있다. 어떤 줄을 잡느냐에 따라 18대 총선 공천권이 왔다갔다 한다. 불안하다.

이런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중대선거구제는 매력 덩어리다. 최선책과 함께 차선책도 손에 쥘 수 있는 방안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에게도 뜨거운 감자다. 박빙세가 유지되는 현 상황에서는 먹기 힘든 감자이지만 세가 갈리고 나면 안 먹을 수 없는 감자가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승자독식 체제다. 대선은 물론 소선거구제로 치르는 총선도 마찬가지다. 이런 승자독식 체제에서의 대선후보 경선 패배는 곧 정치적 사망선고를 뜻한다. 자신에게 줄을 섰던 세력은 일거에 해체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는 사라진다. 하지만 선거구제만이라도 공존체제로 전환시켜 놓으면 '중간 보스'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여지와 틈새는 분명히 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하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구도가 확실하게 갈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다면 앞서 도출한 중간가설의 한 대목, 즉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 대한 마음을 비웠다는 진단은 유보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밀리는 주자와 연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선거구제 개편(더 나아가 개헌까지)을 명분으로 삼아 "연합정치"를 모색할 개연성은 남아있다.

설령 "연합정치"까지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거구제 개편을 끌어내기만 하면 '노무현 당'의 존속·발전을 위한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단정은 금물이다. 정치는 어차피 상호작용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우세를 보이는 주자의 견제와 비토 요인을 배제할 수 없고, '야합' 비난 역풍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편지에서 선거구제 개편을 시사했다면 그는 다당제 구도를 전제해 놨다는 점이다. 그런 다당제의 분화구를 열린우리당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중대선거구제는 매력 덩어리다. 최선책과 함께 차선책도 손에 쥘 수 있는 방안이다. 사진은 지난 4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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