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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1일, 중소기업청과 산하 법인인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재래시장포털'을 표방하는 에브리마켓(www.everymarket.co.kr) 사이트를 열었다.

하지만 17억원이나 들여 만든 에브리마켓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언론의 집중 포화와 소비자의 무관심 속에서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 사이트의 전면 개편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올해 9월 1일 에브리마켓이 다시 문을 열었다. 애당초 개편 작업은 3월초에 사업자를 선정한 후(사업 예산 6억여원) 3개월의 작업 기간을 거쳐 6월초에 문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6월 1일부터는 '시범운영을 마치고 개선사항을 보완해 새로운 모습을 보일 예정'이라는 안내문만 남겨놓고 잠정 폐쇄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석달 후인 9월 1일, 그러니까 정확히 한돌을 맞이해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그런데 새로 문을 연 에브리마켓의 운영자는 전국시장상인연합회(이하 '시장연합회')로 되어 있었다. 원래 에브리마켓은 중기청 소관 사업으로, 중기청 산하 법인인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해왔다. 그러던 것이 시장연합회로 운영이 넘어온 것.

중기청의 재래시장 지원팀 담당자는 "시장연합회가 출범했으니 중소기업유통센터보다는 직접 관련이 있는 시장연합회에서 맡는 것이 더 적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인을 제대로 찾아갔다고 볼 수 있고, 시장연합회의 입장에서 보면 떡이 들어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을 펴고 있는 나로서는 웬지 돌씹은 기분이다.

▲ 다시 문 연 에브리마켓 홈페이지. 일반 쇼핑몰과 별다른 점이 없고 재래시장의 정취는 찾아볼 수 없다.
ⓒ 에브리마켓
중기청이 재래시장을 알아?

에브리마켓은 애당초 재래시장 포탈을 표방했다. 물론 출발부터 현재까지를 보면 과연 에브리마켓이 재래시장을 위한 사이트였는지 논란이 있겠지만, 일단 본래의 의도는 수긍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문제는 중기청이 취해온 방향이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타당했는가 하는 점이다.

중기청은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온라인마켓화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에브리마켓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쇼핑몰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중기청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 재래시장의 모든 상점이 에브리마켓에 사이버 점포를 꾸릴 때 재래시장은 활로를 찾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재래시장이 쇼핑몰과 맞는지 살펴보려면 원론적인 질문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 재래시장은 무엇인가?

지금은 '재래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원래는 그냥 '시장'이었다. 그 속에는 살 거리가 모두 있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재래시장'으로 내려앉은 현재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의류 쪽이다. 예전에는 시장의 상당 부분을 의류 점포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브랜드 의류가 등장하면서부터 하나둘 시장을 빠져나가 시장 외곽의 대로변이나 상점가에 '메이커' 대리점으로 자리잡았고, 재래시장에는 속옷 등을 파는 점포와 일부 점포만이 남았을 뿐이다.

먹거리 쪽도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공산식품의 비중이 늘었다는 것이다. 식품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만들어먹던 것이 사먹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반찬 가게, 전 집, 구운 김가게 등,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조리식품을 파는 점포도 많이 늘었다. 농수산 원재료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조리식품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었음을 뜻한다. 과거 시장의 비중이 농수산 식재료, 옷, 생활용품 순이었다면, 지금은 농수산 식재료와 가공(조리)식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식기, 신발, 속옷 같은 생활용품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물론 재래시장이라고 해서 전부 식품 위주라는 말은 아니다. 한약재(대구 약령시, 제천의 약초시장, 서울 제기동의 경동 약령시), 건어물(서울 중부시장), 의류(동대문 의류상가, 울산 중앙시장), 공구(세운상가), 악기, 꽃(낙원상가), 회집(부산 자갈치시장, 포항 죽도시장), 악세사리, 아동복, 안경(남대문시장) 등…. 품목을 따지자면 수없이 많다.

이렇게 본다면, 파는 물건을 놓고 재래시장 사이트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형 혼수 가전제품을 팔면서 재래시장 사이트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하다. 왜 그럴까?

재래시장 살리기의 본질은 서민경제 살리기

최근 몇 년간 정부는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5000억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다(2002년부터 '재래시장현대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쏟아부은 돈은 4950억원에 이른다).

아케이드 공사를 해서 눈비에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시설 환경도 많이 개선했다. 도대체 뭐하러 이런 짓을 했을까? 물건이 많이 팔려서 경제가 돌아가게 하려고? 물건을 많이 팔려면 대형유통점이나 유통상과 손잡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재래시장에 있는 다수의 소상인들을 살려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법은 "재래시장의 소상인들은 누구이며,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역 주민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요구하는가도 함께 고려되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것을 어떻게 인터넷에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궁리해야 했다.

하지만 중기청은 그런 고민 없이 너무도 쉽게 답을 내렸다. 인터넷 시대니까 재래시장 상인에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르쳐서 쇼핑몰을 열게 하겠다는 것이다.

광역을 상대로 하는 쇼핑몰과 지역 친화적인 재래시장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재래시장은 농수산 식재료와 공산식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농수산 식재료는 종류가 다양하면서도 가격의 등락폭이 크기 때문에, 공산식품과 생활용품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판매로는 적절치 못하다.

그리고 재래시장 구성원의 대부분은 가격경쟁력에서 뒤쳐지는 소매상임을 생각해보면 재래시장 대부분의 점포는 애당초 쇼핑몰에서 제외될 것은 자명했다.

결국, 쇼핑몰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생산업자나 대규모 유통업자에게 판을 맡기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원래의 목적과 상반되는 쇼핑몰을 하나 더 만든 꼴이 되었다. 그것도 재래시장이라는 이름을 업고서.

중기청이 만든 떡을 상인연합회가 덥썩 받아먹은 것에 필자가 못마땅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받아먹었다. 잘 되면 재래시장을 죽이는 일이 되고, 못 되면 "시장연합회에 맡겼더니 운영을 엉망으로 했다"는 덤터기만 쓰게 될 일이다.

블루오션으로 가자

흔히 매출을 올리려면 사이트에서 물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쇼핑몰 형태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래시장 사이트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사이트에서 직접 물건을 팔지 않더라도 지역의 소비자, 특히 신세대를 재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만 제대로 한다면 재래시장 사이트로서 성공이라고 본다.

오늘날 재래시장이 쇄락의 길을 걷게 된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재래시장이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를 회복시키는 방법은 소비자와의 교류밖에 없다. 교류가 일어나고 신뢰가 다시 구축되면 인터넷이 아니라 전화로도 매출은 늘어나게 된다.

결국 쇼핑몰보다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형태가 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중기청이 할 일은 그 커뮤니티들이 잘 돌아가게끔 정보와 재미가 있는 판을 짜는 것이다.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게 쇼핑몰이다. 중기청은 왜 경쟁력도 없는 재래시장을 피터지는 싸움판(레드오션)으로 뛰어들게 하고 있을까? 재래시장만의 장점을 살려서 안전하고 독자적인 블루오션을 찾아볼 생각은 왜 하지 않을까?

이제는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벗어나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에브리마켓이 아니라 재래시장이 주저앉고 만다.

덧붙이는 글 | 인천지역 '재래시장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필자는 현재 재래시장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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