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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싶은 털별꽃아재비
ⓒ 김민수
아무 데나 피는 꽃, 흔하디 흔한 꽃, 작고 못 생긴 꽃, 밭이나 빈터 혹은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는 꽃이 있습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뽑고 또 뽑아도 잡초근성으로 피어나는 열대 아메리카에서 온 이 귀화식물은 '털별꽃아재비'입니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피어 있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작은 별들이 땅에 내려온 형상입니다. '털'자가 붙은 것은 줄기와 이파리에 끈끈한 털이 있어서이고 '별꽃'은 별을 닮았다는 뜻입니다만, '아재비'가 붙어서 그냥 별꽃 비슷한 것 정도로 불리는 꽃입니다.

별꽃들은 작지만 상당히 예쁜 편이지요. 그러나 털별꽃아재비는 작긴 하지만 예쁜 편은 아니지요. 그래서 그 꽃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도 그냥 지나쳐 버리는 꽃이기도 합니다.

▲ 혀꽃(흰색)도 듬성듬성 달려 별로 예쁘지 않은 털별꽃아재비
ⓒ 김민수
별꽃을 볼 때마다 하늘에서 빛나던 별들이 유성이 되어 땅에 떨어진 곳에 피어난 꽃이라는 상상을 합니다.

아이들에게 별꽃 이야기를 이렇게 해 줍니다.

"저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작은 별이 있었단다. 저 먼 하늘에서 지구를 보면 또 하나의 별처럼 보였던 것이지.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별을 따주고 싶다 하고, 별에 가고 싶다 하는 것처럼 그 하늘의 별들도 작은 지구별을 보면서 이곳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러나 거저 이뤄지는 소망은 없는 법이란다. 때가 되면 그곳에 갈 수 있지만 온 몸이 산산조각 나는 아픔을 겪어야만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단다. 그래도 그 작은 별은 지구별에 가고 싶었어. 그 소망이 이루어지던 어느 날, 유성이 되어 지구별에 떨어진 작은 별은 산산조각 나서 이리저리 빛을 내면서 튀었단다. 그 작은 조각들이 떨어진 곳마다 작은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이 꽃들을 별꽃이라고 불렀지. 별꽃 중에는 색깔이 다른 꽃도 있는데,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색깔을 닮아서 그런 것이란다."


▲ 혀꽃 안에 작은 통꽃들이 활짝 피어있는 털별꽃아재비
ⓒ 김민수
어떤 분은 털별꽃아재비 속에 또 꽃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꽃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별들이 많은 것처럼 그 작은 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돋보기를 대고서야 하얀 혀꽃 가운데 노란 부분에 수없이 많은 통꽃들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작은 별 속에 또 다른 별을 무수히 새긴 것이지요.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 작은 통꽃들마다 생명을 품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벌 한 마리가 앉기도 힘들 것 같은 작은 꽃, 그 안에 이렇게 많은 꽃들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 작은 통꽃마다 씨앗이 여물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작다고 여겨지는 이들도 야무진 씨앗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뽑히고 밟히고 때론 제초제에 말라죽어도 기어코 다시 피어나는 저 들판의 꽃처럼, 그렇게 강인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는 통꽃을 간직한 털별꽃아재비
ⓒ 김민수
그리움이 별 되고/별이 꽃 되고/꽃이 사랑 되고/사랑이 눈물 되고/
눈물이 강물 되고/강물이 바다 되고/바다가 하늘 되고/하늘이 별 되고/
별이 그리움 되고/다시/그리움이 별 되고
(자작시 '별꽃')

참으로 분주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단 한 뼘의 흙, 한 줌의 햇살만 있어도 피어나는 털별꽃아재비같은 꽃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뒤뜰 한 켠에 핀 털별꽃아재비는 저에게 참 귀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말끔하게 정돈된 사무실의 뒤뜰엔 더 이상 털별꽃아재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년 이맘때 그 곳에 또 다시 피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듬성듬성 피어있는 별을 닮은 털별꽃아재비
ⓒ 김민수
퇴근길에 무리해서 강원도 초입의 야산을 찾았습니다(멀리는 못 갔습니다). 이미 해가 뉘엿거려서 빛이 부족합니다. 꽃 산행을 포기하고 가벼운 산책을 하는 길에 털별꽃아재비를 만났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것이나 시골에서 만난 것이나 같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시골에 있는 것이 때깔이 좋습니다.

그 작은 것과 한참 씨름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무슨 일인가 보다가는 너무 작은 꽃을 보고는 '그것도 꽃이냐'라고 차마 말은 못하고 그냥 웃으며 지나갑니다.

작은 별 속에 새겨진 작은 별을 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에 새긴 것들을 돌아봅니다. 내 마음에 새긴 것들로, 누군가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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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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