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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이 기사화된다면 <오마이뉴스>에 채택된 1131번째 기사가 됩니다. 저 자신도 몇 년간 <오마이뉴스>와 교류하면서 이렇게 많은 기사를 썼는지 신기합니다.

제주도에서 시골생활을 할 때에는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넉넉했고, 수많은 풀꽃들이 피고 지는 오름과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근처에 있으니 기사거리가 넘쳐났습니다. 자연 중에서도 특별히 꽃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꽃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써왔고, 맨 처음 시작할 때에는 꽃에 대해 무지했었지만 독학을 한 끝에 지금은 제법 아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러니까 1130번째 기사(연재기사 -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53')에서 대형사고가 터졌습니다. 끝내야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나왔다가 잠시 쉬는 틈에 뒤뜰에서 율무를 만났고, 살포시 피어난 꽃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무를 보는 순간 그 이름을 '귀리'라고 철썩 같이 믿었던 것입니다.

신이 나서 귀리에 대한 자료들을 찾고, 어릴 적 귀리와 관련된 추억들을 떠올리며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라 기사송고량이 많지 않았는지 기사를 올린 후 얼마 되지 않아 잉걸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주말에 기사를 쓰는 재미는 평일보다 빨리 올라간다는 것이지요.

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시간은 밤 9시 30분 정도였습니다. 몇 분이나 제 글을 보고 갔을까, 혹시 댓글이 달렸을까 제가 쓴 기사를 보는 순간 기절할 뻔했습니다. 댓글에 귀리가 아니라 율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맞다, 귀리가 아니고 율무다!"

그런데 문제는 이름이 틀린 것이 문제가 아니고 기사수정이 상당히 까다롭다는 점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기사전문을 다시 작성해서 편집부에 보냈습니다.

밤새 뒤척였습니다.
그동안 꽃에 대한 기사만 얼추 잡아도 300여 편을 썼는데 최대의 실수요, 최대의 고비였습니다.

맨 처음에도 실수가 있었는데 그 때에는 꽃을 잘 모를 때였고, 연재기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꽃이라 구분이 모호하기도 했었지요. 그래서 식물도감 몇 페이지까지 인용하면서 기사가 오보가 아니라고 주장을 했는데 이년 정도 지난 후에 보니 제가 틀렸습니다. 이미 오래 지난 것이라 그냥저냥 넘어갔지만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완벽한 실수, 완벽한 오보였던 것이지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제 기사를 확인했지만 아직은 수정 전이었고, 거기에 또 다른 댓글을 통해서 나도 한 번 본 적이 없는 무화과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내용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지요. 무화과의 꽃은 열매 속에 피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댓글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 또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서둘러 편집회의 게시판에 올렸던 파일을 꺼내 수정을 해서 올렸고, 얼마 뒤 기사가 대체되고 나서야 한숨 돌렸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꽃에 대해서 많은 기사를 쓰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알고 있는 것들이 완벽하다고 하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초심의 마음으로 꽃에 대한 기사들을 작성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댓글의 힘입니다.
그 정도의 오류면 어떤 비난을 해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꽃에 대한 기사를 읽는 분들이라서 그런지 비난하지 않고, 친절하게 오류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또 너무 감사했습니다. 대안없는 비난이나 욕설같은 댓글이 판치는 인터넷 환경에서 귀한 댓글을 만난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마 이번 일은 앞으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기사를 씀에 있어서 아주 귀한 약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껏 기사를 쓴 후 이렇게 진땀을 흘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진땀으로 인해 이후의 기사들이 좀더 성숙해지겠지요.

덧붙이는 글 | 잘못된 내용들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으시고 귀한 정보를 주셨던 독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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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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