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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 국장도감' 의궤
ⓒ 환수위 제공
'왕실 의궤'란 무엇인가?

'조선왕실 의궤'는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행정처리 따위를 상세하게 적은 기록이다. 왕실은 의례행사를 진행하면서 기록으로 남겨 비용을 아끼고 혼선을 막고자 의궤를 제작했다. 조선왕실의궤는 조선시대 최고의 기록문화로 꼽힌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유네스코에 '조선왕실 의궤'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다.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시해당한 뒤, 2년2개월간에 걸쳐 일어난 파란만장하고 유례없는 슬픈 국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이 의궤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국장도감의궤 중 가장 길다.

조선 고종 13년(1876),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의 화재로 조선의 옥새가 소실됐다. 이에 고종은 무위소(武衛所)라는 관청에 옥새와 인장을 새로 제조하도록 명했다. 이렇게 해서 그 해 12월 27일까지 각종 보인 11과(科=개)가 제조돼 고종에게 헌상됐다. '보인소 의궤'(寶印所儀軌)는 옥새 제작에 관한 유일한 자료로 이때 있었던 옥새 제작에 관한 모든 사실을 낱낱이 기록한 종합보고서이다. /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일제에 약탈 당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본'을 찾아 93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겨준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공동의장 월정사 주지 정념, 봉선사 주지 철안 이하 환수위)가 이번에는 조선왕조 왕실의 주요 의식과 행사의 준비과정, 행정처리 등을 기록한 '왕실의궤'를 찾아 나선다.

의궤는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 후대의 참고를 위해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상세히 적은 책을 일컫는다.

26일, 환수위 간사 혜문 스님은 "환수위가 도쿄대에 소장되었던 조선왕조실록의 약탈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오대산 사고에 소장되었던 '왕실의궤'의 행방을 확인했다"며 "1909년, 오대산 사고에 왕실의궤 380책이 보관됐었다는 당시 궁내부 '오대산 사고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조사한 바 대정 11년(1922) 조선총독부가 일본 황실에 기증했고 현재 일본 궁내청 서릉부 왕실도서관에 명성황후의 장례절차를 기록한 '명성황후 국상도감의궤'와 옥쇄제작 과정을 기록한 '보인소의궤' 등 '조선왕실의궤 오대산 사고본' 44종 86책 소장되어 있음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이어 "이 같은 사실은 2001년 해외전적문화재연구회(회장 천혜봉 교수)가 직접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정부와 학계는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이토 히로부미에게 대출해준 규장각 도서 등에 대한 대처에서 반환운동은 등한시 하고 환수한 실록에 자기소유임을 나타내는 '서울대학교규장각도서지인'이라는 도서인을 날인 하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등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질타했다.

환수위는 왕실의궤의 반환 가능성에 대해 "실록 반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왕실의궤의 반환은 보다 쉽게 이뤄질 수 있었겠지만 서울대가 기증받는 바람에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한 뒤 "비록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의궤를 환수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반환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 해외전적조사연구회가 '조선왕실의궤'에 대해 조사한 보고서. 대정11년 5월 조선총독부가 기증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
ⓒ 환수위 제공
환수위는 오는 8월 11일 월정사에서 있을 예정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환수고유제 및 국민환영행사'가 마무리 되는대로, 8월 중순 기자회견을 열고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5월 2일 결성한 '조선왕조실록되찾기 의원모임(공동대표 김원웅, 노회찬, 유근찬, 홍문표, 이낙연)도 간사인 강혜숙 의원실을 통해 일본 궁내청에 사실 확인서를 보낸 상태이며 "반환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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