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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40년 이민 관리소가 화재로 전소된 뒤 현재 남은 건물은 이민자들이 수용되었던 막사(barracks)다. 지금은 공사 중.
ⓒ 윤새라

미국에서 올해 상반기에 가장 뜨겁게 부상한 쟁점 중 하나는 단연 이민법 개정 문제다. 전국적으로 1000만명이 넘는다고 추정되는 불법 체류자 문제와 그들을 엄하게 다스리려는 하원의 움직임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정도다.

그런데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미국이 이민자 문제로 곤욕을 겪는 것이 비단 이번 만은 아니다. 이전에 미국이 어떻게 이민자들을 취급했는지, 미국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은 당장 이민법 개정을 놓고 몸살을 앓는 미국 뿐 아니라 빠르게 국제화 되어가는 지구촌에 온고지신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드리워진 오욕의 역사

미국 이민 역사의 어두운 그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샌프란시스코에 드리워져 있다. 이름마저도 역설적이다. 앤젤 아일랜드(Angel Island), 우리 말로 굳이 옮기면 '천사 섬'이다. 그곳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이민 오려던 중국인들을 검사하고 억류하던 이민 통과소(Immigration Station)가 있다.

유럽 이민자들이 대서양을 건너 뉴욕의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를 거쳐 미국에 들어온 것과는 달리 중국인들 및 동양인, 그리고 시베리아를 떠나온 러시아인들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를 통과했다.

그래서 앤젤 아일랜드는 흔히 '서부의 엘리스 아일랜드'(Ellis Island in the West)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민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런 비교가 그저 허상에 불과함을 안다.

실제로 관계자들은 앤젤 아일랜드를 '서부 관문의 감시인'(Guardian of the Western Gate)이라고 불렀다. 기자를 안내해준 미디어 담당관 로이 맥나미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 이유를 말한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을 환영했지만 이곳 앤젤 아일랜드는 아시아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감금'(imprisonment)하는 곳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왜 그럴까? 왜 동양 이민자들은 유럽 이민자들처럼 환대받지 못 했을까? 당장 떠오르는 대답은 역시 인종차별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중국 이민자 후손으로 5년째 앤젤 아일랜드 이민소에서 자원봉사로 안내를 하고 있는 조첸은 이런 단순한 해석을 경계한다.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습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고 골드러시는 중국에까지 알려졌지요. 중국인들은 미국을 '금산'이라고 부르며 국운이 기울어가는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왔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 주로 값싼 노동 인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1880년에 들어서며 미국이 불경기를 맞자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빼앗아서 경기가 나빠졌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1882년 의회는 중국인의 이민을 금하는 법(Chinese Exclusion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민을 원하는 자가 특정국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미국 이민을 원천 금지한 이 법은 미국 이민 역사의 최대 오점이다. 이 법은 2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이 미국 연합 동맹에 우방으로 참여한 후인 1943년에야 폐기처분됐다.

▲ 이민 막사 내부 사진. 지금 이 곳은 대대적인 수리 중이다. 이민 막사로 쓰일 당시 이층 침대도 아니고 삼층 침대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 이 방에 들어갈 적정 인원은 56명이었지만 실제로는 이민자들을 200명이나 수용했다.
ⓒ 윤새라

'아메리칸 드림' 좇아 떠나온 이역만리... 그러나

그러나 앤젤 아일랜드의 이민 막사는 이 악법이 발효 중이던 20세기 전반기를 관통하며 건재했다. 중국인은 아예 미국 이민 자체가 금지됐다면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답은 이렇다. 이 법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중국인이 가족을 중국에서 초청하는 이민은 가능했다. 그래서 생긴 현상이 서류상으로만 가족인 '가짜 친족들'(paper sons and daughters)이다(그때 가짜 친족관계를 이용해 이민 온 중국 이민자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캘리포니아 주 중국인 사회에서는 그 당시의 고난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린다고 조첸은 전한다).

긴 배여행을 끝내고 앤젤 아일랜드에 몸을 내린 이민 희망자들은 그때부터 가장 힘들고 긴 1마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앤젤 아일랜드 이민 막사에는 이민자들이 진짜 가족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해 검사관들이 별별 질문을 해댔다. '당신이 살던 마을의 이웃들 이름'을 대라는 것부터 '중국에 있는 당신 집에 창문이 몇 개인가?'라는 시시콜콜한 질문까지 때로 700개에 달하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앤젤 아일랜드에서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수용생활을 해야 했다. 그들이 이곳에 머문 기간은 평균 3주 반이지만 어떤 이들은 22개월이나 이곳에서 하염없이 이민 허가를 기다려야 했다.

또 이곳에서 그들은 육체적 수모도 겪어내야 했다. 미국 이민국은 배에서 내린 이민 희망자들에게 옷을 벗고 하는 서양식 신체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동양에서 온 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코쟁이 서양인들 앞에서 발가벗는 일에 말할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의사는 우리들에게 옷을 몽땅 벗으라고 했다. 정말이지 모욕적인 일이었다. 중국인들은 절대로 그처럼 알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들을 검사하고 또 검사했다. 우리는 결코 그같은 일, 즉 백인들 앞에서 옷을 벗는 일에 익숙해 질 수 없었다.”(1930년에 앤젤 아일랜드를 거쳐간 한 이민자가 남긴 글)

엘리스 아일랜드를 거쳐간 유럽 이민자들이 대부분 타고 온 배 위에서 쉽게 쉽게 이민 허가를 받은 데 비하면 동양에서 온 이민자들은 많은 고초를 감내해야만 했던 것이다.

▲ 허물어질 운명이던 이민 막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렇게 이민 막사 벽에서 발견된 시들이다.
ⓒ 윤새라
막사 벽에 새겨진 시... 다시 기억되어지는 역사

앤젤 아일랜드 이민 막사는 1940년 관리소 건물이 불로 전소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1910년 문을 열어 1940년 문을 닫을 때까지 이곳을 거쳐간 중국 이민자들의 수는 어림잡아 17만명이 넘는다.

이후 앤젤 아일랜드는 미국의 군사 시설로 사용되다가 1958년을 기해 주립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대대적 탈바꿈을 하게 된다. 현재 앤젤 아일랜드는 따뜻한 기후와 수려한 자연 풍광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각광받는 하이킹 장소다. 그러나 공원이 되면서 이 섬에 있는 역사적 문화재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공원 측의 우선 순위가 자연 보호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쓰지 않는 이민 막사도 점점 낡아갔다. 그러던 1970년 어느 날 조그만 사건이 일어났다. 공원 직원(park ranger)이 이민 막사 벽에 새겨진 시를 발견한 것이다. 이민 막사에서 기약없는 감금 생활을 견뎌내야 했던 이들이 쓰라린 심정을 건물 벽에 표현한 싯구들이었다.

허물어질 운명이던 이민 막사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이렇게 이민 막사 벽에서 발견된 시들이다.

알고 보니 그런 시가 이민 막사 건물을 통틀어 130개나 되는 것으로 이후 밝혀졌다. 그러나 관리를 맡았던 당국에서는 이렇게 한자나 힌두어, 러시아어로 적혀진 글들을 단순한 낙서라 치부해 벽에 페인트 칠을 덧대고는 했었다.

그렇게 발굴된 시 중 한 편을 소개한다.

"앞으로 나는 이 건물로부터 멀리멀리 떠날테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와 함께 기뻐하리.
이 곳에 있는 것들이 모두 서양식이라 말하지 말라.
보석으로 지어져 있으면 무엇하리오, 새장인 것을."

현재 이민 막사는 미국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다. 비영리 단체인 재단(Angel Island Immigration Station Foundation)이 설립되어 이 문화재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도 2000년, 이 곳의 보존을 위해 15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앤젤 아일랜드 이민 막사는 현재 박물관으로 거듭 나기 위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2007년 초 개관이 목표다. 맥나미 씨 표현대로 미국 이민사에서 '오욕의 장'(chapter of shame)인 중국인 이민 금지법을 상징하는 앤젤 아일랜드. 그러나 이제 앤젤 아일랜드는 그 치욕의 역사를 묻지 않고 들춰내 미래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 조 첸과 로이 맥나미. 공사 중이라 일반 공개가 안 되는 곳인데 이 글 취재를 위해 친절히 이민 막사 안을 안내해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 윤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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